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낙엽 하나에도 마음은 제멋대로 흔들립니다. 어느새 그런 계절이 되었네요. 이따금 제게 남은 미련이 그 작은 낙엽처럼 마음을 스칠 때면, 이 울렁이는 계절이 영원할 듯한 기분이 듭니다.
얼마 전 새로 산 옷을 입고 산책하던 중에 소매에 묻은 작은 얼룩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우뚝 서서 그것을 지워 내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고, 집에 돌아온 후에도 그 얼룩은 끝이 조금 번진 모양새로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 순간 문득 든 생각은, ‘내게 미련은 이 얼룩 같은 것이겠구나. 암만 지우려야 지워지지 않고, 비비고 닦고 문대 봐야 그저 번지고 말 뿐인 것이겠구나. 나는 이 얼룩을 영원히 끌어안고 살게 될까?’ 그런 것들.
제게 얼룩처럼 남은 가장 진한 미련은 어릴 적의 꿈입니다. 일찌감치 포기해 버린 꿈은 여지껏 사라지지 않은 채로 저의 눈에, 손끝에, 횡격막 아주 깊숙한 데까지 끈덕지게 들러붙어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나의 일부가 되어 버린 듯한 얼룩을 이제는 지워 내야 하는데, 나는 나의 미래를 밟고서 나아가야 하는데… 언제나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미련에 대해 고민하니 어쩐지 전윤호 시인의 「늦은 인사」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마침 이 시도 꿈을 포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읽었던 것이네요.
그 바닷가에서 당신은
버스를 탔겠지
싸우다 지친 여름이 푸르스름한 새벽
내가 잠든 사이
분홍 가방 끌고
동해와 설악산 사이
외줄기 길은 길기도 해
다시는 만날 수 없었네
자고 나면 귀에서 모래가 나오고
버스만 타면 멀미를 했지
아무리 토해도 멈추지 않고
정신없이 끌려가던 날들
가는 사람은 가는 사정이 있고
남는 사람은 남는 형편이 있네
더 이상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는 나이
잘 가 엄마
아지랑이 하늘하늘 오르는 봄
이제야 미움 없이
인사를 보내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는 단순히 화자가 엄마에게 작별을 전하는 내용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 다시 보니 화자는 묵은 미련을 훌훌 털어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잘 가.”라는 아주 짧은 말 한마디로요. 어쩌면 오래된 미련을 지우는 일일수록 스스로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단순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젠 저도 어릴 적 꿈을, 그리고 그 꿈을 포기해 버린 나를 원망하지 않으며 인사를 건넬 때인 것 같습니다. 아마 당신의 마음속에도 얼룩 같은 미련들이 자리잡고 있을 테지요. 우리 같이 숨 한 번 크게 내쉬고 그들에게 작별을 고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안녕, 하고 말이에요.
모쪼록 당신과 제가 이 울렁이는 계절을 보내는 것이 그다지 고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안녕:)
Fi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