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중앙동아리 찬빛입니다.
우리가 늘상 즐겨듣는 노래는 과거에 느꼈던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도구일지도 모릅니다.
특히나 연말의 분위기를 듬뿍 담은 캐럴은 떠나가는 한 해를 후련한 마음으로 보내고 싶어하는, 혹은 지나간 한 해를 그리워하는 복합적인 마음을 담아 모두에게 지나간 날들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곤 합니다.
이도우 작가님의 글 중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살아가는데 늘 장미빛은 아니지만
장미빛이라 부를 수는 있어요
오드리 햅번이 그랬던가요
“와인잔을 눈앞에 대고 세상을 바라보라
그게 바로 장미빛 인생이다”라구요
여러분의 지나간 한 해를 장미빛으로 만들어 주는 캐럴은 무엇인가요? 소설의 구절과 함께 찬빛의 장미빛을 보내드립니다. 즐거운 연말 보내세요!
몽돌 드림.
|
|
|
#1.
아무튼 연말은 찾아오고, 인간은 캐럴을 듣지
글과 필름 - 시끄러운 먼지 |
|
|
연말에 어울리는 사진을 찾고 싶었는데, 마땅한 사진이 없어 언젠가의 겨울에 찍었던 겨울나무를 보여 드려요!
패딩을 껴입어도 손이 덜덜 떨리는 날씨가 연말과 함께 오랜만에 찾아왔습니다. (이 글이 올라갈 때쯤이면 그닥 오랜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겠지만, 글을 쓰는 이 시점은 아직 11월 중순이랍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슨 겨울이 이렇게 더워?”를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며 다녔고, 지하철에는 여전히 에어컨이 나오고 있었는데 말이죠. 갑자기 스위치를 누른 것처럼 겨울이 되어버렸습니다. 해가 갈수록 여름은 더 뜨거워지고 봄과 가을은 사라져가지만, 그래도 겨울은 오나 봐요.
각자 연말을 맞이하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저의 연말은 캐럴과 함께 시작됩니다. 캐럴이란건 정말 주구장창 들어도 질리지 않는 마법의 음악 같지 않나요?
저는 겨울이 되면 연년행사처럼 찾아 듣는 노래가 있습니다.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 듣는 저만의 캐럴이 몇 곡 있는데요, 오늘은 그중에서도 특히 자주 듣는 두 곡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인피니트의 하얀고백! 저와 동년배 분들이시라면 다들 이 노래를 아실 텐데요. 감히 아이돌 연말송 중 레전드라고 장담합니다. 전주만 들어도 마음이 두근거리는 노래입니다. (이 글도 하얀고백을 들으며 쓰고 있어요.ㅎ)
두 번째로는, Radiohead의 Creep입니다. 평소에는 원곡 버전을 즐겨 듣지만, 날씨가 이렇게 추워지면 Karen Souza의 재즈 버전으로 바꿔 듣곤 합니다. 원곡과 또 다른 느낌이 나면서 겨울의 차분한 분위기와 정말 잘 어울리거든요.
여러분은 각자의 연말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얼마 남지 않은 2024년, 후회되는 일이 있었다면 모두 자신만의 캐럴 한 곡 듣고 시원하게 떨쳐내 버리는 건 어떤가요?
그럼, 메리크리스마스!
|
|
|
#2.
글과 필름 - 칠셋
이르게 찾아온 겨울의 상징에 고개를 젖히고 덤덤히 반겼습니다. 얼굴에 스미는 찬기 어린 방울 하나로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길어진 것만 같이 느껴집니다. 몸을 바로 한 뒤 혜화로 나가 미뤄왔던 캐롤을 보고 왔습니다.
<Carol, 2016>
♫ Carter Burwell - Lovers (<Carol> OST)
인간의 행위는 흐르는 모든 걸 붙잡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시간을 잡기 위해 시계를, 삶을 잡기 위해 문자를, 찰나를 붙잡기 위해 그림을 사진을···. 중심 없는 나는 딱히 그것들을 중히 여기지 않고 살았으나, 근래에 들어서야 내 시선을 낚아다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버리는 것이 사진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진 찍는 사람으로서의 무지에 한 번, 나의 발가벗겨진 시선에 두 번 부끄러웠습니다. 무엇을 열망하는지 무엇을 바라왔는지 세상을 무엇으로 보는지. 사생활 침해 같아 인물을 찍지 않던 내가 숨을 참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묘한 카타르시스와 희열, 해선 안 될 것을 하는 기분.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나의 필름에 영원히 가두었습니다. 전에 하지 않던 것들을 치르게 되는 이유. 과실, 오, 사랑 그것만은 아니길 바랐는데. 실은 오직 그것만을 간절히 바랐던 것 같습니다.
무한궤적을 그리던 장난감 기차가 그녀의 시선 하나로 인해 멈춘 것만 같은 때, 창밖의 나리는 눈발이 마치 희고 찬 잔꽃잎 같을 때, 잠든 그녀의 붉은 네일아트를 두들겨볼 때, 옷가지 사이 무언갈 결심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한 차가운 총부리가 챙하고 손끝에 걸릴 때, 지금 이 괴로운 터널이 영원했으면 할 때, 사진 속 그녀의 눈동자 위 켜켜이 쌓인 호선을 마구 퉁기며 따라가고 싶을 때.
우리는 그 모든 때를 지나고 없지만 나는 보고플 때 언제든지 밧드를 흔들어 물 위로 그녀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차츰 보이는 초상을 씻어내 올려 그렇게 매일같이 부르거나 혹은 완전히 서랍에 넣어버리거나. 정말 눈물나게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
|
|
영화 캐롤이 재개봉을 했다고 합니다. 캐롤은 16mm 필름을 사용하여 촬영했다고 하는데요, 필름을 사랑하는 우리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영화죠.
이번 겨울 묵묵히 사랑을 고하는 영화, 캐롤을 놓치지 말아요.
|
|
|
#3.
글과 필름 - 진담
캐럴이 울려 퍼질 때면, 무언갈 마무리 지을 때가 왔다는 강박이 머릿속을 채우곤 합니다. 대체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도 안 가지만, 올해 내가 키운 모든 사랑 좌절 기쁨 슬픔 절망의 모과를 전부 먹어 치워서 소화시킨 후 1월 1일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는 총기가 눈알 끝에 서려옵니다. 다급해진 내 마음과 대비되는 노란색 불빛과 총천연색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니 어렸을 때 가지던 설렘의 모과도 잠깐은 만져지는 것 같습니다.
이 설렘의 모과가 썩어들어가는 게 싫어서 나는 어디에 두고 왔는지도 모를 낭만을 산타에게 찾아달라고 빌었습니다. 사실 빌지는 않았고 역시 산타는 없으니 생각만 했습니다. 너무 커버리고 많은 걸 잃어버린 내가 싫어서 어디서부터 놓쳐 지나왔는지 더듬어봤지만 내 과육이 묻은 자국은 희미했습니다.
|
|
|
♫ 신해경 - 그대는 총천연색 / 공중그늘 - 헤엄
이번 크리스마스엔 다짐을 하고 새로운 과수목을 심기로 하였습니다. 내 옛날에 그렇게나 사계절 내내 빛났던 크리스마스 나무를요. 억지로라도 치렁치렁 꾸며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길 바라며 일종의 부적처럼 다루고 싶습니다. 크리스마스 이후의 내 모든 끝맺음이 괜찮게 흘러가고 또 새로운 한 해가 이 나무처럼 크고 높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으로요.
만약 내가 사랑 좌절 기쁨 슬픔 절망의 모과를 잘 소화시켰다면 그 씨앗을 장식으로 달아 두고 싶습니다. 얼굴에 수박씨를 올리는 놀이처럼 자랑스레 씨를 붙이고 나의 나무가 활짝 웃었으면 합니다. 가장 높은 곳엔 다 소화하지 못한 설렘의 모과를 달아둘 것입니다. 익숙한 설렘이 희미해졌다고 느껴질 때 나는 꼭대기의 저 빛나는 토템을 만지작대며 또다시 들릴 캐럴을 기다릴 것입니다.
|
|
|
오늘의 심도 깊은 문장
/
그러나 나는 분명 변화하고, 이런 변화가 내 삶을 지탱하는 데 보탬이 된다고 믿기에.
|
|
|
김현정 조현진 최재원 홍수아
교정 유수민 유혜원 이지민
|
|
|
심도의 87번째 이야기, 어떠셨나요?
레터를 보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나, 문의사항이 있다면
하단의 버튼을 눌러 작성해 주세요.
그럼 다음 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
|
|
심도의 레터를 친구와 공유하고 싶다면
하단의 버튼을 눌러 공유해 주세요.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