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정동아리 찬빛입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마음은
완벽하지 않기에 꼭꼭 감춰 두고 싶지만,
어설프게 전하려 할수록 더욱 선명해지기만 합니다.
서투른 말투에도, 어색한 손길에도,
숨기지 못한 진심은 결국 배어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자글자글한 사진 속에도 또렷한 감정을 담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역시 조금은 거친 그대로, 혹은 어설픈 그대로,
고유의 다정함을 내세우며 살아가 보는 건 어떨까요?
무화과 드림.
📮 . . . . . . . . . . 💌
오늘 레터로 심도 Vol.8이 마무리됩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구독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짧은 휴식을 가진 뒤, 10월의 가을과 함께 새로운 시즌 Vol.9로 다시 찾아 뵐게요!
앞으로도 이어질 찬란한 이야기들에 계속해서 함께해 주시길 바라며,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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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과 필름 - 57
어둠 속 노이즈 하나까지 깔끔하게 지워낸 선명한 고화질 결과물을 추구하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손때가 묻은 듯 거칠고 자글거리는 필름의 입자에 자꾸만 마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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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흑백 사진에서는 눈을 사로잡는 색채가 사라지며 그레인의 존재감이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색이 비워진 자리에는 명암의 차이와 그 사이를 촘촘하게 채우는 입자의 결만 남는다. 거친 입자감은 사진에 사람의 체온과 닮은 뭉근한 온도를 실어 준다.
차갑고 매끄러운 유리나 금속 표면과 달리, 사람의 피부는 솜털과 잔주름, 삐뚤빼뚤한 지문처럼 저마다의 미세한 결을 지니고 있다. 그레인이 도드라진 흑백 사진 역시 거친 입자들이 빽빽하게 얹혀 있어 손대면 살결처럼 약간의 서걱거림이 느껴질 듯한 입체적인 양감을 만들어낸다. 차가운 평면에 불과하지만, 닿으면 이내 온기가 느껴질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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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비포장길을 지나며 남긴 몽골의 풍경과 사람들의 가감 없는 일상은 매끈하지 않기에 훨씬 또렷한 실감으로 다가온다. 잘 다듬어진 결과물보다 도리어 이러한 투박한 필름의 결이 남아 있을 때, 비포장도로를 내달리며 맞았던 흙먼지 바람과 마주친 사람의 온기를 가장 진실하게 담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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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과 필름 - 푸른
잘못 찍힌 사진을 좋아합니다. 노이즈가 잔뜩 껴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어버린 사진, 필름 사이로 빛이 스며들어 반쯤 타버린 사진, 서투른 마음에 흔들려버린 사진 같은 것들 말입니다. 평소 다른 것들에는 과할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는 편인데, 유독 사진에 있어서만큼은 불명확한 것들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사진을 한 장의 결과물로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대상을 발견하고, 그 앞에 잠시 멈춰 서고, 무언가를 느끼고, 셔터를 누르기까지의 과정 전체를 사진이라고 믿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잘못 찍힌 사진은 오히려 그 과정을 가장 정직하게 담아낸 결과물 같다고나 할까요. 현상한 필름을 받아 들고 흐릿한 사진을 바라볼 때면, 자연스럽게 기억을 더듬게 됩니다. 이게 언제였더라. 누구와 함께였더라. 무엇을 찍고 싶어서 셔터를 눌렀더라. 선명한 사진은 한눈에 장면을 보여 주지만, 잘못 찍힌 사진은 그 장면에 도착하기까지의 마음을 다시 불러옵니다. 기억의 가장자리를 천천히 만지다 보면, 그때 보았던 풍경과 공기, 함께 있던 사람의 목소리, 괜히 들떠 있던 마음까지 하나둘 스쳐 지나갑니다. 선명한 사진보다 흐릿한 사진을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되는 것은, 그 흐린 공백을 채우는 것이 저의 몫이기 때문일 겁니다. 사진을 찍을 때 내가 어떤 것을 느꼈는지를 추측하며 곱씹어보고 있으면, 그때의 따뜻하고 말랑한 기분이 흐릿하게나마 다시 느껴지곤 하거든요.
최근에는 많이 바빠져서 사진을 찍을 시간이 부쩍 줄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목적지 없이 걷는 날보다, 해야 할 일을 해치우기 위해 빠르게 이동하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막연하게 무언가를 ‘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일이 줄었습니다. 조금 슬픈 말이지만, 어차피 하고 싶은 것을 떠올려 봐도 할 시간이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예전에 찍어 둔 사진들을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잘못 찍힌 못난이 사진들을요. 당분간은 계속 바쁘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시간을 내서 카메라를 들고 목적지 없는 걸음을 다시 걸어보려 합니다. 훗날의 제가 다시 더듬어 볼 수 있는 서툴고 흐린 마음들을 조금씩 남겨두기 위해서요.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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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과 필름 - 매실
필름 사진의 질감이 평소답지 않게 유독 거슬렸던 날이 있었습니다. 원인을 찾기 위해 가까이 들여다보았더니 거친 입자 때문에 형체가 거의 사라져 버렸습니다. 소중히 담은 누군가가 가루가 되어 바스러지는 것만 같아서 무서웠습니다. 문득 간직하고 싶은 기억들은 서서히 흐릿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책장에 꽂아둔 책들의 표지가 햇빛을 받아 바래지는 것처럼. 저는 결국 매일 조금씩 부서지는 기억의 파편을 끌어안은 채, 그때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지며 살아갈 것 같습니다.
애석하게도 머릿속에 스치는 기억 중 대개는 후회했던 순간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잘게 쪼개져 사라지면 좋으련만, 되려 날카로운 조각이 되어 저를 괴롭힙니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일이었을지라도 자꾸만 곱씹게 되는, 부끄럽고 아쉽고 서투른 순간들. 잊어버리고 싶은데, 이제는 지나간 무형의 것들이 사라진 척하다가 다시 따라옵니다. 그 기억은 잠들기 전 까만 방의 천장에서 몇 초 남짓 상영됩니다. 일인칭 영화가 텁텁한 가루 사이에서 희미하게 조립되어 갑니다. 흐릿한 장면이었지만, 그때 느꼈던 긴장은 이상하리만치 선명했습니다. 밤마다 꼬리를 무는 장면들을 단숨에 싹둑 하고 잘라내는 일은 어려웠습니다. 모순적이지요. 잊고 싶은 순간만이 오래 남는다는 게. 그때의 자신을 고칠 수도 없어서 더 속상한데 말이죠.
악착같이 그림을 그렸던 고등학교 시절에 들었던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림이 거의 완성 되었을 때도 저는 남은 시간을 꽉 채워 연필을 움직이던 학생이었습니다. 눈동자를 바삐 오가며 주어진 자료의 미세한 부분까지 종이 위에 똑같이 묘사하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완성된 그림은 종이 위에 엉킨 흑연 가루만 붕 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조언해 주셨습니다. “의자에서 일어나 멀리 서서 그림을 응시하고, 눈을 슬며시 뜬 상태로 어디에 묘사를 더할지, 덜어낼지 생각해라.” 가까이 관찰할 줄만 알았던 저에게 멀리서 보는 방법을 알려주신 것이죠. 자료 속 복잡한 요소들이 공간에 스며들어 하나의 흐름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선과 점만 보이지만, 한 걸음 물러서면 복잡하게 얽혀 있던 것들이 한 장면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의 내가 있는 이유는 그때의 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투르고, 때론 엉망이었던 순간들도 결국 지금의 나 자신을 이루는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거친 필름의 입자 하나하나가 모여 장면을 완성하듯, 지나온 시간도 완벽한 순간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 테지요.
어쩌면 제가 더 오래 바라보는 사진은 완벽한 장면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추억과 아쉬움 그 중간 어딘가의 마음을 품으면서요. 저는 아마 앞으로도 자주 스스로를 확대해서 볼 것입니다. 또 후회하고, 어설픈 장면을 되감아 볼 것입니다. 다만 그때의 나를 너무 가까이에서만 바라보지는 않으려 합니다. 거친 입자가 보인다고 해서 사진이 잘못된 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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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A 양에 대한 회고
글과 필름 - 별생각 없는 동그라미
1. A 양은 강아지와 고양이 중에 후자를 더 선호했다. 늘 고양이를 길러야지, 그런 말을 하곤 했었다. 어쩌다 버려진 강아지를 마주한 그녀는 얼마 후 강아지를 기르게 되었다.
2. A 양은 자주 아팠다. 어떤 날은 아주 침울하고, 어떤 날은 아주 신경질 적이었다가도, 그러다가도 웃거나, 웃으려고 노력하거나.
3. A 양은 친구가 꽤 많았다, 아프기 전까지는. 그래도 남아준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좋든 나쁘든 언제나 함께였다.
4. A 양은 표현이 서툴렀다. 사람이 싫다고 했다. 상처 줄까, 상처받을까 두려워서. 사실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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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에 적절한 빛을 주지 못하면 입자가 거칠게 인다. 특히, 어두워진 구석은 밝히려 할수록 뭉개지고 도드라진다. 그래도 빛을 끌어모아 나에게 형태를 보이는, 보이려 애쓰는 그것은 투박하지만 다정임은 틀림이 없다. 어둡게 기록된 장면들을 자글거리는 노이즈 사이로 한없이 끌어올리고, 또 올리고.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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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SIMDO)의 여덟 번째 시즌, Vol.8 (2026. 4. ~ 2026. 8.)
- 참여한 사람들 -
글과 필름 강준(해류), 김다빈(흰동가리), 김민경(별생각 없는 동그라미), 김하정(사랑으로-), 푸른, 박유영(매실), 유수민(못), 박하, 정연우(삼열), 정우인(앞니도둑), 무화과, 최윤영(메론빵), 한다인, 홍희서(57)
발행 레이아웃 박유영 인트로 강준, 김다빈, 최윤서
교정 김민경, 이서현, 정연우
디자인 로고 박소연 카드뉴스 유주혜
총괄 박유영
thanks to 개발자 누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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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심도 깊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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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 너머의 모든 노력은 그 순간에도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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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의 157번째 이야기,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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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10월에 새로운 시즌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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