그리하여 나는 떠올린다. 언젠가의 설경, 눈밭에 푹푹 빠지며 속절없이 젖어 가던 바짓단, K의 목소리, 그리고 또 목소리…… 겨울의 시울 앞에 서서 가만히 숨을 들이쉬면 차가운 공기가 폐부 구석구석까지 스미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이 나를 온전케 만들지는 않았다.
바람이 살을 에는 그 계절에 나는 늘 글을 썼고, 지웠다. 나는 오로지 나에 대한 글만 쓸 수 있었으므로, 이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병이겠거니, 그렇게 생각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하면 할수록 나 자신은 더욱 고립되었으며 글에는 의미 없는 미사여구만이 반복되어 적힐 뿐이었다.
이유 없이 반복되는 것들. 이를테면 점심 식사 후의 운동장 트랙, 회전 초밥의 레일, 그들과 닮은 나의 문장. 그런 것들에게서 멀어지기 위하여 달음박질치다가, 참을 수 없이 외로워질 때면 K에 대해 썼다. 나는 K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니까. 모르는 것에 대하여 마치 아는 척 쓰는 일은 내게 위안이 될 수 있었다.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쓰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에.
K는 웃었다. 털옷을 입지 않아도 춥지 않다고 했다. 자세가 곧았다. 그가 밟은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브로콜리를 좋아했다.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짙은 색의 청바지를 입었다.
내가 적은 K의 이야기는 사실 전부 거짓일 수도, 어쩌면 전부 진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늘에 맹세코 말할 수 있는 깨끗한 진실 또한 존재한다.
그 언젠가의 겨울에, K는 눈덩이를 손에 꼭 움켜쥐고 말했다.
“날 풀리면 같이 관람차를 타러 가자. 빙빙 도는 것에 정답이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선 더 이상 도로와 인도가 구분되지 않던 눈길을 저벅저벅 걷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들은 나의 마음속에 인 울렁임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자기는 자기의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 K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앞서 걸어가는 그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습관적인 도약과 반복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듯, 하늘은 쉴 틈 없이 눈을 뿌렸다. 저곳에는 동백나무가 서 있고.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이 따끔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