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중앙동아리 찬빛입니다.
필름 그리고 문학. 두 가지를 이리도 사랑하는 사람은 분명 예술의 미학을 알고 작가의 의도에 감동할 줄 아는 향유인(享有人)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진가의 시선과 감각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필름 사진, 작가의 내면과 관점을 투영해 글자로 비추는 문학은 그 결을 같이 합니다. 또한 필름 사진은 빛과 시간의 교차점을 기록하고, 문학은 이따금 시간을 초월한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시간의 예술’이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고 현상까지 기다린 사진과, 완벽한 글이 나올 때까지 긴 시간을 거친 글들이 여기 이어집니다.
각자의 문학이 부원들의 마음에 가닿았던 것처럼, 심도의 글도 님께 가닿길 바라며.
진담 드림.
📮 . . . . . 💌
한 주차의 심도에 실린 글이 모두 좋다고 느낀 건 처음이 아닌데, 다 읽은 후 별 모양을 눌러본 건 처음이에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몇 번 더 꺼내 읽어보게 될 것 같아요. 오늘도 좋은 글과 필름 사진 감사합니다.
- 82주차에 남겨 주신 이야기
심도가 구독자분의 메일함에 중요한 메일로 자리 잡았다니 기쁘네요! 시간이 조금 지나고서야 발견한 구독자분의 감상이, 느린 우체통을 통해 찬빛으로 날아온 편지처럼 느껴졌어요. 앞으로도 종종 꺼내보고 싶은 순간을 담아낼 부원들을 계속해서 응원 부탁드립니다. 항상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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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문
글과 필름 - 몽돌
필름과 문학, 저는 줄임말을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필문, 그러다 보니 생각이 난 말은 필링 문학이었습니다.
feeling 文學.
외국어와 한자어를 나란히 두니 참으로 어색합니다. 제가 필름 카메라를 처음으로 접하였을 때 또한 필름을 어떻게 넣는지, 과연 잘 감겼는지, 어디까지 확대해서 찍을지와 같이 허둥지둥하며 어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필름 카메라를 사고 필름 카메라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해준 언니와 함께 첫 출사를 나간 날에, 필름 한 통을 다 쓸 정도로 필름값의 무서움도 알지 못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적는 심도에서의 글도 어쩌면 저만의 문학 작품을 차곡차곡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필름 카메라의 필름 사진들을 통하여 몽돌의 글뿐만이 아니라 찬빛 부원분들의 모든 글이 모여 찬빛만의 문학을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요.
저는 최근에 우연한 기회로 읽게 된 김행숙 시인의 『물의 친교』 중 가장 마지막 문단이 계속해서 머리에 맴돌았고, 지금껏 그 문단을 곱씹곤 합니다.
어젯밤 너의 눈빛은 하염없이 머물렀지
마치 눈먼 자 같은
그런 눈빛
그런 목소리로 너는 인생보다 긴 고백을 시작했어
『물의 친교』는 왠지 모를 새벽의 스산함과 상대의 오묘한 초록빛의 눈빛, 인생보다 긴 고백을 시작했다는 묵직한 문장이 저를 압도하였고, 그러한 압도감을 온전히 느끼게 해 준 시였습니다.
문학을 느낀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제가 계속해서 곱씹는 이 문장은 저에게 필문(feeling 文學)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제가 느낀 시에서 바라본 초록빛의 눈빛을 담은 필름 사진이에요. 찬빛의 문학인 심도를 읽는 독자분들께서도 떠나간 여름의 더위를 몽돌의 필름으로 다시금 느끼시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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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과 필름 - 수아
외계인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좋아하시나요?
아니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식물이 등장하는 건 어떤가요?
저는 굉장히 좋아합니다. 누군가의 상상력으로 가득한 이야기를요. 그래서인지 SF 소설을 가장 즐겨 읽습니다. 과학적이지만 모순적인, 어쩌먼 허상뿐인 이야기가 정말 좋아요.
SF 소설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오로지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때문입니다.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기도 해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5년 정도 과거로 돌아가야 합니다. 처음 이 소설을 읽은 건 도서관에서였습니다. 늘 읽던 추리 소설이 질려서 도전해 보지 않았던 국내 소설 코너를 둘러보는데, 독특한 질감의 표지가 있는 책이 한 권 있었습니다. (정말 질감이 달라요. 정말로요.) 별생각 없이 그 책을 집어 자리에 앉았고… 그렇게 도서관 마감 시간인 6시가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끊지 않고 끝까지 읽는 편인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읽었던 건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그날 바로 책을 빌려 한 번 더 읽었습니다. 제 인생 소설이 정해지는 순간이었죠!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도 늘 한 번씩은 이 소설을 빌려 읽었습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7개의 단편 소설이 모여있는 김초엽 작가의 첫 작품집입니다. 원래 책을 소개하려면 간단한 내용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하나만 고르려니 너무 어렵습니다. 단편 모두 소개하고 싶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히히. 긴 호흡의 소설을 읽는 게 어려우신 분, SF 장르에 입문하고자 하는 분, 심도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강력 추천합니다.
아, 여러분은 책 구매하는 걸 즐기는 편이신가요? 전 좋아하는 책은 ‘전부 소장하자 파’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만은 아직도 소장하지 못했어요. 무려 9번 정도를 대여해서 읽었는데도요. 사려고 돈을 모으면 김초엽 작가님의 신작이 나오고, 입시를 하느라 소설을 읽지 못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늘 빌려 읽기만 하는 인생 소설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께 추천하는 김에 올해야말로 저 역시 소장해야겠어요. 이번엔 꼭!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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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우주에서 살고 있는 우리 역시 외계인일지도 몰라요. 왹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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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첫사랑은 ○○이다
글과 필름 - 흰동가리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필요 이상으로 낭만적인 말로 자리 잡은 이 시대에서, 내게 첫사랑은 대체 어떤 질감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던 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밤이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칩니다. 그토록 쌀쌀맞은 고민이 단순한 고민에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좀먹을 때, 저는 『첫사랑과 O』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첫사랑과 O』는 열두 명의 시인과 소설가가 첫사랑, 혹은 첫사랑처럼 자신을 뒤흔든 매혹에 관하여 쓴 글들이 모인 선집입니다. 이 책이 제게 위안이 되었던 것은 열두 명의 작가 중 어느 누구도 ‘첫사랑은 〇〇이다.’라고 단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세상 속에서 첫사랑은 모두 저마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박연준 시인의 「불사조」 속 한 구절.
당신에게 부딪혀 이마가 깨져도 되나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날았고
이마가 깨졌다
여태껏 이다지도 시린 은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요, 선선한 바람과 풍겨 오는 꽃내음 따위가 아니라 깨진 이마의 얼얼함이 첫사랑일 수도 있는 법입니다.
그렇담 나는, 나의 세계에서 첫사랑은,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질는지……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저는 사진 한 장을 보여 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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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제가 필름 사진을 처음 찍기 시작했을 무렵의 사진입니다. 카메라의 종류가 뭔지, 필름의 감도가 뭔지, 그 어느 것도 알지 못하는 채로 찍었지만, 어째서인지 지금까지도 제게 가장 짙은 잔상을 남기는 사진입니다. 강한 햇빛을 피하려 눈을 찡그리듯, 한쪽 눈을 감고 뷰파인더 너머를 바라볼 때, 저는 사랑을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저는 ‘첫사랑은 〇〇이다.’라는 명제의 빈칸을 글자 대신 사진으로 메꾸겠습니다. 이마저도 첫사랑의 어떠한 의미가 되겠지요.
이쯤에서 당신께 묻습니다. ‘첫사랑은 〇〇이다.’에서 〇〇에 들어갈 말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첫사랑을 알려 주세요! 혹시라도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면 『첫사랑과 O』를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추신. 메모장을 뒤적이다 책을 읽고 썼던 감상문 같은 시를 발견했습니다. 오늘은 저의 시도 남기고 갈게요.
당연하게도 첫사랑은 겨울이라 생각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여름에 대한 시를 읽었을 땐 조금 사랑스럽고 많이 이질적이었다.
사랑도 음악도 시도 물성이 없어서 내가 느낄 수 있는 것도 감정 딱 그뿐이지만 그마저도 지나치면 안 됐다.
무정하고
무정한
사랑……
쓸 게 없는 시인들은 시에 대한 시나 쓴다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쓸 게 없고 사랑을 사랑하는 시인은 시와 사랑에 대한 시를 썼다.
불문율 같은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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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과 필름 - 하나
여러분 안녕하세요, 하나입니다. 이번 주제는 어렵지 않게 써 내려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책을 추천해 드리면 좋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 결국엔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게 되었어요. 타인에게 무언가를 권할 때면 왜인지 긴장되기도 하고 많이 고민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추천해 드리고 싶은 책은 앤드루 포터의 단편 소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입니다.
인간이 가진 것 중 가장 소란스럽고 통제 불가한 것을 고르라 한다면 저는 감정을 고르고 싶습니다. 하루에 수천 번씩 변화하면서도 그 시작과 끝이 어딘지는 알 수 없으며 정확히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좋다’는 말에, 아니면 ‘싫다’는 말에 덩어리로 묶인 채 이름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밖으로 영영 끄집어낼 수 없는 감정들은 대부분 명확한 이름과 출처를 가진 채 깊숙한 곳에 오래도록 존재합니다. 이를테면 죄책감이 그렇습니다. 어째서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은 금방 잊히고, 잊고 싶은 것들은 진득하게 남아 나를 괴롭히는지 모르겠습니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속의 주인공들은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담백하고도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읽는 내내, 읽어서는 안 될 타인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쉽게 멈출 수는 없습니다. 남은 페이지가 적어질수록 주인공들의 감정은 나의 경험과 연결되고 이내 ‘잘 살고 싶은 마음’의 존재감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너무 잘 살고 싶은 마음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상처를 주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있잖아, 폴.” 그녀가 말한다. “가끔씩은 긴장을 푸는 것도 괜찮아. 그건 죄악이 아니잖아.”
“뭐가 죄악이 아니야?”
“행복한 거.” 그녀가 내 손을 잡으며 말한다. “그건 죄악이 아니야.”
- 「아술」 중에서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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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 하여 사라진 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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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심도 깊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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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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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조현진 최재원 홍수아
교정 유수민 유혜원 이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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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의 86번째 이야기,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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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 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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