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사진 중앙동아리 찬빛입니다.
더운 햇살이 내리쬐는 동안
초록빛의 식물들은 반짝이고 있습니다.
이름 모를 나무들을 보며 떠오른 생각인데,
하늘 아래 같은 초록은 없다는 거예요.
새벽 안갯속 푸른색, 산들바람을 타고 흐르는 옅은 녹색, 노을빛을 받은 올리브색 ···
저마다의 초록을 가졌다면 저마다의 향기도 지니고 있겠지요.
초록내음은 누군가에겐 짙을 수도, 때론 미세하게 스쳐지나갈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 오래 기억될 추억을 만들어 준다는 점이 참 신비롭습니다.
초록이 가득한 글들을 읽을 생각에 벌써 설레어요.
익명의 부원, 윤, 우디, 57이 서로 다른 초록내음을 이야기합니다.
매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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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과 필름 - 익명의 부원
초등학생 때 5월의 나뭇잎 색은 연두색도, 초록색도 아닌 오묘한 빛이어서 가장 아름답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후로, 5월이 되면 저는 자꾸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을 메운 나뭇잎을 봅니다. 하늘에 가득한 오월의 나뭇잎을 감탄하며 보는 동안 초록이 좋아졌는데, 필름 카메라에 담긴 초록은 유독 생동감 있어서 초록이 더욱 좋아졌습니다.
새로운 초록을 맞이하기 앞서 지난 초록의 사진을 종종 꺼내 보는데, 그런 사진을 보면 초록의 냄새가 어느새 코끝에 나는 듯합니다. 오늘 심도를 읽는 동안 초록내음을 맡으실 수 있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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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열면 계절의 바람과 냄새와 소리가 차츰 얼굴에 닿는 게 좋아 겨울에도 창을 열곤 합니다. 요즘엔 창문을 열면 초록내음으로 가득 찬 바깥 공기가 밀려 들어옵니다.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초록내음을 맡을 때면, 귀찮은 것도 잊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동네 산책이라도 합니다. 일 년도 채 버티지 않고 지나갈 초록의 계절을 누리고자 냉큼 나가면 항상 기대했던 것보다 더 행복합니다. 이십 년 넘게 맡았지만 초록내음은 여전히 좋다는 점이 행복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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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초록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면 슬슬 자전거를 탑니다. 같은 길인데도 걸을 때와 자전거를 타고 갈 때는 시야도, 감각도 다르다는 점이 재밌습니다. 저는 따릉이 정기권을 결제한 후 자전거를 틈틈이 타는데, 서울 어디서든 자전거를 탈 수 있으니 유용합니다. 이번 봄 여름 날씨 좋은 날에는 자전거를 한번 타 보시기를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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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따라 초록의 색이 달리 보이는 것처럼 냄새도 분명 다르게 느껴집니다. 마냥 초록인 것과, 햇빛이 통과하여 반투명해 보이는 초록, 그림자 속에 묻힌 초록, 서쪽에서 늘어진 햇빛을 받아 조금 노래진 초록은 모두 다른 내음과 기억을 가집니다.
적응이 안 되는 무더위는 힘들지만 여름을 뒤덮을 초록을 떠올리면 여름이 반가워집니다. 사소한 것 같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기대하고 버티도록 하는 초록내음이 새삼스레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추신. 강아지를 담으려 했는데 앞에 있는 식물에 초점이 잡힌 사진입니다. 처음에는 아쉬웠지만 보면 볼수록 초점이 엉뚱한 곳에 잡힌 덕에 시골 강아지의 순하고 맹한 성격이 잘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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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금 계절은 초록색 스펙트럼을 지나는 중입니다
글과 필름 - 윤
여러분은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저는 네 개의 계절 중 봄을 가장 좋아합니다.
제가 4월에 태어났기도 하고, 봄에는 꽃이 피고 모든 게 새롭고, 왠지 행복한 기대와 상상을 하게 되기도 하고, … 그런 이유들을 대어보지만 그냥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것 같아요. 목련과 벚꽃의 향기는 유난히도 매혹적이고 달콤한 것 같은데, 비가 한 번 오면 모두 씻겨내려가 버립니다. 특히 이번 봄은 예상치 못하게 빨리 찾아왔다가 지나간만큼 더욱 강렬했는데요, 마치 비눗방울이 볼에 닿아 터지는 순간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올해의 저에게 여름이 코 앞으로 다가왔음을 알리는 초록색 향기는 분홍빛 봄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었어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흐드러지게 핀 벚꽃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맞으며 아침 산책을 하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는데, 이제 그것을 즐길 수 없다니.. 솔직히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만큼 제가 올해 봄을 아끼고 좋아한다는 뜻이겠죠. 작년에 벚꽃이 졌을 때는 이 정도로 아쉽지 않았던 것 같은데.. 참 매년 비슷한 것을 보아도 내 생각에 따라 계절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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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 벚꽃을 보러간 날 벚꽃이 많이 져버려서 얼마나 슬펐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슬퍼하기만 할 순 없으니.. 한 번 생각의 전환을 해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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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천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머리 위로 초록색 버드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린채 춤을 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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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연히 따져보면 아직 봄이 다 가지 않았습니다. 그저 벚꽃 그 다음 단계의 또 다른 봄일 뿐이에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4월 마지막 주인데요, 벚꽃은 졌지만 이팝나무가 밤이면 더욱 돋보이는 하얀색 꽃을 가득 피우고 있고, 목련은 졌지만 무성한 초록 사이로 철쭉이 빨강, 자주, 흰색.. 찬란하고 당당하게 피어있습니다. 그렇기에 봄이 지나가버렸다고 슬퍼하기엔 이릅니다. 아직 외투를 두고 나가기엔 춥기도 하구요!
이 글을 여러분이 읽게 될 때 즈음엔 또 어떤 꽃이 피어나고 있을까요?
예전엔 봄을 하나의 계절로만 여겨왔었는데, 봄 안에서의 잘게 나누어진 과정들을 제가 이제야 보게 된 것 같네요. 벚꽃은 졌지만 우리를 환영할 또 다른 꽃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고, 벚꽃 또한 내년에 다시 우리를 찾아올 거예요. 그러니 저도, 여러분도 지나간 아쉬움에 맺혀있느라 지금 내 머리 위에 어떤 꽃이 피어났는지, 하늘은 어떤 색인지, 나뭇잎의 채도는 어제보다 얼마나 짙어졌는지, 오늘 냄새는 무슨 색인지를 놓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느낀 오늘의 초록내음을 16진수 색상코드 중에 한 가지로 뽑아보자면 대강 #3F8A6C 색상 정도 인 것 같아요.
비가 와서 푸른빛이 강한 오늘의 초록내음을 느끼며,
윤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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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23년 4월 11일
글과 필름 - 우디
날씨: 흐리고 비 🌧 / 일어난 시간: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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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밖이 너무 어두워서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다. 두리에게 늦을 거 같다고 연락을 하니 두리는 더 늦을 거 같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분명 집을 나올 때는 비가 부슬부슬 내렸는데 버스에서 내리니까 갑자기 엄청나게 쏟아졌다. 카페까지 걸어가는 5분도 안 되는 시간이 바지에 제대로 그라데이션이 생겼다. 카페에 도착했는데 두리에게 우산이 없다고 연락이 와서 마중을 나갔다. (어떻게 이 날씨에 우산을 안 가져올 수가..) 그래도 아까만큼 비가 많이 오지는 않았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다 줬는데 그 사이에 비가 또 거의 그쳐버렸다. ^^;
카페에 와서 각자 할 일을 하기도 전에 9월의 여행을 계획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래도 오늘의 목표는 출사니까, 굳은 결심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한바탕 비가 지나간 창경궁은 신비로웠다. 고요한 분위기, 물방울이 맺힌 식물, 걸을 때마다 축축한 바닥을 스치는 발소리, 귀여운 새소리, 자꾸 마주치는 삼색 고양이까지.
자연의 내음은 비가 올 때 더욱 짙어지는데, 오늘의 흙냄새와 풀냄새가 유난히 좋았다. 이 비가 지나가고 풀이 더욱 무성해질 때의 모습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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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온 대온실은 정말 사람이 없어서, 어딘가 몰래 들어온 거 같은 느낌이 들었고, 고양이들이 놀랄까봐 더 조심 조심 발걸음을 옮기게 됐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공간에 정갈하면서도 가득한 식물들이 참 아름다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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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헤어지려고 했지만 이 날씨에 이자카야를 가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간단히 꼬치와 국물요리에 하이볼을 먹고 헤어졌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우중충한 하늘과 거추장스러운 우산을 보며 다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설렘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내서 기쁘다.
망설임과의 싸움에서 이길 때는 항상 많은 걸 얻는다는 사실을 다음 망설임의 순간엔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초록내음이 가득한 날, 일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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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 - 57 / 필름 - 57, 낱말
Spot 1. 북서울 꿈의 숲
북서울 꿈의 숲은 집 근처라서 친구들과 충동적으로 피크닉을 하고 싶을 때 방문하는 곳이에요. 고양이와 사슴도 있어서 볼거리도 많습니다. 봄에는 벚꽃 명소로 유명하고, 여름에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며 가을에는 가족들이 함께 연을 날리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리고 겨울에는 다양한 눈사람과 눈썰매를 타는 사람, 그리고 약간은 광기 넘치는 눈오리광인들 까지.. 다채로운 공간이지만 저는 북서울 꿈의 숲의 여름을 가장 사랑합니다. 벚꽃이 다 떨어지고 초록색 잎이 나올 때, 잔디밭이 녹색 물결로 물들 때, 머리가 약간 핑 – 돌만큼 강한 햇빛을 받으며 한 손에는 필름 카메라를 들고 산책하면 ‘초록의 계절 여름이 왔구나.’ 생각하곤 해요.
Spot 2. 경주의 대릉원
작년 여름에 동기들과 다녀온 경주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으라고 하면 바로 대릉원에서 보낸 시간입니다. 대릉원의 초록은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갔던 시기에는 정말 덥고 비가 오락가락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높은 나무 한 그루도 없어 땡볕을 온전히 받으며 대릉원을 둘러보는데 경주에 쉽게 올 수 없다는 생각에 셔터를 평소보다는 쉽게 눌렀던 것 같아요. 덕분에 그 초록의 대릉원을 기록하고 여러분에게 사진으로 제 기억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네요. 다행입니다. 대릉원을 나오며 내일 아침에 다시 와서 산책해야지 했지만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했어요. 여러분이 대릉원에 가신다면 저 대신 아침의 초록내음을 맡아주시길 바랍니다.
Film
#1. 북서울 꿈의 숲의 치즈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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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
#2. 같은 공간, 다른 시선_경주 ‘대릉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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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낱말 -
#3. 같은 공간, 다른 시선_경주 ‘비밀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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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문주원 박유영 이지윤 홍희서
교정
김나연 신민주 정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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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의 23번째 이야기,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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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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