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중앙동아리 찬빛입니다.
먹구름이 햇살을 막고 비 웅덩이가 그런 하늘을 비출 때면 진정한 여름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습한 공기를 타고 온 장마의 소리는 거세고 무겁지만, 반대로 경쾌한 물방울 소리는 훌훌 털어버리는 기분이 들어요.
있는 그대로의 여름을 보내는 이 시기, 여러분도 모쪼록 기운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매실 드림. |
#1. 장마를 기대해볼까요 글과 필름 - 지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지구입니다. 평균 6월 하순에서 7월 하순에 오는 장마전선이 이번 여름에도 예외는 없이 다가오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비가 오는 날들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비가 오는 날과 해가 쨍쨍한 날 중에 선택하라고 한다면 고민 없이 해를 선택하는 편이었습니다. 비에 바지 밑단이 젖는다거나, 우산을 걱정해야 한다거나, 카메라를 쉽게 꺼내기 불편하다 등의 다양한 이유로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에 마냥 처져 살 수는 없었기에 좋은 기억들을 하나씩 심어 두기 시작하니, 이제는 비 오는 날의 매력을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서서히 비가 오기 시작하는 요즘, 카메라를 들고 싶은 날이 있었습니다. 오래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는 날이었는데, 비가 온다고 해서 걱정이 앞섰습니다. 친구와 함께 이곳저곳에서 멋진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우산을 들고 있으면 카메라를 꺼내기 힘들고 찰나를 놓치기 쉽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이날은 다행이도 오후가 되자 비는 그쳤고, 진한 녹음만을 남겨두었습니다. 운이 정말 좋았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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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날 담아온 사진들입니다. 사진은 참 신기합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날의 분위기와 날씨가 직관적으로 보이니까요. 사실 이건 제가 필름을 사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동안은 비가 무서워서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비 온 후 물기 어린 나뭇잎, 떨어지는 물방울들 그리고 깊어진 녹음을 잔뜩 찍을 수 있었습니다. 해가 나지 않아서 생각한 것보다는 조금 더 어둡게 나왔지만, 그날의 날씨가 그대로 담긴 것 같아 마음에 쏙 들어온 사진들이 탄생했습니다. 아마도 이번 여름의 장마를 책임지는 좋은 기억을 얻는 데 성공한 것 같죠?
다음으로는 어쨌든 지나야 하는 이 꿉꿉한 장마철을 잘 보낼 수 있는 저만의 방법을 몇 가지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첫 번째는 향초입니다. 비 오는 저녁, 창문을 활짝 열고 빗소리와 함께 향초를 피워보세요. 귀로는 일정한 빗소리가, 코로는 기분 좋은 향이 다가오는 그 시간이 굉장히 소중해지실 거예요 :) 두 번째는 녹음입니다.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나 수풀의 초록빛 매력은 비가 올 때 짙어집니다. 쨍쨍한 해를 받아 버석한 초록도 좋지만, 흐린 하늘을 품고 있는 진초록도 매력적이랍니다. 가만히 지켜보며 어두움에 빠져도 좋고, 카메라와 필름에 담아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우울입니다. 저는 비가 오는 날들이 길게 이어지면 공기 중에 떠도는 물기 때문인지, 종종 우울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때를 빌어 마음껏 우울을 소비하고 그 원인과 핑계는 무조건 비로 돌립니다. 이 비는 언젠가 그칠 것을 알기에, 우울이나 불안도 그칠 것을 기대하며 그저 잠시 빠져 있습니다. 저에게는 이 방법이 해가 떴을 때 다시 일어날 힘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장마가 시작된 요즘 저는 위와 같이 잘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장마와 함께 다가오는 여름이 기분 좋은 기대로 가득하시길 바라며 글 마칩니다. 끝으로 이번 여름의 장마는 다치는 사람 없이, 어디에도 피해 없이 그렇게 잔잔히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을 두고 갑니다.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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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 비오는 거리에서 춤을 추자 글과 필름 - 최소
장마. 여름철에 여러 날을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이나 날씨. 또는 그 비. 저는 어렸을 때 장마를 참 싫어했어요. 기분이 좋지 않았고,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 없었고, 철봉에 빠져있었던 저에게 빗물 가득한 모래 장위 철봉은 맘에 들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비 오는 날이 좋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친구들과 비가 미친 듯이 오던 날 비를 쫄딱 맞으며 뛰어다니기도 했어요. 비 오는 날이 좋은 이유는, 비가 오는 날 특유의 공간이 주는 울림이 있거든요. 공간의 울림은 윙윙 귀 주변을 맴돌다가 잡념을 증폭시키고는 귓속으로 들어옵니다. 그럴 때면 작은 방이, 그리고 그 속에 있는 내가 꼭 이 세상과는 단절된 채 먼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것 같아요. 그러면 저는 제 자신을 온전히 자각할 수 있게 됩니다. 오른손이 왼팔을 감싸 안는 감각을 느끼고, 머리카락이 허벅지를 간질이는 감각을 느껴요. 그냥 그렇게 깊은 곳으로 잠수하는 것 같아져요. 제 인생에 장마와도 같은 시기를 겪었기 때문에 이 거센 빗줄기들이 좋아진 걸까요? 사실 누구나 한 번쯤 장마처럼 비가 쏟아지는 시기를 지나간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보내왔을 수도, 지금도 보내고 있을지도 몰라요. 저 역시 아직은 장마와 장마의 끝 그 어딘가에 발을 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비를 그저 맞고만 있지는 않아요. 우산을 쓰기도, 우비를 챙겨 입기도, 혹은 나무 아래로 도망을 가기도 해요. 정말 원할 땐 그냥 비를 맞아버리고 흠뻑 젖기도 합니다. 비는 언젠가 그치고, 물은 언젠가는 다 말라서 오히려 뽀송뽀송한 나로 돌아올 테니까요. 비는 언제나 그칩니다. 장마는 언제나 끝이 나지요. 비가 언젠가는 그친다는 믿음. 그 믿음 하나면 무더운 여름도, 습기 가득한 장마도 버틸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에도 환한 햇빛이 쏟아지길 온 마음을 담아 기원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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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과 필름 - 담청
안녕하세요, 여러분. 담청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7월, 이제는 완연한 여름이 다가왔습니다. 7월의 여름은 6월의 여름과 달리 한층 더 습한 이미지가 강한 것 같은데요. 6월을 떠올렸을 때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바닥이 그려지는 반면, 7월은 어쩐지 정글같이 녹음이 우거진 숲이 그려지곤 합니다. 아무래도 장마가 찾아오기 때문일까요? 생명력을 가득 머금고 쏟아지는 빗줄기와, 그것을 맨몸으로 고스란히 다 흡수하는 흙과 풀잎들의 냄새가 느껴지는 하루하루입니다. 아무래도 사진가에게 있어서 비는 그닥 달가운 손님이 아닙니다. 사람은 비를 맞아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카메라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방수가 되는 최신식 카메라가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필름 카메라의 경우는 습기에 굉장히 취약합니다. 집에서 카메라를 보관할 때 습기가 없는 서늘한 곳에 보관하라고 말할 정도이니까요. 그럼에도, 사진가는 어쩐지 모험과 도전을 멈추지 못하는 존재이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빗줄기 속에 뛰어들게 됩니다. 우산을 한 쪽 어깨와 턱 사이에 끼우고,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더라도 비 오는 날의 축축한 풀냄새를 기록하고 싶으니까요. 오늘은 저의 그런 경험을 공유해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보여드리는 모든 사진들은, 비 오는 날 고개를 기울여 어깨에 우산을 끼우고는 찍어낸 사진들입니다. 꽃과 풀 사이로 방울방울 맺히는 빗줄기가 너무나도 아름다운 까닭에, 절대 그냥 지나쳐갈 수 없던 장면들. 우선 이 장미 사진들은, 장미가 피어있었던 만큼 장마철에 찍은 사진은 아닙니다만 개인적으로 굉장히 아끼는 사진들입니다. 향수 중에서 ‘비에 젖은 장미 향’을 구현한 향수가 있을 정도로, 물기 있는 꽃잎 향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향이 아닌 실제 장미로부터 그런 향을 맡을 수 있어서 참 행운이라고 생각했던 날이었습니다. 저는 평소 장미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편이었는데, 어쩐지 비를 맞고 있는 장미에게서는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반짝이는 태양 아래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몇 배는 더 진중하고, 고귀하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  |
 | 다음으로 보여드리는 사진은, 장마철 한강 공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런 날씨에 카메라를 들어도 되나, 생각할 만큼 빗줄기가 꽤 거센 어느 날이었습니다. 물방울들이 생동감 있게 달려있는 풀잎을 찍고 싶다는 일념으로, 필름 카메라를 매고 집을 나섰습니다. 카메라는 케이스에 씌워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비에 젖을까 한 팔로 꽁꽁 싸매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디뎠던 기억이 납니다. 사진을 찍을 때는 어깨와 턱으로 우산의 막대를 있는 힘껏 고정하고요.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물이 바로 이 사진입니다. 저의 카메라가 놀라울 만큼 그때 그 순간을 잘 담아내준 것 같아서, 볼 때마다 신기하고 뿌듯한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사진을 보고만 있어도 시원한 파도 소리 같은 빗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합니다. |
 | 안타깝게도, 결국 저의 수동 카메라는 이 사진을 찍고 난 뒤 고장이 나서 수리점에 맡겨지게 되었습니다. ‘카메라를 너무 혹사시킨 것은 아닌가’하고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금방 수리할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곧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필름 카메라가 습기에 취약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으니, 값비싼 경험을 하게 된 것이라 좋게 여기고 있습니다. 올해 장마철에는 절대로 비 오는 날에 필름 카메라를 들고나가지 않으려고요. 그래도, 다만··· 부슬비가 내리는 어느 아침에는 카메라와 함께 산책을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투명하게 맺혀 빛나는 물방울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으니까요. 아름다운 물빛 여름의 한 장면을 필름으로 다시금 담게 된다면, 그때 또 공유해 드릴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여름 보내세요! |
발행 문주원 박유영 이지윤 홍희서
교정 김나연 신민주 정다은 |
심도의 29번째 이야기, 어떠셨나요? 레터를 보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나, 문의사항이 있다면 하단의 버튼을 눌러 작성해주세요. 그럼 다음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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