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이 유행이라고 하면 결혼도 할 여자다. 어쩌면 이혼도?
‘유행’이 일종의 콘텐츠가 되어버린 세상이다. 더 이상 유행은 그저 ‘따라하는 것’을 넘어 ‘현시점 가장 하입(hype)되는 아이템/행위’가 되어버렸다. 유행의 주역도 공평해졌다. 아이돌, 연예인 뿐만 아니라 유튜버, 인플루언서, 그리고 꽤 잦게 그 시작점을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자본만이 유행을 이끄는 시절은 끝났다는 말이기도 하고, 동시에 고도로 심화된 자본주의의 일면을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사실상 유행을 거부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다. 심지어는 유행을 거부하는 것조차 유행이 된다—홍대병과 비주류라는 단어의 유행과 홍대병을 홍대병하는 세태를 보라. ‘영원한’ 마이너 같은 건 이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현대인은 그저 끝없이 밀려오는 유행의 파도 속에서 자신에게 밀려오는 파도를 맞으면서 살고 있을 뿐이다. 이 바다에서 완벽히 벗어난 현대인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이 현상이 꽤 기껍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첫 줄에서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남들이 나 빼고 재밌는 무언가를 하는 걸 못 견디는 사람이라 더더욱 그렇다.
나는 필름 사진을 ‘남들이 다 찍길래’ 찍기 시작했다. 영화 동아리를 하던 시절,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필름 카메라를 하나씩 들고 있었고, 연극을 했다. 그래서 나도 필름 카메라를 샀고, 연극부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심도 메일링을 쓰고 있고, 잘 나온 필름 사진보다 더 값진 인연들을 만났으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터닝포인트들을 만났다. ‘나도 해볼까?’의 여파는 이처럼 보통 그리 치명적이거나 유해하지 않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물론, 그것이 주식과 코인, 부동산, 범죄와 연관되어 있지 않다는 조건 하에서만.
무엇보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해보는 것은 재밌다. ‘우리 때는 다 그랬어’라는 문장 속에서 ‘우리’로 묶일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짜릿한 일이다. 인간들은 전부 각자의 시간선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속에서 우리는 지나칠 정도로 너무 다른 상황에 놓이고, 너무 다른 감정들을 느낀다. 그 중, 우리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아주 강력한 무언가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몇 안 되는 축복일지도 모른다. 유행은 어쨌든 지나가고, 우리 모두는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유행에 둔해지길 마련이니까.
우리 모두는 기본적으로 모두와 절대적 타인이 되고 싶지 않은 법이고, 유행에 탑승하는 것은 결국 타인의 시간대와 감정에 합류하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은 욕구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을 잡는 일이다. 타인과 가까워지고 싶은 욕망은 인정하되, 그 안에서 ‘나’라는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어떤 파도를 탈지에 대한 선택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언제든 그 파도에서 벗어나 다른 파도를 탈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유행을 기피하고 보는 사람보다는, 내가 요새 타고 있는 파도는 이런거야, 하며 보여주는 서퍼들을 사랑한다. 그들과 함께하면 간접적으로나마 낯선 파도를 탈 수 있고, 내가 탈 수 있는 파도가 하나 더 늘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설령 고꾸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재밌다! 일방적 소통을 하고 있다보니, 이 글을 읽는 님의 파도들은 어떤 형태와 세기일까 궁금해진다. 언젠가 알려주실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님의 파도 속에 심도가 있어서 기쁘다.
심도가 님의 파도로서 오래오래 밀려왔으면 좋겠다.
우리 역시도 오래오래 밀려가겠다.
Fi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