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생각하기에 저는 나름 잘 흔들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흔들리지 않는 ‘척’을 잘합니다. 그런 제가 자주, 또 크게 흔들리는 유일한 때는 아마 사랑을 할 때일 것입니다. 저울의 눈금이 조금의 충격에도 격하게 좌우로 움직이듯이 저는 오랫동안 요동칩니다. 그러한 흔들림은 때때로 그저 마음의 울림을 만들어내기도, 혹은 큰 폭풍우가 되어 제 안의 모든 것을 휩쓸어가기도 합니다.
‘사랑’에 대해 자주 생각해 보아요.
사랑의 구성 요소들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언제나 답을 내릴 수 없는 것은 그것의 잔인한 속성 때문일까요?
그러다, 저는 항상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려 봅니다. 지금 당장 마주 보고 싶은 누군가입니다. 웃는 모습을 보고 싶고, 같이 끝없이 느리게, 느리게 걷고 싶어지는 사람이에요. 울고 있을 때에는 가만히 등을 쓸어내려주고 싶고, 그저 편안한 잠을 선물해주고 싶은 사람입니다. 어쩌면 저 모든 작디작은 욕심들이 제가 찾아낸 사랑의 실마리가 아닐까 스스로 묻게 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용기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선을 넘고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니까요. 손잡고 저 안쪽으로, 안쪽으로 가겠다는 말이니까요.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믿겠다는 것입니다.
행복도, 슬픔도, 그로 인한 모든 결과를 감내하겠다는 것이니까요. 삶을 편린으로 조각내고 하나하나 낱낱이 경험하겠다는 결심이니까요.
저는 남을 믿지 못한다는 말로 포장한 채 나 자신을 믿지 못해서 꽤 오랜 시간 아팠습니다. 그러나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아파했던 모든 순간, 그리고 모든 시간 속에는 사랑이 가득했었음을,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은 나밖에 없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잔뜩 나의 부피를 늘렸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되어요.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감정들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잔뜩 몸에 힘을 주고 움츠렸던 시간들이에요. 여러분은 버스 손잡이가 왜 흔들리도록 설계되었는지 아시나요? 작용-반작용 관계를 이용해 그 충격을 줄여주기 위함이지요. 어쩌면 사랑 또한 마찬가지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저 마음을 흔들림에 맡기는 것 말이에요. 흘러가는 물속에 가만히 몸을 뉘이듯이, 불어오는 바람에 움직이는 한 올 한 올의 머리칼을 느끼듯이. 흔들려도 좋아요.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들을 겪어도 내가 나로서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내가 그 어떤 순간에 가도 나를 사랑해 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찬바람이 부는 오늘, 저는 마음을 놓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