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중앙동아리 찬빛입니다.
8월 한여름, 해가 저물고 어둠이 찾아온 시간입니다. 밤이 되었지만 뜨거운 열기가 사라지지 않아요.
밖에서 들려오는 매미 소리와 덜덜거리는 선풍기 소리를 베개 삼아 누워있으면, 괜스레 생각이 많아집니다.
누군가는 지워지지 않는 더위로 인해, 또 어떤 이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잠 못 드는 여름밤입니다.
익명의 부원, 매실, 최소, 지구의 글로 잠 못 드는 여름밤을 달래봐요.
ps. 파도 소리로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92914의 ‘Okinawa’를 들으며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57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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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과 필름 - 익명의 부원
안녕하세요, 심도 구독자 여러분. 다들 방학은 잘 보내고 계신가요?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날과 끔찍하게 더운 날이 번갈아 가면서 찾아오는 이번 여름이 유독 힘들진 않으신가요? 저는 어쩌다 보니 가벼운 여름감기에 걸려 이 더운 날씨에 코를 훌쩍거리며 잔기침을 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너무 더워 잠도 오지 않는 이 여름밤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여름밤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해가 져서 낮의 열기가 쉽게 가시지 않고, 매미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울어대지만, 낮에 비해 아주 조금이나마 선선해진 날씨 덕분에 산책하기에 딱 좋기 때문인 듯합니다. 특히 에어컨을 틀기엔 그다지 덥지 않지만, 집 안에만 있기엔 답답한 저녁에, 저는 동네 친구들과 밤 산책을 나갑니다. 아이스크림을 사거나, 텀블러에 얼음을 가득 넣어서요. 이렇게 가벼운 간식을 들고 저와 친구들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최근에 봤던 영화나 책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본 재미있는 이야기, 혹은 최근 하고 있는 생각 등 대화 주제는 계속 바뀌고, 이리저리 튀기도 합니다. 이상하게 밤이라는 시간은 낮보다 진솔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지 않나요? 오랫동안 알아 온 친구들과도 별거 아닌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늦은 밤이 되면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이야기를 하게 되더군요.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고민들도, 누군가에게 생각을 털어놓는 것만으로 작은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참 이야기를 하다 집에 돌아와서 씻고 침대에 누우면 가볍고 뽀송한 마음으로 잠이 들게 됩니다. 저는 이렇게 매해 걱정이 쌓여가는 여름밤들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여러분께도 잠은 오지 않고 생각은 많아지는 여름밤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네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무더운 밤들을 모두 이겨내고 다시 시원한 밤을 맞이할 때까지, 여러분에게 행복만 가득하면 좋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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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과 필름 - 매실
(매년 이렇게 생각했지만) 올해는 유난히 더운 여름이네요. 여러분, 잘 지내고 계시나요? 저는 아쉽게도 이번 여름에 새벽까지 뒤척인 날이 많았습니다. 왜 잠에 들려고 누우면 더 생각이 많아지는 걸까요.. 그래서 이 밤을 보내는 게 어렵고, 싫기도 하지만 하루 중 비교적 시원해지는 시간이라 좋기도 해요. 동네 카페에서 책을 한 시간 정도 읽고 저녁 7시 반이 되어 나왔는데, 아직도 날이 밝은 거예요. 거리에는 여름 저녁 특유의 푸른빛이 감돌았고 분홍빛 노을이 신기할 정도로 하늘을 가득 채웠어요. 하늘을 더 넓게 보고 싶어진 저는 학교 언덕까지 올라보았습니다. 계속 걷느라 땀도 나고 더웠어요. 하지만 여름 저녁에 느낄 수 있는 이 독특한 공기가 좋습니다. 나름대로 ‘차분한 열기’라고 정해봤어요. 다른 계절에 한 번쯤 여름 생각이 나잖아요? 전 이날의 노을과 차분한 열기가 떠오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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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에어컨보다 선풍기가 좋아졌어요. 에어컨 바람은 금방 실내가 차가워져서 피부가 오싹해지는데, 선풍기는 미지근한 바람이라 가까이에서 오래 쐬어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풍기 날개가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소리가 마치 머릿속을 청소해 주는 듯해요. 덕분에 생각보다 금방 잠드는 효과를 보고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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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생 시절엔 이맘때쯤 친구가 집에서 자고 간 적도 있는데, 말만 잠이지 수다를 떨며 밤을 지새웠어요. 여기서 재밌는 점은 방이 어두워서 서로의 얼굴이 보이지 않고, 대신 창문 너머 희미한 빛을 받는 실루엣을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얼굴을 볼 수 없으니까 목소리의 모양에 귀 기울이게 되고, 단어를 내뱉는 속도 같은 평소엔 알아채지 못했던 고유의 자취를 발견하기도 해요. 여름밤은 누군가를 새로운 방법으로 볼 수 있게 도와주네요.
혹시 밤바다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어릴 적 밤바다의 집어삼키는 듯한 파도 소리가 뭔가 꺼림칙해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새까만 밤에 삼켜져 뚜렷하지 못한 수평선이 너무나 아득했어요. 그런데 최근 밤바다를 다시 가니 다르게 느껴지더군요. 끝이 안 보이는 캄캄한 그곳은 끝나지 않는 고민과 걱정거리들을 던져버리기 쉬웠어요. 그곳에선 아무도 모르게 그저 검고 흰 파도와 함께 한순간 사라지고 맙니다. 선선한 공기와 솨아 울리는 소리가 마치 ‘그렇게 힘들게 마음 쓰지 마’라고 포근하게 대해주는 것 같았어요.
바다는 어쩌면 낮보다 밤과 더 닮아있을지도 모릅니다. 깊고, 넓고, 항상 우리 곁에 있으니까요.
두서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했는데, 제가 일찍 잠들지 못하는 이유를 드러낸 것 같아 조금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여름밤 수다처럼 편히 읽어주신다면 좋겠어요.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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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함께 밤바다를 구경하던 중 아빠가 갑자기 폭죽을 사 오신 거예요! 그래서 생각지도 못한 폭죽놀이를 했습니다. 여러분도 여름밤의 추억을 많이 만들면서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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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글과 필름 - 최소
여름밤은 참 신기한 시간입니다. 뭉근한 더위가, 세차게 쏟아지는 비가 마법을 부리고, 그리하여 끝끝내 용서하고 싶지 않았던 이를 용서하게 되거든요.
또 여름밤은 잊고 있었던 기억을 천천히 더듬어 보게 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고속도로를 지날 때면 미지근한 유리 차창에 기대어 끊임없이 지나가는 가로등과 표지판을 가만히 응시해 봅니다. 마치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은근히 불어오는 습기 냄새 가득한 더운 바람을 귀와 코, 피부와 머리카락으로 느끼면 아주 오래전의,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한, 오로지 머릿속에서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으로 과거의 아주 소중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검은 아스팔트 위의 고양이, 푸르다 못해 저마다의 빛을 맘껏 뽐내는 길 위의 풀들, 여름의 슬픔을 참지 못하고 맴-맴 우는 나무 위의 매미들.
제 몫을 다해 돌아가는 선풍기와
제 몫을 다해 우짖는 풀벌레의 울음소리
익숙해졌던 몸짓과 익숙하지 않은 마음들.
모든 생명들이 자신의 생명을 불태우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순간임을 여름밤에 문득 깨닫습니다. 그리고는 세상 모든 만물들을 사랑하리라 다짐합니다. 다른 이에게 준 만큼 받아야 한다는 이기적인 마음, 다른 이의 행복에 진심으로 기뻐하지 못했던 마음, 남과 나를 끝없이 비교하는 마음. 용서하기 힘들었던 마음을 품었던 나 자신을 비로소 용서하게 됩니다.
저는 가끔 여름밤에 끝없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지금의 나는 너무나 뜨거운데, 곧 겨울이 찾아오면 쉽게 식어버릴 것 같아서요. 나의 행복이, 사랑이 한순간에 꺼져버릴 것 같아서요. 내 곁에 살아 숨 쉬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의 단편적 기억으로 끝날까 봐서요. 이 두려움은 사실은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모닥불에 연료를 넣어 온기를 가만히 유지하듯, 지금의 소중한 기억들을 연료 삼아 차갑디차가운 겨울을 날 거예요.
여러분도 여름밤의 마법을 빌려 나를,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과거 속에만 살고 있는 누군가를 떠올려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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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짧은 선선함
글과 필름 - 지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지구입니다.
오늘의 글은 여러분의 ‘잠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요즘 잘 자고 계신가요?
저는 180분 예약을 맞추어 둔 선풍기가 꺼질 때쯤, 자꾸 깨어나 버리는 얕은 여름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름의 밤은 유독 잠이 오지 않는 나날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열대야라는 지독한 더위 때문이기도 하지만, 잠시나마 느낄 수 있는 바람의 선선함처럼 그저 지나가 버리는 밤의 시간들이 아쉽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여름의 낮은 길지만, 그만큼 오래 뜨거워, 집 앞 편의점에 얼음을 사러 나가는 것조차 쉽게 마음먹지 못하게 합니다. 편안한 옷, 가벼운 가방만을 들고 긴 산책을 떠나는 것을 좋아하는 저에게, 이런 여름의 낮은 힘들기만 합니다.
시원한 곳만을 찾아 엉덩이 붙이게 하는 뜨거운 낮을 보내고, 해 대신 달빛으로 빛나는 밤이 오면 저는 드디어 산책을 떠납니다. 운이 좋게도 집 앞에 자리한 산책로를 혼자 걷기도 하고, 골목골목 구불구불 아는 가게가 많은 친구의 길잡이를 따라 조금 먼 여정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다른 계절과 비교하여 체력 소비는 크지만, 저와 같이 늦은 밤의 매력을 즐기러 나오신 분들을 마주하거나, 미뤄둔 산책을 나온 동물 친구들을 보며 웃을 수 있어 분명하게 재미있는 여정입니다.
앞으로는 뜨거움과 서늘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이 여름의 밤을, 어느새 지나가 버릴 더위를, 어떻게 하면 더욱 사랑할 수 있을지 고민 해볼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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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카메라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밤 산책 출사에서 찍은 사진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일단 찍어보자는 마음에 셔터를 눌렀던 때라서 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우하하... 그래도 흔들리는 바람과 조금의 꿉꿉한 더위가 느껴지실까요?
이번에는 지남이 아쉬운 여름밤처럼 조금 짧은 글을 써볼까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온전히 여러분의 마음에 닿았으면 하는 작은 욕심을 숨겨두었지요 :->
더운 여름밤 깊은 밤을 주무시라고 해야 할지, 밤이 아쉬우니 원하는 곳으로 산책을 떠나 보시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원하는 방향으로 행복하시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오늘도 저의 이야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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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문주원 박유영 이지윤 홍희서
교정
김나연 신민주 정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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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의 35번째 이야기,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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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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