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에 맞게 풍경이 바뀌듯이 계절마다 느끼는 감정이 있다. 여름에는 늘 녹아버리는 감정들, 겨울에는 늘 녹여버리고 싶은 감정들이. 기온을 타고 올라가는 나의 체온에는 일정한 박자감이, 박자감을 타고 음표가 되어 흐르는 감정들이 있다.
짜증, 불쾌, 답답, 자유, 해방, 행복…
그렇게 녹아버린 감정들은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의 골짜기처럼, 어느 욕조에 풀어놓은 입욕제처럼, 빵을 만들기 위해 넣은 예쁜 색소의 파도처럼 본질을 잊고서 융합된다.
그런 계절의 한가운데서,
그런 햇볕의 최고조에서,
그런 걸음의 끝자락에서,
발견했던 특별한 것 없는 장미를 기억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간 서울로에서 본 장미 옆에 새겨진 단어를 보고 의아했더라지.
“녹아웃.”
그 아이는 녹아웃 품종의 장미였다. 관심이 조금 생겨 알아본 결과, 내가 아는 장미와는 다르게 화분이라는 정해진 틀 안에서 고고하게 자라고 있던 아이였다. 더운 지역에서는 더욱더 크게 성장하는 특성까지 갖춘. 참, 서울은 장미 덩굴 하나 마음 편히 들어설 곳 없이 물질로 가득 찬 곳임을 새삼 느낀다. 게다가 서울은 덜어낼 줄은 모르고 채울 줄만 아는 공간이기에 갈수록 뜨거워지기만 한다. 문득 이곳에서 여름을 나기에 이만한 아이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보다 영국에서 온 네가 더 서울에 어울리는 것 같았다고 하면 너는 무슨 기분이었을까.
“녹아웃.”
처음에는 꽃말인 줄 알았던 그 말이 내가 여름마다 느끼던 녹아버리는 감정의 매개체일 줄이야. 나에게도, 인간에게도 품종이 있다면 나도 너와 같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름의 한가운데를 뜻하는 하지에 가깝게 태어났기 때문인지, 늘 녹아버릴 것만 같은 순간이 쌓일수록 태양과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나보다 네가 서울에 어울리는 이유를 너는 알까. 나는 늘 나의 태양에 다가가고, 다가가기 위해 자라고, 자라다 보면 틀을 벗어나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 태어났지만, 너는 아니었으니.
“녹아웃.”
더울수록 잘 자라는 너처럼 낮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여름 나기를 사랑하던 나. 생일이 다가오면 늘 녹아버리는 감정들이 쏟아졌던 이유는 나도 모르게 너처럼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와 달리 이름과 반대로 살아가는 네가 신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말은 곧 씨가 된다고 믿기에, 감히 스스로에게 “영원”이 아닌 다른 이름을 붙여주고 싶지 않았음을.
2024년에도 어김없이 돌아온 생일, 하지, 감정.
이들은 결국 또 자신이 녹아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일종의 기록과도 같은 이야기임을 알린다.
또한, 다시 만나고 싶은 녹아웃에 대한 기억의 회고와도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Film.
같으면서도 다른 이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