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정동아리 찬빛입니다.
어느덧 무언가를 거두어야 할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씨앗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때로는 비바람을 견디며,
긴 시간을 지나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춥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기대했던 만큼 잘 풀렸던 날도,
마음처럼 되지 않아 막막했던 순간도
어쩌면 저마다의 빛깔로 무르익어 가는 중이었을지 모릅니다.
오늘은 각자의 계절을 지나
결실의 의미를 찾아가는 네 편의 글을 소개합니다.
별난 금도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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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과 필름 - 큐티클
안녕하세요, 심도 구독자 여러분. 처음 인사드립니다. 큐티클입니다. 오랫동안 독자였던 심도에 필자로 참여하게 되어 설레면서도 많이 떨리네요.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제법 쌀쌀한 가을이 되었어요. 가을이 되면 이상하게도, 그동안 해온 일들의 결과를 자꾸 돌아보게 됩니다. 선선한 날씨를 핑계 삼아, 첫인사 겸 여러분께 제 비밀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릴까 해요.
저는 조금 이상한 계기로 지금 하는 일을 시작했어요. 제가 정말 애정하는 무언가를 만든 사람이, 오래전에 흙을 만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그 사실 하나에 홀린 듯 저도 흙 앞에 따라 앉았습니다. 이걸 가장 친한 친구 J에게 말한다면 아마 “너 미쳤구나”라고 할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여전히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요.
문제는 그다음이었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시작하니 마음이 꽤 진지해져 버렸어요.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제 손끝에서 나온 결과물을 마주하는 게 너무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제가 악착같이 쏟아부었던 노력의 형태는 분명 이게 아닌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알았어요. 애정을 쏟을수록 오히려 결과가 꼬인다는걸요. 식물에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어버리듯이, 마음을 너무 많이 부으면 그 무게에 결과물이 짓눌리더라고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어느새 완벽주의가 되었고, 저는 자꾸만 한자리에서 오래 머물렀어요. 사랑하기 때문에 거리를 두어야 한다니, 이렇게 다정한 저주가 또 있을까요.
그러다 우연히, 저를 이 길로 이끈 그 사람이 오래전에 남긴 글 하나를 보게 됐어요.
“밥을 먹을 때나 물을 마실 때에 자연스레 내가 만든 그릇으로, 컵으로 손이 가는 것은 그것이 잘 만들어졌든 아니든을 떠나 주인 된 도리로 행하는 애정 어린 행동이다.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한 나로서는 그게 어떤 형을 이루고 있어도 글쎄 그게 밉지가 않고 퍽 귀엽다.”
머리를 띵 맞은 것 같았어요. 그제야 제 기물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됐어요. 어느새 그 컵으로 아침마다 물을 마시고 있더라고요. 결실이라는 게 꼭 완벽한 결과물을 뜻하는 건 아니었어요.
그래서 요즘 제가 외우고 있는 주문이 있는데요, 여러분에게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얼렁뚝딱.
완벽해질 때까지 붙잡고 있지 말고, 일단 다음으로 넘어가기. 마음이 너무 무거워질 것 같은 순간마다 이 주문을 외우면, 어떻게든 얼렁뚱땅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게 되더라고요.
님의 결실도, 완벽하지 않아서 더 님다운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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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과 필름 - 해류
좋아하는 말이 있다.
세상에 풍운은 많이 일고
해와 달은 사람을 급급하게 몰아붙이는데
한 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
/ 우당 이회영
어렸을 적 엄마가 늘 유념하면서 살라고 했던 말 중 하나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바라는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만큼의 기쁨은 없다고. 그리고 그것은 삶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평가가 가능해진다고, 그러니 최선을 다해서 살라고. 그래서일까. 내 인생에서 ‘결실’이라는 것이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것 같다. 나의 ‘결실’은 내 삶이 끝나고 나서야 그것이 맺어졌는지, 실패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므로.
대학에 합격하는 것, 성공하는 것, 학점을 잘 받는 것,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는 것, 취업을 하는 것... 이런 것들은 전부 나에게 결실이 아니라 과정이다. 굳이 따지자면 게임의 ‘세이브 포인트’에 조금 더 가까운 개념 같다.
그래서 조금 부끄러운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고민을 했다. 그렇다면 내가 맺고 싶은 ‘결실’은 무엇일까. 나는 아주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꾸고 싶은 것 같다. 어렸을 적부터 그랬다. 잘못된 것을 보면 고치고 싶어서 안달이 났고, 말하지 못해서 병에 들었다. 현실에 대한 불안과 압박, 세상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용기와 실천력이 없다는 자기 객관화, 진로에 대한 방황을 겪으면서도 늘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그것을 욕망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조금이라도 세상을 좋은 쪽으로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다. 나도 안다.
그러나 부끄럽지 않은 글이야말로 얼마나 부끄러운지를 생각하며 글을 쓴다. 어쨌든 말을 해버렸으니 조금이라도 그렇게 살기 위해 더 노력하지 않을까.
내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장례식장에 모여서,
그래도 해류는 참 노력했지, 참 좋은 영향을 미쳤어, 라고 말할 수 있길.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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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과 필름 - 무화과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눈치채지 못해 놓쳐 버린 것, 용기가 없어 놓아 버린 것. 이제는 놓아 주어야 할 것들의 자리를 찾는 일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다.
여름내 무성하던 초록의 잎사귀들은 몸에 주었던 힘을 주욱 빼놓는다. 그렇게 조금씩 앙상해져 가는 나무의 몸을 나는 지켜보곤 한다. 오늘은 이만큼, 내일은 얼마나 가벼워지려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묵묵하겠지. 조금 더 가볍고 바삭해진 짙은 색의 잎은 나무의 뿌리 곁에서 여름의 열기를 식히고, 새로운 싹이 돋아날 곳을 스스로의 온기로 데운다. 얼음장만치 차가운 바람과 눈이 휘몰아쳐도 버텨낼 수 있을 만큼만. 딱 알맞은 정도다.
움켜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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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진 가지 사이로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이 드러난다.
나는 어떨까. 진작 떨어뜨려야 했을 잎을 아직도 가지 끝에 매달고 있지는 않은가. 놓친 것이든, 놓아 버린 것이든, 놓아 줄 것이든. 이제는 그것들이 내려앉을 자리를 마련해 줄 때다. 탓하지 않고. 붙들지 않고.
여전히 자꾸만 뒤를 돌아볼 것이다. 그러면서도 발끝은 그 반대의 방향을 향해 돌아가고 있으리라. 가벼워지고 싶다. 그렇게 내달리고 싶다. 불현듯 멈추다가도 조금만 더. 도달할 곳을 기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아직은 익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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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과 필름 - 영영
호기롭게―어쩌면 별생각 없이― 선택한 이 주제가 제 발목을 끈질기게 잡네요. 마땅히 떠오르는 기억이 없어 입 밖에라도 내뱉어 봅니다. 결실. 처음부터 끝까지 옹골차게 들어찬 듯한 감각이 생소하기만 합니다. 결승선을 향해 치열하게 달려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걸까요.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는 살구나무가 많은데요, 때가 되면 대롱대롱 매달린 살구가 초록색에서 주황색으로 서서히 변하던 게 떠오릅니다. 주민분들이 함께 웃으며 떨어진 살구를 주워가시곤 했어요. 생각해 보면 열매가 거두는 결실이란 불특정 다수에게 적지 않은 행복과 풍족감을 선사해 주곤 하는 것 같습니다. 한참을 돌아왔네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봅시다. 그렇다면 인간의 결실이란 무엇일까요, 좁혀서 저의 결실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새해가 밝으면 일기 맨 앞장에 혼잣말을 잔뜩 적어두곤 했어요. 마치 주문을 외우듯 말이죠. 올해 첫 장에 적힌 문장 중 하나를 알려드릴게요. ‘느리더라도 나만의 속도를 찾을 것, 조급해하지 말고 맘껏 드러내자’. 다가올 한 해의 저에게 바라는 것을 두서없이 꼬박 한바닥을 채워요. 그런데 저는 정작 일기를 자주 펴보지도 않고, 바쁘게 지내다 보면 놓쳐버립니다. 시간이 흘러 일기를 펼쳐보면 이루지 못한 것이 훨씬 많습니다. 여전히 그대로인 것도 많지만 어느새 현재의 나에게는 당연해진 문장들이 간혹 있더라고요. 반드시 이루기 위해서 치열했던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말이죠.
저에게 결실이란 그런 것 같아요. 어느새 돌아봤을 때 주문처럼 적어둔 몇 문장을 살아내고 있는 것. 초록빛을 띠던 살구가 티도 안 나게 점점 주황빛이 되어가듯, 미세하게.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네요. 2027년 1월 1일에도 아마 제 일기장엔 비슷한 문장들이 나열되지 않을까요. 조금은 뻔하고, 재미없고, 그렇지만 여전히 바라는 것들. 또 까맣게 잊은 채로 지내다 보면 어느새 일부는 제 것이 되어 있으려나요?
그렇게 생각하니 결실이라는 게 영 생소하기만 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반년을 헤매다 돌아온 영영입니다. 오랜만에 뵐 수 있어 기쁘네요. 새로이 시작된 vol. 9 심도도 많은 사랑 부탁드리며,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조금은 시리지만 맑은 공기도 잔뜩 느끼고 햇볕도 따스하게 쬐는 가을을 즐기시길 바라요.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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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심도 깊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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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끝이 예정된 시작을 기꺼이 감내하며,
비로소 완성되는 아름다운 장면들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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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고은별 윤서연 이서현 최윤서
교정 강준 박지운 홍예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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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 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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