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중앙동아리 찬빛입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기회의 셔터를 누를 때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품습니다. 마치 결과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필름 사진처럼, 인생은 결과를 알 수 없는 순간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사진 안에서도 나름의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상과는 달랐지만, 나의 실패를 뚫어져라 쳐다보면 결국 사랑하게 되고, 특별해지기까지 합니다. 셔터를 눌렀을 때 실패라고 느껴졌던 일들이 사실은 나에게 많은 걸 남겼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글에는 실패를 사랑하게 된 부원들의 순간들이 이어집니다.
님도, 이 안에서 실패라는 이름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진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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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실 혹은 거짓
글과 필름 - 영원
S#12. 당신이 잠든 사이의 필름.
세상에서 딱 반 칸 더 암흑 같은 새벽을 담고 있는 방.
그 한 뼘 남짓의 깊이가 더해진 곳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APC: (얼마 안 남은 몸을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저기 있잖아. 한밤중에 자꾸만 말을 걸어서 미안하지만, 혹시 내가 있는 위치를 알 수 있을까? 아무래도 지금 내가 베개 밑에 깔린 것 같단 말이지. 얘는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를 못하더라.
AB2: (침낭과 뚜껑에 붙은 찍찍이의 접합이 요란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열며) 네가 오늘 줄곧 있던 곳이 나한테 왼쪽이었나? 아니면 오른쪽?
APC: 왼쪽이야. 왜냐하면 아까 형광등이 꺼지기 전에 내 시야의 왼쪽 뒤로 네 해진 끈과 침낭이 얼핏 보였거든.
AB2: (멋쩍은 듯 옆구리에 고정된 벨트를 매만지며) 다 낡은 벨트를 끝까지 고수하고 있던 보람이 있네. 하지만 너도 끈이니까···. 내 끈은 이런 도움에는 무용지물일 테야. 내가 잠시 빛을 보내주면 되는 거니? 하지만 정말 찰나일 뿐인데, 괜찮을지 모르겠네.
APC: 괜찮아. 이 망할 주인의 잠버릇을 다시 확인하려는 것뿐이라서.
AB2: 네 뜻이 그렇다면야. 일단 더는 움직이지 말아봐. (고정핀을 당기며) 하나, 둘, 셋, 찰칵.
고요 속의 외침은 필름을 세로질러 그을린 듯 난색의 얼룩을 남길 수밖에.
자신의 터전 하나조차 스스로 정할 수 없는 존재의 흔적이 어쩌면 찰나의 빛보다 더 눈부셨을지도 모름이다.
*AB2: Auto boy 2
*APC: Apple charger
Film.
고요 속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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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과 필름 - 매실
필름을 현상하면 아쉬운 감정이 들었던 적이 여럿 있었다. 자잘한 실수를 했거나, 나도 모르게 카메라에 문제가 생겨서 필름 한 롤을 통째로 날려버렸을 때 같은. 귀한 필름이니 아끼고 애써서 찍은 사진들인데 이런 결과를 마주하면 참 속상하다. 가뜩이나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없는 필름 카메라는 애석하게도 내가 이상하게 찍었다는 걸 알려주지 않는다. 이런 점이 매력이라고 소개하는 필름 카메라 유저들이 많지만 한때의 나는 ‘그래도 최대한 예쁘게 잘 찍고 싶은데...’란 욕심이 있었다.
노트북을 키면 필름 사진을 정리한 폴더를 한 번씩 구경하는 게 루틴이 된 나는 문득 ‘작업물에 실패한 사진을 활용할 순 없을까?’라는 영감이 떠올라 실패한 필름 사진만 따로 모아봤다. 손가락이 불쑥 등장한 사진, 흔들림, 빛 샘, 애매한 구도, 엉뚱한 초점, 너무 어두운 사진, 필름이 제대로 감기지 않아 겹쳐 찍힌 사진... 이유는 다양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색다른 장면이 찍힌 것 같아 더 유심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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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장면들이 꼭 현실과 꿈 사이 그 어딘가의 모습같다고 느껴졌다. 난 이 경계의 파편들을 ‘수면 조각’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렇게 다시 바라보니 더 이상 실패한 사진이 아니었다. 분명 현실을 담아냈지만 현실이 아닌, 내가 만든 공간의 유일한 풍경화였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지만, 때론 낯선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곤 한다. ‘수면 조각’을 보고 있으면 아무 탈 없이 잘 찍은 사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상상과 감정들이 떠오른다. 시의 한 구절을 음미하듯, 또는 추상화를 마음대로 해석하는 기분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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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주 실패를 두려워한다. 실패가 나를 얼마나 무너지게 하는지 알고 있어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도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렇게 부딪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기대했던 만큼, 예상했던 만큼, 기준을 충족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흔히 '실패했다'라고 하지만 그 사이에 각자 노력한 시간과 초조했던 마음들까지 단순히 ‘실패’라는 꾸러미에 묶여 버려지기에 그것들은 너무 값지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가 생각이 난다.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면 슬프고 힘들었던 기억이 있듯이, 모든 이들의 삶은 완벽하지 않고 그래서 더 아름답다. 필름을 촬영하면서 아름다운 사진 뒤에는 수많은 실패와 노력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달리 보면 실패한 사진도 한 편의 시가 되고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현실을 담는 사진과 모두에게 하나뿐인 특별한 삶. 이 둘은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나는 실패한 사진도, 실패한 경험도 아낄 수밖에 없다. 삶을 이루는 조각임을 이젠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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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실패가 주는 기회
글과 필름 - 버즈
안녕하세요, 버즈입니다! 한 달 동안 편안한 날들 보내셨나요? 오늘은 저의 사진첩을 들춰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필름 사진 중에서도, 제 의도에 맞지 않게 나온 사진에 대해 소개해 드리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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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사진은 고양이 가족을 찍으려다 실패한 사진인데요. 이 사진은 강원도 동해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바닷가 앞에서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들, 엄마 고양이, 아빠 고양이가 있는 ‘고양이 대가족’을 만났습니다. 오손도손 모여있는 게 너무 귀엽지 않나요? 고양이 가족을 오랜만에 보기도 했고, 바닷바람을 쐬면서 야옹거리는 모습을 보니 너무 귀여워서 필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잘 담아내고 싶었으나 보시다시피 초점도, 손떨림도, 어느 것 하나 섬세하게 잡히지 않은 엉망진창 결과물이 나왔네요.
처음에는 단순히 꼼꼼히 보지 못해서 이런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런 결과물이 나온 이유는 따로 있더라고요! 새끼 고양이들이 있다 보니 가까이 가지 않고 최대한 멀리서 줌을 당기고 빠르게 찍고 피해줘야겠다는 제 다급함이 담긴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시의 제가 가졌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생생한 사진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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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진은 드라마 명소인 ‘정동진역’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기차를 찍으려다 실패한 사진입니다. 강릉 정동진역은 옛날 기차역처럼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데요. 저는 노을 진 기차역에서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기차가 온다는 소리를 듣고 이 모습을 필름 카메라로 꼭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물을 보시다시피 빠르게 움직이는 피사체를 찍는 건 저에게 아직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 당시에도 잘 담아낼 수 있을지 긴장한 채로 찍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사진이 흔들리지 않도록 숨을 잠깐 참으며, 기차가 가까이 올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기다렸습니다. 여러 과정을 거친 만큼 필름 36장 중에 가장 기대했던 사진이었습니다. 하지만,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결과물을 보고 많이 실망을 했습니다. 그래도 이 경험을 발판 삼아 더 노력해서 다음에는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기에 더 소중한 사진인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실패의 미학’에 부합하는 사진 2개를 소개해 드렸는데요. 이 글을 쓰다 보니, ‘실패’는 부정보다 추억과 성장이라는 단어와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실패한 사진이기에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더 진하게 남고, ‘이 경험을 토대로 다음에는 더 잘 찍어야지!’하는 다짐을 하게 해준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실패는 어쩌면 나에게 찾아오는 소중한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이 글을 보고 나서, 실패했던 경험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와 지금의 ‘나’를 만들어졌는지 생각해 보세요! 실패가 나를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닌, 성장하게 만든 원동력의 역할이 되었음을 알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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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과 필름 - 루이 24세
안녕하세요, 루이 24세입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새로운 도전을 떠올리기 좋은 연말이 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행운, 조금 더 특별했던 하루, 그리고 다시 돌아가 살고 싶은 순간들까지... 이 모든 기억들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또 새로운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되죠.
오늘은 ‘실패의 미학’이라는 주제로 제 필름 사진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실패라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기 쉽지만, 가끔은 그 안에서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이 피어나기도 합니다. 의도한 바와 다르게 나왔다는 측면에서 실패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아하는 사진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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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 사진
필름을 감지 않은 상태에서 필름실을 열면, 필름이 타서 실제 풍경의 모습이 담기지 않습니다. 처음엔 속상했지만, 오히려 필름만이 만들 수 있는 사진이라 생각하니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이후로는 우연이 만들어내는 빛을 담고 싶어서 일부러 필름실을 열어보기도 했답니다. 선명한 풍경은 없지만, 어딘가 몽환적이고 특별한 분위기가 담겨 있는 사진을 보며 더 맘에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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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수로 셔터를 눌러 찍힌 사진
사진을 찍다 보면 의도치 않게 셔터를 눌러 엉뚱한 각도나 예상 밖의 피사체가 찍히곤 합니다. 흔들린 구도나 손가락으로 가려진 경우도 많죠. 그런데 이런 실수들이 오히려 무심코 지나친 일상의 진솔한 순간을 담아내기도 합니다. 첨부한 사진은, 제가 막 제주 공항에 내려서 길을 찾다가 실수로 셔터를 누른 사진입니다. 어떻게 나올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생동감이 느껴져 살아 있는 사진처럼 다가왔어요. 어떤 실수는 제 시선과 감성을 확장해 주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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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점이 안 맞은 사진
‘실패’한 사진이라 하면, 초점이 안 맞거나 흔들린 사진을 가장 먼저 떠올리실 것 같은데요. 하지만 뚜렷하지 않은 사진도 그 나름의 감성이 있답니다. 가끔은 불분명한 형태가 더 많은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해요. 이 사진은 제주도의 한 소품샵에서 촬영한 것입니다. 초점은 흐릿하지만, 사진 속 분위기는 도리어 그 공간의 따스함과 아늑함을 더욱 강조하는 것 같지 않나요?
이처럼 완벽에서 비껴간 사진은 그 자체로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삶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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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심도 깊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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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것은 행운은 끊임없이 여러 형태로 찾아온다는 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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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조현진 최재원 홍수아
교정 유수민 유혜원 이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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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의 88번째 이야기,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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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 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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