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중앙동아리 찬빛입니다.
저는 소원을 믿지 않아요.
생일이 되면 매번 어른들이 눈 감고 소원을 빌라고 재촉했는데
눈을 감았다 떠도 세상은 똑같았거든요.
검은 공간에 단 둘이 부유하며
누구인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도 모르는 이에게 간절히 애원해야 한다는 게 거북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보니, 그럼에도 소원을 비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눈을 감은 순간은 내가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요.
어쩌면 나도 몰랐던 소망을요.
내가 나에게 말하지 않으면 나는 영영 모를 소망을요.
이루어지리라는 기대없이 바라는, 진실한 마음만이 여과된 형태가 소원이 아닐까요?
이루는 건 나의 몫이니
나에게 간절히 바라봅니다.
무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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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라고 바라면
글 - 칠셋 / 필름 - 사랑으로-, 영원
안녕하세요, 칠셋입니다. 님은 어릴 적부터 바라왔던 소원이 있었나요? 이번 주는 소원에 대한 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무언가 간절히 바라거나, 혹은 바라지 않거나,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에 대하여 우리는 손을 맞대어 소원을 빕니다. 너무나 간절해서 마주 댄 손바닥은 축축하거나 뜨끈하기도 하죠. 어린 저는 소원을 빌고 싶을 때면 창가로 달려갔습니다. 이상하게 소원을 빌고 싶던 순간은 꼭 밤이었던지라 마주 쥔 손과 팔이 만들어내는 삼각형 사이 보이던 고요한 밤 동네가 기억나네요. 짙고 푸른 밤하늘을 매개체 삼아 손가락끼리 깍지를 끼고 눈을 감은 채 속으로 소원을 읊습니다.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님, 용왕신님, 조상신님, 세상의 모든 신 님…’
딱히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저는 숨이 찰 것만 같이 모든 신을 불러냅니다.
모든 신을 불러낸 뒤 속으로 하는 말은
‘강아지 키우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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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동물 인형들을 좋아했고, 그 중 특히 분홍색 복슬복슬한 귀를 가진 푸들 인형을 최고로 좋아했던 저의 소원은 바로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인형이 진짜 강아지가 되게 해달라고 꾸준히 빌었던 기억도 나네요.
이렇게 간절한 소원이 소원으로만 남게 된 이유는 바로 엄마의 반대 때문이었습니다. 동물보다 식물을 좋아하는 엄마께 매번 강아지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늘 농담으로 거절하셨습니다. ‘강아지를 들일 거면 너나, 네 동생이나, 너희 아빠 중에 한 명이 나가고 들여와라.’ 이런 식으로 말이죠. 농담 뒤에 가려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아마 기관지가 좋지 않은 저를 걱정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저의 오랜 소원에 가까워진 적이 있었습니다. 두 살 터울의 남동생과 서로 말로, 몸으로 죽일 듯이 싸운 저녁. 엄마께서 저와 동생을 거실 바닥에 불러 앉힌 다음 진지하게 입을 여셨습니다.
‘너희… 강아지 키울래?’
엄마 입에서 먼저 이런 말이 나오다니! 믿을 수 없는 날이었습니다. 엄마께선 무슨 방법을 써도 매일 싸우는 저와 동생이 강아지와 함께하면서 친해지기를 기대하셨을 겁니다. 오랜 소원이 이루어지려는 순간… 저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아니’였습니다. 부모님 두 분은 모두 맞벌이, 학교 때문에 바쁜 동생과 저. 절대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적은 우리 가족에게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선택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바라던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저의 대답으로 인해 소원은 정말 ‘소원’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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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보다 조금 더 큰 지금은 그 소원이 터무니없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동시에 소원을 거절했던 그날의 생각 역시 크게 달라진 바 없습니다. 반려동물과 함께하기 위해선 온전히 나의 시간이 있고, 안정된 공간이 있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금전적 여유가 있는 날 책임감으로 그 소원이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지금은 소원하는 대상이 강아지에서 고양이로 바뀌었지만요.) 미래의 나에게 그때까지 꼭 힘내보라는 말을 덧붙이며, 님이 품은 소원도 이루어지길 바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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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과 필름 - Raven
여러분은 달맞이꽃을 아시나요? 달맞이꽃은 마치 밤하늘의 달빛을 모두 머금어 곧 쏟아질 것 같은 샛노란 빛을 내는 꽃입니다. 어여쁘기만 한 외형과는 달리, 이 꽃과 얽힌 슬픈 이야기도 있는데요, 달을 너무나 사랑해서 달이 뜨기만을 기다리다 죽은 요정의 간절한 소원으로 피어난 꽃이라는 설화입니다. 요정의 이런 애절한 소원 때문인지, 이 꽃은 ‘소원’ 그리고 ‘기다림’이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처럼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에 맞는 기다림이 있기 때문일까요, 저는 이러한 달맞이꽃의 꽃말이 참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 꽃은 억겁의 시간인 하루의 반나절을 모두 지나, 달이 뜨는 밤까지 고개를 꼿꼿이 들고 그를 기다릴 겁니다.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고 햇살이 뜨거웠다 한들, 기다리던 달이 살금 얼굴을 내미는 그 순간만큼은 환히 만개하여 그를 맞이하겠지요. 아마 달맞이꽃에게는 긴 기다림보다는 자신의 소원인 달을 잠깐 만나는 것이 더욱 중요했을 겁니다.
저도 달맞이꽃처럼 무언가를 갈망하는 저의 소원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고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진실된 소원을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요?
#_ 애인愛人
저는 늘 온전히 사랑하고 또 그만큼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애인愛人’, 서로 애정을 나누며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사람. 사회가 형용하는 애인은 언어가 담고 있는 수많은 ‘애인’과는 다르게 어느 정도 형식이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애정을 갖고 서로를 돌아봐 줄 수 있는 누구든 ‘애인’이라는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요즘 새로운 사랑의 형태를 유독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누구보다도 소중한 애인이 되어주었습니다. 기쁠 때 함께 웃어주고, 좋은 것을 보면 서로를 떠올리고, 한 명이 슬퍼하면 그를 공감하고 함께 슬퍼해 주는 그런 사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것 하나 없어 보이지만 서로를 너무나 닮은, 매일 투닥거리면서도 진심으로 싸우지는 않는 그들의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보편적으로 형용하는 사랑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을 만들어 가는 그들을 보면서 괜스레 부러워졌습니다.
또 한번은 책을 보면서 새로운 사랑의 형태를 발견했습니다. 최근에 읽은 ‘구의 증명’에서 이해되지 않지만 동시에 동경하게 되는 그런 사랑을 목격했습니다.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 같이 있자는 거지.’ 그들이 정의한 사랑은 이랬습니다. 기이했지만 그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이런 수많은 사랑의 형태를 마주하면서, 저에게 찾아올 또 다른 ‘애인’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고는 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만나게 될지 모르는 저의 ‘애인’을 그저 온전히 사랑해 주고, 나도 온전히 사랑받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면서 오늘도 조용히 행복한 소원을 빕니다.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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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긋한
글과 필름 - 영원
지긋함의 연속인 나날을 산다고 말하던 당신이 있다.
무엇이 그리도 지긋하냐며, 지긋하게 묻던 나도 있다.
“어제는 지그시, 오늘은 지긋이.”
삶이 아무리 무료해도 그 지긋함을 지그시 참아가던 어제가 있다면, 삶이란 나와 함께 늙어가는 친구이기에 그 지긋함을 지긋이 곁에 두는 오늘이 있는 것이라고.
그런 당신에게 나는 어제 같은 사람인지, 오늘 같은 사람인지를 물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고 있기에 지긋함을 느끼는 당신임을 알면서도,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고 있기에 지긋함을 고수하는 당신임을 알면서도.
어쩌면 나는 당신에게 어제와 같은 오늘의 사람이 되어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고, 당신의 삶이 되어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고, 당신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조차 지긋하게 느껴질 지경. 당신을 곁에 두고 같은 문장을 반복적으로 나열하게 된 네 번째 해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한결같이 나는 당신을 지긋하게 바라보며 축복의 촛불을 밝혔다. 당신의 지긋한 삶이 25번째로 돌아온 날을 지긋하게 축하하는 마음을 담았다. 앞으로 돌아올 수많은 날도 내가 축하할 수 있기를 지긋하게 염원하는 나는 제쳐 둔 채로 노래를 불렀다. 혹여나 나의 소원에 너의 소원이 가려지는 날, 이 지긋함에 마침표를 찍게 되는 일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지긋한 당신의 나날을 앞질러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
당신의 지긋함에 내가 지긋하게 있기를 바라는 것,
당신의 소원 속을 지긋하게 바라보는 것까지.
그것이 네가 태어난 뒤로 일어난 지구의 25번째 공전이 이루어진 날,
내가 지긋이 삼켰던 나의 소원이었다.
Film.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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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이유진 최재원 홍수아
교정 김수경 박유영 장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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