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정동아리 찬빛입니다.
우표를 모으듯, 낙엽을 책갈피에 끼우듯 우리는 동네의 작은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담곤 합니다.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삼색 고양이, 오후 세 시면 골목에 번지는 빵 냄새. 사소한 풍경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어느새 동네를 나만의 장소로 만들어 줍니다.
그곳에는 분명 우리가 보내 온 시간들이 쌓여 있겠지요.
오늘은 네 명의 작가가 모은 동네의 조각들을 펼쳐 봅니다. 천천히 거닐다 발길이 머무는 풍경이 있다면, 슬쩍 챙겨 가셔도 좋습니다.
이 레터를 읽는 동안,
여러분의 마음속 동네에도 조용히 불이 켜지기를 바랍니다.
큐티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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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과 필름 - 박하
떠나고 나서야 선명히 보게 된 나의 첫 동네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다들 ‘고향’ 하면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시골 쥐 출신으로서는 도시에 대한 로망이 엄청났기에 나고 자란 동네가 지루하고, 어서 벗어나고 싶은 곳으로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거리를 두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나 봐요! 상경한 지 벌써 5년이 넘은 지금은 고향을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방문한 동네는 묘하게 특별한 느낌이 들더군요. 자연이 가득해서 그런지 여유로운 느낌이 바람을 타고 전해졌어요. 빽빽한 빌딩에 익숙해진 눈에 듬성듬성 알록달록한 주택들이 신기하게 느껴졌고, 5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피아노 학원과 노래방이 반가웠습니다. 추억이 깃든 학원가 속 새단장한 놀이터도 저를 반겨주는 것 같았고요! 도시에서는 별이 잘 안 보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는데, 밤에 불빛이 거의 보이지 않는 고향에서는 선명한 별을 볼 수 있다는 게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이제서야 특별하게 보이는 동네를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고 방방곡곡을 탐방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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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그대로 펼쳐진 등굣길이에요. 냇가를 지나 이제는 사라진 GS마트를 지나 언덕을 오르다 보면, 알록달록한 지붕 주택 뒤로 교회와 아파트가 보이는 정겨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듬성듬성 나 있는 풀과 가끔 마주치는 강아지와 고양이가 반가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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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바닥에 나무 놀이 기구가 있던 기억 속 놀이터가 알록달록 반질반질하게 리뉴얼되어 있었어요. 미끄럼틀에서 물귀신 놀이를 하고 흙바닥에서 모래를 파던 추억이 생각나는 곳인데, 달라진 모습이 낯설면서도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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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매번 마주치던 표지판이에요. 필름 카메라로 찍으니, 빛이 반사되어 더 예쁘게 담겼어요! 앞뒤로 온통 나무와 풀이 자라 있고, 근처에 사과나무가 잔뜩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아직 잘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지금은 사과나무 뒤에 사과 모양 의자도 생겼답니다!
여러분의 첫 동네는 어떤 곳인가요? 언젠가 다시 보고 싶은 풍경이 있다면, 카메라를 들고 구석구석 탐방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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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과 필름 - 익명의 부원
이 동네는 내가 태어난 곳과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땅에 박혀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우리 집을 이 동네로 옮긴 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나는 아직도 이 동네를 수집하고 있다. 수집에 사용한 도구는 Olympus Pen EF, Kodak Color Plus 200이다. 수집 방법은 간단하다.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 수집하고 싶은 대상을 필름에 담으면 된다. 다음은 작성 중인 동네 수집 일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 동네의 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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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빵집은 동네에 오랫동안 존재해 온 것으로 보인다. 주말 아침이 되면 동네 주민들이 빵집에 들러 빵을 두 손 가득 들고 가는 모습이 여러 번 관찰됐다. 평소에는 지나치기만 했지만, 동네 수집을 계기로 처음 빵집을 방문해 보았다. 수집 후 빵을 먹어 본 결과, 동네 주민들이 빵을 두 손 가득 들고 나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2. 동네의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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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 놀이터는 모두가 관찰하기 쉬운 곳에 있다. 동네 주민들이 놀이터를 이용하는 모습은 쉽게 관찰하기 어렵지만, 가끔 창문 밖으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통해 누군가가 놀이터를 이용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수집 당시 모래 위에 찍힌 발자국을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3. 동네의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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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 자전거들은 다양한 모양으로 발견된다. 어떤 자전거들은 정해진 자리가 있는 것처럼 항상 가지런하다. 한편, 어떤 자전거는 삐딱하다. 아무래도 이 동네의 자전거들은 각자의 모양이 있는 듯하다. 다음 수집에서는 자전거들이 여전히 같은 모양인지 확인해 볼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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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과 필름 - 사랑으로-
간혹 자주 방문하기 꺼려지는 동네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서울에 위치한 부암동이 그렇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인터넷 세상을 망망대해 하던 어느 날,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과 함께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의 부암동 전경을 담은 영상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 동네에 가본 적도 없지만 한눈에 반해버리고 말았고, 다짐했습니다. 언젠가 비가 오는 날에 꼭 그 동네에 방문해 보겠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슬비가 토독토독 떨어지는 날 처음 부암동으로 향했습니다.
부암동은 언덕지대에 위치해 탁 트인 전경을 가졌으며 초록이 가득하고 자연에 맞닿아 있는 동네였습니다.
이슬비와 함께 동네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던 동네의 전경이 좋았습니다. 자동차 전조등이 도로에 번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습니다.
빗소리, 약간의 도로 위 소음, 노랫소리가 한 음악처럼 조화롭게 느껴졌고 근래 느껴본 감각 중 가장 편안하고 힐링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날 이후로 부암동에 자주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분명 행복했는데 이런 모순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요?
너무 좋아서 이 소중한 순간을 오래 간직하고 함부로 익숙해지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주 천천히 오래오래 그 공간을 떠올리며 행복해하고, 다시 찾은 공간에서 어색하지만 신선할 그 감각을 되뇌고 싶습니다.
다음번 비가 오는 날에는 부암동에 들러야겠습니다. 몇 년 만이 되겠네요!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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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과 필름 - 홍시
멀리 여행을 갔다 오는 길,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편안함과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여섯 살부터 스물세 살까지 살았던 우리 동네는 나에게 18년 지기 친구 같다. 조용하지만 내면은 단단한 그런 친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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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있는 우리 동네는 초등학교 하나, 중학교 하나, 그 둘레의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 구석의 작은 도서관, 동네를 둘러싼 낮은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네 끝에서 끝까지 걸어서 15분이면 닿을 수 있는 소박한 곳이다. 어느 날 아파트 관리실에서 이런 방송이 나왔다. “*번 버스에서 에어팟을 분실한 입주민이 있습니다. *번 버스에서 에어팟을 보신 입주민께서는 관리사무소에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을 듣고 생각했다. 우리가 이렇게 가까웠나... 누군가 분실물을 가져다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걸까. 조금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훈훈해졌다.
지금은 서울에 나와 살고 있어 동네에 들를 때마다 더욱 샅샅이 둘러보게 된다. 내가 알던 3층짜리 어린이집과 작은 공원의 운동기구, 친구와 자주 가던 카페는 사라졌고, 내가 모르는 놀이터와 무인 카페, 서점이 들어섰다. 세상이 뒤집혀도 그대로일 줄 알았던 풍경들이 어느새 낯설어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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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아직 나를 기억하는 동네의 일부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중학교 졸업 후 한동안 찾지 않았던 동네의 소아청소년과에 코로나 백신을 맞으러 간 적이 있다. 오랜만에 뵌 의사 선생님이 “할머니는 잘 계시니?”하고 안부를 물으셨을 때, 이곳에서 자라났음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길 한쪽에 직접 캔 채소를 늘어놓으신 할머니, 하교 시간이면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와플 아저씨, 겨울마다 어김없이 찾아오시는 호떡 트럭 사장님. 이곳에 살았기에 알게 된 소소한 풍경들은 언제든 나를 반겨줄 것만 같다. 먼 훗날 내게 동네를 선택할 자유가 주어진다면 비슷한 풍경의 동네를 찾아 돌아올 거라는 예감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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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심도 깊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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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곳, 이곳은 나의 최종 목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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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고은별 윤서연 이서현 최윤서
교정 강준 박지운 홍예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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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 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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