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중앙동아리 찬빛입니다.
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 낮게, 천천히 숨을 뱉어요.
우리가 건져 올리고 싶은 기억을 한데 묶은 채로.
어떤 내음은 내가 그릴 수조차 없는 잔상을
순식간에 뚜렷이 가져오기도 해요.
그렇기에 생각하지 못한 공간에서 갑자기 마주하는 시간들이 있어요.
찰나지만 그런 틈이 우리를 호흡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순간이 오면 실컷 들이쉬세요, 또 힘껏 내쉴 수 있게.
무개 드림.
✉ 다음 주 심도는 한 차례 쉬어갑니다. 8월 9일 저녁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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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과 필름 - 하나
초록이 짙어질수록 깊어지는 녹색의 향, 느린 오후의 햇빛을 끼얹은 이불의 익숙한 향, 가슴께에 얼음을 쏟은 듯 차가워지는 아이스티의 향, 이 계절과 어울리는 시집을 또다시 넘기면 성큼 다가오는 21년도의 향, 어쩐지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거듭나는 핸드워시의 상큼한 레몬 향, 팔찌 아래 숨어서도 존재감을 피워내는 여름 향수의 향, 태양을 머금은 살구의 첫입을 기억하는 손끝의 향, 올해의 절반이 지났음을 알리는 편지지를 넘길 때마다 한결같은 편안함의 향, 검어진 장면을 품은 필름을 넘기고 또 넘기면 쌉싸름한 향.
그리고 지금의 세계로 돌아와, 마침내 습기를 잔뜩 머금은 아스팔트가 비린내를 풍기면 우산을 준비해야 합니다. 비가 내리고 나면 숨결 하나하나와 맞닿았던 향기들이 전부 씻겨 내려갈지도요. 이미 깊게 배어버린 것들이 원래부터 없었던 것인 듯 휘발되는 일은 왠지 외롭습니다. 그럼에도 영원을 바라보게 되는 이 계절에, 여러분의 눈동자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Film.
필름에서 향기가 난다면 소중히 잘라내어 책 사이에 끼워두고 싶은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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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香り(향기)
글과 필름 - 수아
길을 걷다 문득,
좋은 향이 스쳐 지나갈 때,
뒤를 돌아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향기에 이끌리는 것은 운명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길에서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 속 하나의 향기로 뒤를 돌아본다니… 음, 제가 생각해도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사람의 말 같아요.
저는 향수를 잘 쓰는 편은 아닙니다. 사용하는 물건 중 향이 나는 것은 핸드크림뿐인 것 같아요. 쓰던 핸드크림이 끝나갈 때쯤, 새로운 향을 찾아봅니다. 잔잔한 삶 속의 작은 이벤트, 기분 전환을 하는 느낌으로요. 조금은 귀찮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이 향기가 절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기 때문이에요. 타인의 향기를 맡고 길에서 뒤돌아보는 것처럼요. (저는 시트러스 계열의 가벼운 향을 좋아합니다. 심도를 읽고 있는 여러분은 어떤 향을 좋아하실지 굉장히 궁금하네요!)
지금은 H에게 선물 받은 핸드크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받은 지 꽤 되었지만, 아끼고 아끼다가 이제서야 쓰기 시작했어요. 생일을 맞은 제게 H는 이건 꼭 써봤으면 좋겠다면서 자신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향의 핸드크림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은은하고 차분한 향은 H가 생각나는 향이었습니다. 향만으로도 상대를 떠올린다는 건 조금 부끄러우면서도 낭만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더 아끼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여러분에게도 상대를 떠올릴 수 있는 향기가 있나요?
길에서 문득,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서로를 돌아볼 수 있는 그런.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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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과 필름 - 못
안녕하세요. 여름의 싱그러움만 가득 담아 보내며, 여름의 한복판에서 인사드립니다. 못입니다.
푹푹 찌는 여름은 향기로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지나고 보면 여름은 왜인지 향기롭게 기억되지 않나요? 香水(향수) 없이도 향기로운 여름의 鄕愁(향수) 덕분인 것 같아요. 여름은 유달리 이상한 계절인 듯합니다. 계절을 보내고 쨍한 햇빛을 머금은 사진을 들춰보면 괜스레 그리워져요. 여름 안에 있을 때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 햇빛에 눈을 찌푸리고, 옷을 펄럭이며 도대체 언제 여름이 끝나냐며 투덜거리기만 했던 것 같은데 말이에요.
분명 애틋해질 이 여름에 향기에 관한 저의 향수를 나누어드릴게요.
저는 모든 감각 중 후각이 가장 발달(?)했습니다. 어렸을 적 아파트 복도에서부터 냄새로 우리 집의 저녁 식사 메뉴를 맞히고, 현관문을 열며 엄마가 오늘 켜놓은 향초의 이름을 맞히는 게 저의 소소한 취미였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가 아직 저를 부르기 전에 친구의 향기로 친구가 왔단 걸 알아차리고 복도로 나가곤 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아빠가 공항 마약 탐지견으로 취직하라고 권해주셨는데, 진지하게 적성에 잘 맞을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사실 후각이 좋은 건 그다지 일상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상이 쉽게 피로해지죠. 그런데 이 생각이 바뀐 하루가 있었습니다. 며칠 전 향기를 좋아하는 J와 함께 📍그랑핸드에 다녀왔어요. J는 저에게 후각이 좋으면 자주 피로할 것 같다고 이야기해 주었고, 저 또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근데 함께한 하루 동안, 이 글을 써 내려가는 동안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어요. 청계천으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시원하게 부는 바람에 J를 닮은 J의 상쾌한 바다 향이 코에 스쳤고, 언제든 이 향으로 이 순간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손쉽고 향기롭게 행복을 그릴 수 있는 거죠! 어디선가 그 샴푸 향이 불어오면 고등학생 시절이 떠오르고, 길을 걷다 친구의 향수와 똑같은 향을 맡고 친구를 떠올리며 행복을 품고 다시 걸어갑니다. 님은 어떤 향으로 어떤 순간을 떠올리시는지 궁금해요.
마약 탐지인의 후각을 가진 만큼 향기로운 무언가들을 아주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향 관련 브랜드와 향기로운 무언가들을 소개해 드리며 마칠게요.
🏄 surfer - 룸 스프레이를 판매하는 브랜드입니다. 영화, 음악 등을 주제로 담아낸 향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친구가 좋아하는 작품의 향을 선물하는 재미가 쏠쏠해서 선물용으로도 추천해 드립니다. 온라인 스토어만 있지만, 작은 용량의 샘플도 판매하니 설명을 읽어보시고 맘에 드는 향이 있다면 샘플로 먼저 구매해 보세요!
🧴 그랑핸드 - 멀티 퍼퓸과 핸드크림, 사쉐 등 향 관련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입니다. 서촌, 홍대, 도산 등 서울 곳곳에 오프라인 매장이 있어요.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산뜻한 향부터 묵직한 향까지 다양한 향조가 있어 취향을 탐색해 보기에 알맞은 곳입니다.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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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이유진 최재원 홍수아
교정 김수경 박유영 장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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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 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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