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중앙동아리 찬빛입니다.
記録(기록).
기록할 기, 그리고 기록할 록.
오로지 ‘기록한다’라는 의미를 담기 위한 단어입니다.
여러분은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기록하는 걸 정말 좋아합니다.
친구와 함께 사진을 찍고, 해야 할 일을 메모에 적고, 읽었던 책의 후기를 남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록하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친구가 남긴 기록을 읽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 움큼의 기록으로 친구의 세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저는 즐겁고 흥미롭습니다.
4명의 출사 기록은 어떤 세상을 그려내고 있을까요?
수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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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과 필름 - 익명의 부원
출사 기록을 쓰려니, 3월에 간 창덕궁 출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네요. 홍매화를 보러 창덕궁에 간 것은 작년 2023년과 올해 두 번째인데, 작년의 필름은 초점이 맞지 않아 아쉬웠어요. 다행히 봄이 차례가 되어 돌아왔고, 작년의 아쉬움을 새로 채우기 위해 창덕궁에 갔답니다.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홍매화를 찍고 있었고, 저 역시 그 대열 속을 비집고 들어가 한 컷을 남겼습니다. 아! 다행히 이번 필름은 홍매화와 궁이 초점이 잘 맞게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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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화를 찍고 난 후, 창경궁으로 이어지는 창덕궁 뒷길에서 벤치에 나란히 앉아 계시는 할머니들을 발견했어요. 흐드러진 꽃들과 한옥들, 그 위에 올라온 남산타워를 바라보며 얘기를 하던 할머니 세 분을 보며, 찍은 필름 사진을 보다가 문득 제가 좋아하는 웹툰의 문구가 생각났어요. “네가 생각하는 믿음이라는 건 어떤 거야?”라는 주인공의 질문에 “그 사람이 내가 그린 미래에 당연하게 있는 거.”라고 대답한 친구.
학창 시절, 친구들과 생일 편지를 쓰며 ‘우리 우정 포에버!’, ‘어른 돼서도 연락해야 돼!’와 같이 다짐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친구들과 멀어지기도, 현재까지 만나기도 합니다. 할머니들의 모습이 오랜 우정을 담고 있는 듯해, 저도 모르게 그들처럼 오래도록 소중한 이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친구들과 함께 창덕궁을 거닐며 봄을 만끽할 수 있을까? 내 미래에 당연히 있을 친구들은 누굴까? 하며 생각에 잠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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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과 필름 - 57
중간고사가 다 끝난 일요일, 전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사에 나섰다.
봄이 왔음을 한껏 느끼며 도착한 덕수궁은 사람으로 붐비었고, 그 사이에서 모여있는 찬빛 부원들을 찾았다. 반가움과 약간의 어색한 인사를 시작으로 서로를 알아가려는 여러 가지 질문이 오가는 대화 속에서 우리는 덕수궁을 걸었다.
덕수궁 출사는 미놀타 X-300과의 첫 출사였고, 미숙한 탓에 셔터를 잘못 누르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사실 혼자 있었다면 필름을 한 장 버렸다는 생각에 기분이 별로였을 텐데,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찬빛 부원들과 함께 있어서 그런지 그런 실수마저 기분 좋게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덕수궁에서는 다른 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서양식 건축물을 볼 수 있다. 그중 하나인 돈덕전은 비교적 최근인 23년에 개관했고, 덕수궁이 익숙한 나에게도 처음 가보는 낯선 공간이었다. 사실 새내기 때쯤 찬빛 출사로 덕수궁 근처를 걸어가면서 공사 중인 건물이 뭔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당시에는 건물의 뾰족한 지붕만 보여서 더 궁금했는데, 벌써 완공되었고, (나름) 고학번이 되어 새로운 찬빛 부원들과 함께 이곳에 오다니 시간이 정말 빠르게 간다고 느꼈다.
돈덕전의 청색 창틀은 정말 매력적이고 오얏꽃 장식이 곳곳에 있는 내부 또한 아름다워 돌아보는 내내 카메라를 손에서 뗄 수 없었다. 다 같이 상설 전시를 관람하며 고등학교 시절 한국사 수업 시간을 떠올리기도 했고, 거울에 모여 사진도 찍었다. 특히 2층 아카이브실은 흥미로운 책들과 멋진 공간이 또다시 오고 싶게 만들었다.
좋은 사람들과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보내는 시간은 소중해서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찍었던 사진도, 함께한 기억도!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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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낯선 고향
글과 필름 - 매실
잠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도 여행이 될 수 있을까?
작년 여름, 1학기를 마치고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본가가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제주도? 부럽다... 가서 많이 놀다 와!”, ”여름휴가는 제주도지!” 친구들과 방학 계획을 주고받으며 들었던 얘기들. 하지만 나에게 제주도란 ‘가족이 있는 고향’, ‘서울로 오기 전까지 살던 지역’ 정도의 의미였지 남들이 부러워하는 만큼 새롭고 환상적이진 않은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도에서는 서울에 있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없었고, 반복적으로 보는 동네 풍경은 이미 익숙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도착하고 며칠 후 서귀포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버스가 구불구불한 숲 터널을 가로질러 간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카메라 렌즈에 반사시키며 구경하다가 어느새 고즈넉한 정류장에 도착했다. 내가 기다리는 h는 고등학교에서 만난 친구다. 입학 후 같은 반에서 몇 마디 얘기하다 금세 친해졌고, 서로의 얼굴을 수채화로 그려주며 특별한 추억을 쌓았다. 우린 서로 다른 대학에 들어가 전보다 자주 보진 못했지만, 시간을 내어 서울에서 몇 번 만났다. 그때 수동 카메라를 장만하러 플리마켓을 방문했는데, 같이 간 h가 흥미를 보이길래 이때다 싶어서 카메라 세계에 입문시켰다. 우리는 고향에서 다시 만나면 이날 샀던 필름 카메라로 서로를 찍어주기로 했다. 고등학생 때 그린 수채화처럼.
h가 살며시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중문해수욕장에 가봤는지 물었다. 널리고 널린 해수욕장 중 고작 서너 군데만 알고 있는 나로서는 당연히 처음이었다. 시시콜콜하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그 애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걸었다. 낯선 길 끝에 어떤 바다가 있을지 무척 궁금해졌다. 그렇게 나뭇잎이 우거진 길을 걷고, 또 걷다가 드넓은 해변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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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마자 탄성이 나왔다. 서귀포시에 이런 아름다운 해변이 있었다니! 광활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제주시의 해변과는 확실히 다른 감상을 주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해수욕장에 다다르니 곳곳에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돗자리를 펴고 일광욕을 즐기는 외국인도 있었고, 서핑을 타는 무리도 있었다. 자유로운 한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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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신발을 벗고 모래사장을 천천히 밟아나갔다. 생각보다 따스하고 입자가 고와 부드러웠다. 서서히 이 자연에 스며들어 약간의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눈앞에는 맑고 푸른 하늘과 빛나는 물결이 아름답게 공존했다. 그리고 옆엔 마음이 맞는 친구가 있었다. 이 행복한 순간을 한데 모아 뷰 파인더에 담았다. 찰칵, 찰칵, 파도에 발을 담그고 다시 찰칵, 저 멀리 윤슬을 구경하다가 옆모습을 찰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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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먼 휴양지로 떠난 기분이 들었다.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이 되어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해변에서의 경험을 다시 떠올려봤는데 새삼 이곳이 나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기뻤다. 아직 못 가본 곳이 많아 이 섬을 다 누비기엔 한참은 걸릴 것이다. 그래서 더 좋았다. 이제 내게 ‘낯선 여행지’라는 제주도의 새로운 의미가 생겨났으니까. 이 이후로 고향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한층 더 사랑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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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무언가의 계기
글과 필름 - 기
휴일의 외출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외출을 준비하고, 약속 장소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인 나는 당연하게도 밖보다는 집에서, 먼 곳보단 가까운 곳에서 약속 잡는 걸 선호한다. 그래서 서울 곳곳을 돌아다닌 경험이 많지 않다. 그래서 찬빛에서의 출사가 참 소중했다. 아주 어릴 적 가본 장소를 다시 들르기도 하고, 생각도 못 해본 장소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지난 5월, 출사 조원들과 함께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들섬에 다녀왔다. 등하굣길 전철 안에서 바라보며 항상 가보아야지, 생각만 하고 미루던 그곳. 게으름을 이겨내고 가게 된 노들섬은 활기가 넘쳤다. 거리마다 사람이 붐비고, 차들이 도로를 메우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 소란이었다. 귀찮은 게 뭐라고 여태 여길 안 왔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붐비는 장소에서 벗어나 천천히 섬을 한 바퀴 돌았다. 사람들의 말소리는 점차 줄어들고, 그저 햇빛이 강물에 비쳐 쉼 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번엔 나쁘지 않은 고요함이었다. 나는 그렇게 노들섬에 매료되었다. 같은 장소에서 정반대의 두 가지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건, 내 지독한 게으름을 이겨내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출사는 새로운 장소를 경험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찾아 그 장소를 사진으로 기억할 수 있게끔 한다. 마치 내가 노들섬에 빠진 것처럼 말이다. 애정하는 것을 원동력 삼아 살아가는 나에게, 출사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난 그 힘으로 계속해서 움직일 것이다.
Film.
노들섬 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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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이유진 최재원 홍수아
교정 김수경 박유영 장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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