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중앙동아리 찬빛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언제나 큰 결심이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잘 할 수 없는데도 부족한 모습만을 바라보고,
아쉬워하고 후회하며 괜히 조바심을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불안은 결국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요?
고민하면서 남겨온 발자국과 그 끝에 있는 시작점을 되돌아 보면,
새로운 걸 시도할 땐 늘 설레는 감정이 가장 먼저였던 것 같습니다.
나의 서툴고 미흡한 모습조차도
추억이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회상할 수 있기를,
설레었던 순간을 잃지 않고 나아가기를.
수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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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름의 효능
글과 필름 - 매실
안녕하세요. 가을바람이 선선히 불어오는 날 인사드립니다. 산책하기 좋은 날씨네요! 오늘은 지금까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서 들었던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저는 언니의 반쯤 쓰고 남은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건네받은 것을 시작으로 2021년부터 현재까지 필름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일회용 카메라로 처음 사진을 찍었을 땐 작은 네모 칸을 통해 보이는 세상과 셔터를 누르는 행위가 신선했고, 필름 특유의 따뜻한 감성에 빠져버렸어요. 이후 더 많은 사진을 제 손으로 찍고 싶어서 자동카메라로 바꿔보고, 대학교에 오자마자 필름 카메라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멋진 사진을 찍는 동아리 부원들이 자주 간다는 현상소도 찾아가 보고, 중고 카메라 수리도 맡겨보고, 다양한 색감의 필름을 하나하나 찍어보며 지식과 정보들을 차곡차곡 쌓아갔어요.
그런데 시작은 단순히 필름을 배우고 싶었다면 지금은 필름 그 이상의 무언가를 많이 배웠다고 생각해요.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교 새내기였던 저는 낯선 서울에 적응하기 위해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서울 곳곳의 풍경을 카메라로 담았어요. 때때로 제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져서 무섭고 외로웠지만, 뷰 파인더에 눈을 가까이 대면 마치 기나긴 카메라 렌즈와 몸체가 이어지는 터널 속에서 조용히 바깥을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아 괜찮아졌어요. 초점을 맞추고 대상에 집중하는 그 순간은, 외부와 차단된 채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기도 했지요. 그래서 항상 출사를 마치고 돌아오면 마음 한구석이 단단하게 메꿔진 느낌이 들어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도 물론 필요하지만, 자신이 안심할 수 있는 테두리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점차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필름은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해줍니다. 지난 레터에서 고향 친구와 바다에서 필름 카메라로 찍어주며 놀았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요. 그때 그 친구의 아버지도 잠깐 뵈었는데, 제 카메라를 보면서 많이 반가워하셨어요. 알고 보니 아버님도 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하셨답니다. 그 시절엔 현상을 직접 하셨고, 현상액의 화학 약품 때문에 졸업 작품에는 디지털 작업으로 대체하셨다는 얘기도 해주셨어요. 열정 가득한 사진학과 학생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들으니까 시간이 금방 지나갔어요. 그날 가르쳐 주신 촬영 자세는 신중히 사진을 찍을 때마다 생각이 나서 이젠 거의 흔들리지 않고 잘 찍게 되었답니다 ^.^
최근에는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소품샵을 방문하러 경기도까지 이동했는데 먼 거리를 왔으니 당연히 필름 사진도 찍고, 주변에 함께 들를만한 곳이 없을까? 하고 인터넷을 뒤적거리던 중, 귀여운 책방을 발견해서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조그만 입구를 지켜주는 화분들에게 눈인사를 하고 들어가니, 크고 작은 알록달록한 책들이 가지런히 배치되어 있었어요. 유독 눈에 들어온 그림책 코너에 머무르다 한 권, 두 권씩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원한 차를 건네며 그림책을 좋아하냐는 사장님의 물음에 갑자기 흥미가 생겼지만, 앞으로 더 좋아질 것 같다고 대답했고 어느 순간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마침 사장님께서 조만간 그림책 워크샵을 연다고 하시길래 저는 덜컥 신청을 했답니다! 먼 거리에 대한 걱정보다 앞으로 사장님과 나눌 이야기를 기대했기 때문이에요. 책방을 떠나기 전 오후 햇살을 머금은 공간을 카메라로 담았습니다. 그리고 인화된 사진을 드리기로 약속했어요. 우연히 만난 장소에서 필름처럼 따뜻한 인연을 만든 소중한 하루였습니다.
제가 언제까지 필름을 찍을지 모르겠지만, 가능한 오래 사진을 찍으며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 나서고 싶습니다. 필름 카메라를 통해 얻었던 감정과 인연들은 특별해서 결코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미숙했던 첫 롤의 사진과 가장 최근 롤의 사진을 보여드리며 글을 마칠게요. 아무쪼록 제 시시콜콜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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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롤의 사진 -토끼풀-
열여덟 생일 선물로 받은 카메라로 동네를 걸어 다니며 첫 롤을 채웠습니다. 최소 초점 거리도 모르고 바닥에 핀 토끼풀을 가까이 찍었네요. 그래도 그런대로 좋아요. 마치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나 강아지의 시선처럼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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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최근 롤의 사진 -금일의 표어-
「 주저 없이 사랑하자! 주변을, 스스로를, 만물을 ~ ♪ 」
빛반사 때문에 글귀가 잘 보이지 않아서 한 번 더 옮겨 적어보았습니다. 필름을 좋아해서 그런지 이 말이 더욱 와닿네요. 항상 사랑하는 마음으로 셔터를 누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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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Fall in film
글과 필름 - LOU
필름 사진을 처음 찍기 시작한 건 3년 전, 그러니까 찬빛에 들어가고 나서부터였습니다. 필름 시뮬레이션 기능이 있는 후지필름사의 디지털 카메라를 쓰다가, 시뮬레이션이 아닌 진짜 필름 카메라를 쓰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암부가 뭉개지고 화질도 떨어지지만, 그날의 추억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담기는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보니 점점 필름에 빠져들었고, 사진 스터디와 학원을 다니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느낄 때쯤, ‘사태기(사진 권태기)’를 겪게 되었어요. 항상 두세 개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던 제가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 사진도 찍지 못하게 되었죠. 스스로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운영하던 인스타그램 사진 계정의 모든 사진을 내리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사진도 보기 힘들었습니다. 오랜 시간 괴로워하던 중, 친구에게 털어놓으면서 사진을 미워하는 마음이 실은 잘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왜 사진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를 되새기게 되었고, 결국 사태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전보다 더 감사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사진 찍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그만둘 수 없는 것처럼요.
구독자님도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에 힘들었던 적이 있으신가요? 그럴 때는 잠시 여유를 가지고 초심을 되돌아보며 마음을 정리해 보세요. 결국 자신이 잘하고 있고, 더 잘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첫 롤은 이전 핸드폰에 있어 첨부하지 못하지만, 가장 최근에 현상한 필름 사진을 보여드릴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 보내세요!
Film.
기울어진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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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카메라를 처음 받아본 순간이 기억납니다. 생일 선물로 받은 노란색 플라스틱 필름 카메라. 필름을 어떻게 끼우는지도 몰라, 유튜브를 보며 얼렁뚱땅 끼운 후 무턱대고 찍은 첫 롤은 그야말로 ‘엉망진창’ 이었습니다. 빛 조절을 못해 회색, 흰색으로 나온 컷 반, 뭘 찍었는지도 모르겠는 컷 반. 그중에도 눈에 띄는 한 컷이 있었습니다. 건물 외벽을 찍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그림의 뒷면을 찍은 것 같기도 한 사진이 이상하게 계속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직도 전 이게 무얼 찍은 사진인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저 순간의 제가 무슨 마음으로 사진을 찍은 것인지 기억은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저걸 찍은 순간의 저는, 저 물체에 매료되어 셔터를 누른 것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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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필름 카메라의 매력은 이렇게 찰나에 사로잡혀 손가락을 움직이고, 내가 뭘 찍었는지도 모른 채로 결과물을 기다리는 나날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과거의 내가 모여 손가락을 움직였던 순간의 집합체를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그 순간의 나는 어떤 마음으로 셔터를 눌렀을까, 무엇이 사진을 찍도록 움직였을까’하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름 카메라가 주는 최고의 낭만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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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카메라라는 취미를 가진 지도 벌써 2년이 넘어갑니다. 이제 저는 저만의 필름 취향이 생겼고, 빛이 들어오는 정도를 어렴풋이 계산할 수 있는 아마추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처음과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여전히 찰나에 이끌려 남은 컷 수를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셔터를 누르고, 현상된 사진을 보면서 대체 무얼 찍은 건지 황당해하곤 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계속 이렇게 사진을 찍겠죠?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차곡차곡 쌓여가는 이 찰나의 순간들이 되도록 길게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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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과 필름 - 하나
여러분 안녕하세요, 하나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9월 말인데요. 여전히 진득한 여름의 잔해가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글을 보실 때쯤엔 완연한 가을이 되어있을까요? 왠지 남은 올해 동안에는 주변 이들에게 감기 조심하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될 것 같네요.
오늘은 글의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필름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볼까 해요. 저는 작년에 처음으로 필름 카메라에 입문했습니다. 그전부터 관심은 있었습니다만,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는 타입이라 정말 간절히 바라는 게 아닌 이상 그 시작을 계속 미루곤 해서요. 필름 카메라도 저에겐 그런 존재였습니다. 이젠 정말 시작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찬빛에 들어왔어요.
처음엔 그저 셔터만 누르면 되는 간편한 자동카메라를 사용했습니다. 필름도 흔히 알려진 코닥이나 후지처럼 유명한 필름을 주로 사용했어요. 필름은 현상하기 전까지 결과를 알 수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한 결과물을 보장받고 싶었어요. 무엇을 찍고 싶은 건지도 잘 몰랐습니다. 눈에 보이는 꽃이나 고양이, 함께 있는 사람들을 찍었어요. 생각한 것과 달리 실패한 롤이 나오면 그 원인을 알 수 없어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저만의 경험이라기보다는 필름을 처음 접하는 모든 분들의 경험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네요.
지금은 수동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후지와 영화용 필름을 좋아합니다. 자연의 풍경을 찍는 것도 좋아하지만, 도시의 요소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찍는 걸 더 좋아해요. 결과물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사실은 여전히 두렵고 실패한 사진이 나오면 마찬가지로 속상하지만, 이젠 그것 또한 하나의 추억임을 압니다. 필름에 대해 하나둘씩 알아갈 때마다 저 스스로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 느낌이에요. 기억의 휘발성과 기록의 영속성,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잇고자 하는 결심의 다른 이름은 사랑임을 알게 되었어요.
저는 아마 앞으로도… 오래도록 필름과 함께하지 않을까 싶네요. 필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저에게 영감을 주는 소중한 것들이 자꾸만 떠올라요. 심도도, 이 글을 봐주시는 여러분도 저에게는 그런 존재입니다.
이번 시즌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 전하며, 항상 감기 조심하세요.
Film.
첫 롤. 2023. 3. UNOMAT E400, Fuji C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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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5. MINOLTA X-700, Agfa Vista 4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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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를 가장 믿어주는 건 다른 사람일 때가 있습니다. 저조차도 저를 못 믿고 떠나 있을 때 제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의 편지를 읽으며 다시금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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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조현진 최재원 홍수아
교정 유수민 유혜원 이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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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의 80번째 이야기,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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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 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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