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중앙동아리 찬빛입니다.
어느새 점점 두꺼운 옷을 찾는 계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들 얇은 옷을 정리하고 따뜻한 옷은 꺼내셨나요?
가을은 계절의 변화를 만끽하기도 전에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것 같아 매년 아쉽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짧은 순간을 조금이나마 더 소중히 여기고 싶어져요. 그래서 이 계절을 유독 아끼게 되는 걸까요?
요즘 버스를 탈 때마다 창 밖의 색이 바래가는 나뭇잎을 구경하곤 합니다. 곧 있으면 여름의 푸르름은 완전히 사라지고 노란색, 빨간색으로 알록달록하게 물들 것 같아요. 여름에서 가을로, 또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매일, 조금씩, 변화하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답니다.
오늘은 하나, 최소, 지구, 우디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통해 구독자 여러분들도 가을의 여운을 더 만끽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메론빵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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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과 필름 - 하나
안녕하세요, 여러분.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저는 방학 동안 열심히 놀고 학교 일들도 준비하면서 꽤 바쁘게 보냈던 것 같습니다. 개강하고 난 9월도 생각보다 쉽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 보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 계절이 성큼 다가왔더라고요.
여러분도 가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사계절 중에 가을을 가장 좋아합니다. 제가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는 많지만 가장 큰 이유는 걷기 좋은 계절이라서 그렇습니다. 저는 이맘때쯤 걷는 걸 참 좋아해서, 언젠가 알바가 끝나고 집까지 40분이나 걸리는 거리를 걸어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노래를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걸을 때도 많지만 머릿속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기도, 또 모른 채 지나쳤던 풍경들에 감명받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번 가을은 제가 필름 사진을 찍기 시작하고서 처음 맞는 가을이라, 카메라에 어떤 장면들이 담길지 더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수많은 가을들은 계속해서 찾아올 테지만 2023년의 가을은 이번뿐이니, 더 열심히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가을은 편지를 쓰기 참 좋은 계절이기도 합니다. 작년에 제가 받았던 첫 가을 편지에는 추신으로 이런 문장이 달려있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말로 가을의 안부를 전해요”. 편지에 하나하나 눌러 담은 글자들이 오로지 누군가의 안부를 묻기 위해 모여든 사랑의 조각들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혹시나 글씨가 예쁘지 않아서, 이런 말은 쓰지 말 걸, 하며 후회가 된다 하더라도 구태여 가을은 그런 마음들조차 용서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가을을 좋아하시는지,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그런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기회가 된다면 여러분의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쌀쌀한 날씨에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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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과 필름 - 최소
여름의 끝을 알리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여름 내내 무겁게 몸을 짓누르던 습하고 더운 공기가 물러가고, 조금은 가벼워진 바람이 제 몸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조용히 응시하는 시기입니다. 일종의 해방감마저 느껴집니다. 가까워 보였던 하늘은 닿을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높이까지 높아졌습니다. 공기의 밀도가 달라졌고, 새벽에는 자신의 열을 식히기 위해 식물들이 내뿜은 이슬방울들의 향이 납니다.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어떤 일이 시작되었고, 또 어떤 일은 끝이 났습니다.
상실에 대해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잃어왔고, 잃어갈 것들을 생각해 본다는 의미입니다.
가만히 앉아 떠올려보면 얻은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얻은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잃어왔습니다.
잊고 싶지 않았던 기억들, 한때는 없으면 죽을 것만 같이 느껴지던 친구들. 이유 없는 열정, 누군가를 미워했던 마음들, 지금까지 스쳐 지나온 무수히 많은 순간순간들, 심지어는 불행하고 참을 수 없이 괴로웠던 순간들마저도.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상실해왔고 또 상실해 갈 거예요.
누군가는 가을이 상실과 소멸의 계절이라고 말합니다. 나무가 제 빛을 잃고 조용히 나뭇잎을 떨구듯이, 주변의 많은 것들이 가장 풍요로웠던 한때를 지나 가만히 침묵과 고요의 시간을 날 준비를 합니다. 저 역시 가을이 되면 제가 상실해온 것들에 대해, 사라져간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짐. 상실의 사전적 정의입니다.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진 것들에 대해 생각하면 언제나 슬퍼집니다.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아무리 달려가도 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무력감마저 들게 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라져가기에 그 시간들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고, 그런 기억과 감정을 느꼈던 매 순간순간들이 더욱 소중해집니다. 거기서 느껴지는 마음들을 더 애정 어린 시선을 담아 마주합니다. 그러고는 이내, 역설적으로, 그러한 소중한 순간들은 언제나 내 삶에 다시금 찾아올 것이라는 작은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이런 믿음은 삶에 아주 큰 용기는 아니더라도, 무거워진 마음을 덜어내는 데 도움을 줍니다.
사진은 산책하며 찍은 길거리의 풍경입니다. 가을만큼 산책하기에 좋은 계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방을 내팽개쳐두고, 작은 카메라와 가벼운 겉옷 하나만 걸친 채 스스로에게 침잠해 몇 시간이고 걷고 싶은 계절이지요. 여러분도 가을의 계절감이 스스로를 힘들게 할 때, 가볍게 산책하며 떨쳐낼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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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을을 보내는 방법
글과 필름 - 지구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지구입니다.
요즘의 날씨는 어떤가요? 어느새 버석한 가을로 향하는 시간의 변화를 느끼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의 글은 제가 좋아하는 시의 한 구절로 운을 떼 보겠습니다.
‘그래요, 근래 ‘잘 늙는다’는 것에 대해 고민합니다.
달이 ‘지는’ 것, 꽃이 ‘지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합니다.
왜 아름다운 것들은 이기는 편이 아니라 지는 편일까요.
잘 늙는다는 것은 잘 지는 것이겠지요.’
윤진화. <안부> 中
여름이 뜨거움, 열정과 같은 단어로 설명되는 것 같이, 저는 가을이라는 계절에 익다, 지다 그리고 늙다는 수식어를 붙여보곤 합니다. 곡물이 익어가면서 푸릇한 초록이 갈색으로 물드는 변화를 이해하고, 낮과 밤의 기온차를 버티며 고개를 숙이는 그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장면들을 통해 기쁨과 슬픔을 번갈아 겪으며 나이가 들어가는 ‘늙음’ 또한 자연의 순리임을 느낍니다.
위의 시를 읽고 나서는, ‘지다’의 두 가지 뜻을 떠올리며 이와 ‘늙다’를 연관시켜 생각해 봅니다. 잘 살기 위해 버둥거리며 힘들어하는 순간에, 결국 잘 져보는 것 또한 잘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되새기며 잠시 쉬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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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익어가고, 져가는 순간을 찍어보려 했습니다. 필름에 담아내는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 순간들 중 하나입니다.)
가을이라는 계절엔 활기를 느끼게 하는 연한 초록보다는 짙은 갈색들이 눈을 채우기에, 종종 건조하고 쓸쓸한 기분에 빠지게 되는 듯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따뜻한 낮의 햇빛을 즐기고, 때로는 ‘지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이번 가을도 잘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는 사계절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완연한 가을입니다. 앞으로도 여전히, 짧게라도 이 계절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크니, 부디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가을을 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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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과 필름 - 우디
가을. 여름 내내 이 계절만을 기다려왔는데 드디어 코가 시큰해지고 쌀쌀한 날씨에 따듯한 햇볕을 받을 수 있는 시기가 왔다. 사실 나는 이 날씨를 코와 피부가 가장 먼저 알아채는, 만성 비염인이다. 비록 바깥바람의 상쾌함을 느끼는 동시에 재채기가 나고, 이유 없이 눈물이 흘러 사연 있어 보이는 여자가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 계절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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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반드시 유럽에 가야겠다고 다짐했고, 그게 가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전 긴 여행이 시작됐다. 베를린에서 며칠을 보내고 어제 근교의 소도시인 드레스덴에 왔다.
어제는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걸 하는 여행을 했다. 내가 망설이거나 '여기로 가볼까?' 물었을 때 여행 메이트 S는 언제나 흔쾌히 '그래!'하고 대답해 준다. S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여행하면서, 떠나기 전 아빠가 해준 말이 생각났다. 우리 삶은 내 의지가 아니라 관성에 떠밀려 살아가는 시간이 많으니 이렇게 완전히 쉬어가는 타이밍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고 싶었던 신발을 사도 되고 아름다운 공원을 발견하고 떠오르는 열기구를 보고 엄청난 행위예술가와 락카 아티스트를 본 모든 일은, 우연이지만 모두 우리의 의지이기도 했다.
낯선 곳에서 보내는 이번 가을은 어떻게 기억되고 기록될까. 돌아갈 때면 한국도 만연한 가을이 되어있겠지. 사랑하는 계절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기다려진다.
- 프라하로 떠나기 전 드레스덴 스타벅스에서 적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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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박유영 최윤영 최재원
교정 유수민 정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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