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정동아리 찬빛입니다.
외래어가 넘쳐나는 요즘, 무심코 쓰던 한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제야 보이는 새로운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속담 한 줄, 흥얼거리던 노랫말, 매일 나누는 대화 속에도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보물이 숨어 있어요.
평범해서 지나쳤던 말의 속뜻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싶은 순간,
우리가 한글을 사랑하게 되는 건 그런 발견 덕분 아닐까요?
오늘은 세 명의 작가가 담아낸
우리말의 아름다운 뜻 속으로 함께 빠져 보아요!
박하 드림.
📮 . . . . . . . . 🍂💌
심도의 새로운 시즌 Vol.9가 돌아왔습니다.
그간 평안히 지내셨나요, 님?
가을의 문턱에서 반가운 인사를 건넬 수 있어 기쁩니다.
찬바람을 데워 줄 따뜻한 마음을 모아 전해 드릴게요.
또다시 이어질 심도의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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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과 필름 - 별생각 없는 동그라미
우리는 눈에 많은 감정을 드러낸다. 오죽하면 웃는 이모티콘마저 ^^이니까.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는 속담이 있다. 나는 이 속담을 꽤 좋아한다.
친구들과 눈을 마주치고 싶다. 눈을 마주하고 대화하면 내 감정이 더 잘 전해질까, 하고. 나의 감정을 전할 수도 있지만 상대의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도 있다. 내 말을 경청하고 있는지, 다른 생각을 하는지 눈이 향하는 방향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인간은 눈으로 무언의 이야기를 정말 많이 전할 수 있다. 그래서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흰자위가 더 많게 발달한 걸까? 마음의 거울에는 왜곡이 없을까? 카메라의 거울은 렌즈를 통해 보면 상이 뒤집어지는데.
거짓말을 하면 눈을 피하고 싶어진다. 왜일까, 상대의 눈에 비치는 내가 보여서? 눈에 보이지 않는 양심을 비추는 걸까. 감정을 아무리 잘 갈무리해도 눈빛에 새어 나오고 만다. 모든 사람의 눈은 솔직하다는 사실이 좋다.
눈이 마음의 거울이라면 눈이 바라본 풍경도 마음까지 비치겠지. 그렇게 마음이 계속 변하고, 그 마음을 다시 눈에 비추고.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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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마음의 거울이라면, 카메라도 비슷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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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과 필름 - 228
몇 년 전 SNS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사라지면 어떻게 마음을 표현할 것인지 묻는 질문을 본 적이 있습니다. 특정 단어 없이 특정 단어 표현하기. 생각보다 꽤 어렵고 흥미로운 고민이라, 저는 종종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보고 싶어”, “너를 힘껏 안아줄게”, “네가 잘 잤으면 좋겠어” 등등... 다양한 대답 속에서 수많은 다정함을 느끼곤 하는데요, 그중 제 마음에 가장 깊이 박힌 표현은 다름 아닌 어느 노래 가사입니다. 오늘은 그 가사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제가 작년부터 가장 많이 들은 곡이 있어요. 바로 ‘신윤수’라는 여성 솔로 아티스트의 <Strange>라는 곡입니다. 단순한 연인 간의 사랑노래가 아닌, 사랑하는 친구들을 떠올리며 우리 관계는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묘하고 이상하고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담은 곡입니다. 가끔 타인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상하다는 감정을 느낀 적이 있으실 거예요. 처음 만난 누군가와 수상할 정도로 삶의 궤적이 비슷하다거나, 오래된 친구와 소름 돋게 같은 생각을 한다거나,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한다거나, 멀어졌다고 생각했던 사람과도 잠깐이면 다시 그때 그 시절의 우리로 돌아가는 것만 같은 경험 말이에요. 이 곡에서는 그런 이상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사는 바로 ‘더는 줄 게 없어도 널 보고 있다 보면 저 새까만 밤에도 난 더 칠할 수 있어’ 라는 구절이에요. 더 이상 전할 마음이 없을 것 같아도 바라보고 있으면 끝도 없이 자라나는 마음. 모든 색을 잡아먹어버리는 새까만 밤하늘에도 색을 더 칠하겠다는 용기. 어느 별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또 다른 나를 보며 느끼는 사랑이라니, 이만큼 이상하고 아름다운 감정이 또 있을까요? 가사에서 느껴지는 마음의 무게가 상상 이상으로 무거워서, 저는 공연장에서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눈물콧물을 다 쏟으며 울곤 합니다. 모든 마음이 바닥나 있을 때 저를 다시 한 번 가득 채워주는 문장이거든요. 그만큼 제가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꼭 한 번씩 들려주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렇게 글에 적는 것도 같은 이유이구요.
이 곡은 제가 소개한 구절을 포함한 모든 가사가 한글로 쓰였습니다. 요즘은 세계적으로 소통하는 범위가 늘어나면서 영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들이 가사에 들어가지만, 종종 이렇게 한글로 비로소 완성되는 표현을 마주할 때면 모국어가 한국어라는 사실에 큰 기쁨을 느끼기도 합니다. 과한 표현 없이 담백하게, 하지만 그 무엇보다 깊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도 참 좋구요. 저도 언젠가 이 가사처럼 나의 마음을 온전히 담은 문장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오늘만큼은, 본인만의 다정함을 어떤 단어로 표현할지 함께 고민해 보아도 좋겠습니다.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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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과 필름 - 온
삶의 의미를 잊은 채 살고 있다고 느낄 때쯤, 머릿속을 스쳐만 갔던 일들을 ‘굳이’ 하곤 한다.
나의 눈과 같은 그것만을 들고 노래를 들으며 지도 없이 모르는 길을 걸어가기. 눈이 펑펑 오는 밤 무작정 나가서 흩날리는 눈발을 가만히 보기. 강가에 걸터앉아 파도를 맞으며 노을의 모든 과정을 함께하기. 가로등 불빛보다 더 밝게 빛나는 달을 보러 망원경을 챙겨서 놀이터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남들의 사랑을 몰래 관찰하다가 찰나를 영원으로 만들기. 그리고 모두 바쁘게, 빨리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멈춤을 아는 사람들과 천천히 걸어가기.
이 모든 것을 낭만으로 묶고 싶다.
사전에 검색하면 어떤 나라 사전에도 한글 ‘낭만’이 가지고 있는 뜻의 단어는 없다. 우리의 말은 단순히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정서를 넘어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아련함과 그리움, 사소한 삶의 기쁨,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깊은 동경과 갈망... 이 모든 뜻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나의 삶의 원동력은 오직 한글로만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일까? 그 어떤 언어로도 번역될 수 없고, 번역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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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목차를 훑어서 읽을지 말지 고민하는 것처럼 나는 처음 듣는 노래의 가사를 훑어서 들을지 말지 고민한다. 가락보다는 가사가 예쁜 노래에 더 마음이 가고, 그럴수록 취미는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말을 읊는 것이 아닐까 싶고. 오랫동안 응원하고 싶었던 가수에게 일방적으로 담을 쌓기 시작한 모종의 이유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바로 아래로 떨어지듯 노래를 들으면 한글 가사를 곧장 느낄 수 있던 예전과 달리, 영어가 가득한 가사는 물이 면보에서 한 번 걸러진 것 같았다. 걸러져서 남아있는 것이 무엇이길래, 쉽게 와닿지 않았다.
설령 한글로 대화를 하더라도, 가끔은 사람들의 대화 속 붕 떠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 여기저기 방황하고 있는 것 같고, 모두가 땅에 붙어있는 가운데 나만 점점 공중으로 올라가는 듯할 때면 힘껏 무게를 실어 고개를 떨군다. 그렇게 단단히 맨 신발끈과 닳아있는 밑창을 처음으로 마주하고. 무거운 생각을 놓지 않고 있다 보면 다시 착지한 기분이 든다.
욕심은 많아서 여러 언어를 배우고 싶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 새로운 마음으로 서툰 내 국어 실력도 숨길 수 있을 것 같아서. 다른 언어를 사용할 때마다 새로운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만 같아서. 그렇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고, 여전히 완벽히 해낼 수 있는 언어도 없다.
어설픈 내 모습을 마주하고, 나는 늘 그랬듯 우리말로나마 주저 없이 다정함을 표현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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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심도 깊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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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랗기도 뾰족하기도 한 모양이 만들어낸 줄무늬는
글을 써낸 이를 눈앞에 데려다 놓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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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고은별 윤서연 이서현 최윤서
교정 강준 박지운 홍예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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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의 158번째 이야기,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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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 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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