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정동아리 찬빛입니다.
열매 과(果)는 밭 전(田)과 나무 목(木)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밭과 나무는
시간과 땀을 매개로
열매를 맺어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여름과 열매는 발음이 비슷하고,
그러므로 7월 달에 과일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꽤 시기적절한 것 같습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무르익은 과일을 먹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이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나면 우리도 완숙해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해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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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과 필름 - 메론빵
안녕하세요, 심도 구독자 여러분. 메론빵입니다. 이번 주에는 저의 닉네임과 조금은 어울리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뻔한 질문이지만, 여러분은 과일을 좋아하시나요? 제가 이 질문을 듣는다면 대답을 조금은 고민할 것 같아요. 아직까지 저는 누가 챙겨주지 않으면 과일을 먹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에요. 냉장고에 과일이 있어도 손질해 먹기 귀찮다는 이유로 항상 방치하기만 하는데요... 그럼에도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과일과 관련된 추억들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끝없이 먹게 되는 음식들이 있지 않나요? 저에게는 귤이 그렇답니다. 하나만 먹어야지, 하고 가져와 놓고선 금세 하나를 꿀꺽 다 먹어버리곤 다시 두 개, 세 개를 더 가져와서 먹게 되는 과일이에요. 예전에는 티비를 보면서 귤을 까먹다 보니 혼자 귤 한 봉지를 다 먹은 적도 있었어요. 당연히 그날 배탈이 났고 그 뒤로는 그래도 탈이 나지 않을 정도로만 먹고 있어요. 가끔은 두꺼운 이불을 덮고 먹는 시원한 귤이 먹고 싶어서 겨울이 기다려지기도 해요.
[얼려 먹었을 때 더 맛있는...]
몇 년 전까지 저는 블루베리 수저였어요. 고모가 블루베리 농사를 작게 하셔서 매년 저희 집에 보내주시곤 했거든요. 그 블루베리를 소분해서 냉동실에 채워두곤 입이 심심할 때마다 꺼내 먹었어요. 그래서 블루베리는 생과일일 때보다 얼린 상태일 때 더 익숙한 과일이 되었답니다. 얼렸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서걱서걱한 식감이 재밌고 달콤하니 여러분도 꼭 한 번 얼려서 드셔보세요!
[옛날에는 좋아했지만, 지금은 멀어진...]
저희 할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저는 어린 시절 신 과일도 좋아하던 아이였다고 해요. 특히 신맛이 나는 자두를 엄청 잘 먹었다는데 요즘엔 그 정도로 자두를 좋아하지 않아요. 집에 자두가 있어도 오랫동안 후숙을 해서 달달한 부분만 먹고 조금이라도 신 부분을 떼어내고 먹곤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입맛도 변한 걸까요? 요즘엔 어릴 때보다 더 신맛이 나는 과일을 멀리하게 돼요. 그렇지만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자두와 가까워지는 시기도 올 수 있겠죠?
구독자 여러분이 좋아하는 과일도 궁금하네요. 기회가 된다면 여러분의 추억과 관련된 과일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날이 많이 더우니 종종 과일도 먹으면서 건강한 여름 보내길 바라며 이번 글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들 건강 조심하세요!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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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과 필름 - 앞니도둑
땀에 젖은 옷이 등에 바짝 달라붙고 손으로 가려지지 않는 햇빛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여름이 도래했습니다. 초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공기를 들이마시면 한여름은 얼마나 더 더울까... 하는 두려움에 코앞까지 찾아온 여름을 눈을 감는 단순한 방법으로 회피하고 싶어져요.
그래도 여름이 좋은 이유는 시원한 바다에 몸을 맡길 수 있고, 초록의 잎들을 마음껏 볼 수 있고, 제철 과일들을 잔뜩 먹을 수 있기 때문인데요! 심도 구독자분들의 최애 과일은 무엇인가요? 저는 수박, 메론, 망고처럼 혀가 아릴 정도로 달고 수분이 많은 과일을 좋아해요.
작년 7월, 종강을 기념하며 언니와 도쿄로 떠났습니다. 여름의 일본은 무더운 날씨로 악명이 높아 도착 전부터 겁을 잔뜩 집어먹었는데요.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는 듯, 땅에 발을 내딛자마자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에 언니와 동시에 비명을 질렀던 기억이 납니다.
손등이 스치기만 해도 끈적함이 느껴져 괜스레 짜증이 나고, 조금만 걸어도 등을 타고 흐르는 땀에 언니와 저는 여행 내내 티격태격했어요. 그렇게 약간 불편한 마음으로 다니다가도 시원한 카페에서 과일이 잔뜩 들어간 디저트를 먹을 때만큼은 언제 싸웠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여전히 여름은 버겁지만, 달콤한 과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번 여름도 무사히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겨요. 폭염과 장마 속에서도 좋아하는 과일과 함께라면 우리는 모두 천하무적이 될 수 있으니까요!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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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과 필름 - 온
항상 진심을 다한다는 건 멋진 일이다. 난 나의 그런 점이 좋았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고, 믿거나 말거나 누구나 들어본 말이지만 난 보통 후자였다. 하루이틀도 아니었는데, 씨를 뿌리고 뿌려도 새싹조차 자라지 않는 맨땅을 바라보는 건 여전히 견디기 어려웠다. 싹이 나길 바라며 뿌린 물은 자주 나의 얼굴을 적셨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온몸이 젖었을 때 힘겹게 눈을 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건 없이 다정했다. 비옥하지 않은 땅에 기꺼이 스며들어 살게 하는 비처럼, 아무 말 없이 땅을 다져주던 사람이 있었다. 나보다 나의 결실에 간절했고, 내가 잘되길 바라는 사람이었다. 난 내가 잘되길 바랐던 적이 있던가? 나에겐 눈에 보이는 좋은 결과만이 전부였다. 모든 존재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음을 믿게 된 순간이었다.
삭막한 땅에 싹이 트고 맺은 미운 열매. 떫은맛이 나도 행복했다.
경험은 기대가 되고 기대는 설움이 된다. 내가 가는 길의 끝이 개화라고 믿었던 시간이 있었다. 전에 꽃을 피워봤으니 수월하진 않더라도 다시 피울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던 시간이 있었다. 꽃이 피고 지면 열매를 맺는 법이건만, 이번엔 열매의 차례라는 걸 모르고 꽃봉오리만 들여다보며 흘렸던 그 한여름의 땀. 땀이 눈물이 될 동안 내 안에선 열매가 자라고 있었다.
비가 와도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한참이나 봉오리를 바라보았다. 해가 뜨면 가장 먼저 달려와 물을 주었고, 흙이 문제인가 싶어 흙을 바꿔보기도 했다. 달라지는 건 없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계속 뭐라도 해보는 거였다. 인간은 희망으로 살아간다. 나도 인간이었다.
수확의 계절 가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등 뒤에는 내가 보지 못한 사이 열매가 예쁘게 자랐다. 시원한 가을이 지나고 가장 추운 겨울날, 뒤를 돌아보니 맺힌 열매 하나. 한 열매에 영양분을 몰아넣기 위해 가지에 많은 열매를 남기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가장 추운 계절 끝에 얻은 열매는 생각보다 훨씬 달았다.
p.s. 나는 비 오는 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춥고, 축축하고, 습하고... 그러나 이 비가 누군가를 살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꽤 따뜻한 날씨일지도 모르겠다. 춥지만 따뜻하고 축축하지만 포근하고 습하지만 보송한.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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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수확하는 과일인 귤은, 떫은맛, 신맛, 단 맛... 다양한 맛을 냅니다. 모든 열매가 다 달 순 없으나, 달지 않다고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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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무화과
글과 필름 - 무화과
안녕하세요, 님. 무화과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심도를 통해 님에게 저의 글을 전하게 된 것도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글을 쓰면서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바로 저의 필명이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인 무화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님은 무화과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무화과를 참 좋아합니다. 처음으로 심도를 쓰게 되었던 때는 가을, 그러니까 무화과의 계절인 9월이었습니다. 매년 그맘때가 되면 제철 무화과를 먹을 수 있으리란 생각에 늘 마음이 설렙니다. 특유의 독특한 맛과 향뿐만 아니라, 많이 먹었을 때 따가워지는 혀의 감각마저 기다려질 정도예요. 심도의 첫 원고를 쓰던 때에도 저는 무화과를 먹고 있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필명을 정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마음에 드는 무언가의 이름을 빌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노트북의 바로 옆에는 무화과가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고요. 그렇게 저는 무화과의 이름을 빌려 님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무화과(無花果)는 이름 그대로 ‘꽃이 없는 과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에는 꽃이 피지 않고 과일이 맺히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붙여진 이름 속에는 사실 약간의 모순이 숨겨져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무화과나무에도 꽃이 핀답니다. 열매의 껍질 안에 있는 과육 부분이 바로 무화과의 꽃이라고 해요. 무화과의 과즙은 꽃의 꿀이 되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무화과는 무화과가 아닌 유화과(有花果)였던 한편, 그 자체로도 꽃이 되는 과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릴 적, 자신의 탄생화를 찾아보는 것이 소소한 유행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본 저의 탄생화는 ‘무화과’였습니다. 이름에서부터 묘한 느낌이 들더라니. 아니나 다를까, 꽃이 없는 과일이라는 검색 결과에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꽃이 없는 과일이라면서 어째서 탄생화 목록에 올라와 있는 것인지 불만을 갖기도 했어요. 철없던 당시에는 그 과일, 혹은 꽃의 매력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반드시 눈에 보여야지만 대단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을 다양한 일들을 상상해 봅시다. 그리고 마침내 들여다본 그 안의 것이 우리에게 어떤 즐거움을 가져다줄지도 기대해 봅시다. 더운 여름날을 버티는 데 그 정도의 기대감마저 없다면, 너무나도 가혹한 여름이 되어 버릴 거예요. 또한, 이 더위를 이겨 내야지만 무화과의 계절이 돌아옵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견뎌 봅시다. 무화과가 가장 맛있는 계절은 생각보다 금방 찾아올 테니까요.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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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동가리의 필름. 홀로 맺힌 무화과의 모습이 왠지 귀여워 보여요. 동글동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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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심도 깊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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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찬란한 것들이 녹아 합쳐져 만들어진 이 계절을,
어떤 방법으로 살아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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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강준 김다빈 박유영 최윤서
교정 김민경 이서현 정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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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의 151번째 이야기,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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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 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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