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정동아리 찬빛입니다.
어릴 적, 식탁에 이불을 덮고 나만의 아지트를 만들어 본 적 있지 않나요?
부모님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그곳에서 우리는 키득키득 웃기도, 훌쩍훌쩍 울기도 하며 추억을 쌓았습니다.
어느새 부쩍 커 버린 지금도, 어딘가엔 지난날의 아지트 같은 공간이 있을지 모릅니다.
지친 하루의 끝에 나를 반갑게 맞아 주는 침대 속이나, 한적하게 시간을 보내는 조용한 카페처럼요.
오늘은 삼열, 57, 매실, 푸른이 저마다의 안식처를 소개합니다. 네 작가의 추억이 깃든 공간을 엿보며 님의 안식처는 어디인지 떠올려 보아요.
흰동가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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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과 필름 - 삼열
안녕하세요, 삼열입니다.
종종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요즘이지만, 대면 약속을 선호하는 데다가 마음이 동하면 30분 뒤에 만나는 약속도 만들어 뛰어나가는 제게는 충분히 해당하는 말이거든요.
핵심은 왕래가 잦은 사람과 가까워진다는 것인데, 여러분은 어떤 장소에 거점을 두고 모이시나요? 이참에 잠시 시간이 빌 때 생각나는 사람과 공간이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한테는 집보다 자주 드나들던 공간이 있는데요. 하는 일은 마감 시간에 쫓기기 일쑤고 여럿이 머리를 맞대도 답이 안 나오는 등 ‘안식’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주로 했어도, 그때는 그곳이 제 안식처였던 것 같습니다.
항상 친구들 여럿이 주위를 오가고, 정말 힘들 땐 냅다 누워버리거나 다같이 밖으로 뛰쳐나갔던 기억이 나요. 그러면 큰 일도 작아지고 쏜살같던 시간이 느리게 가는 효과가 있었답니다. 가끔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잖아요. 좌충우돌 바쁘게 할 일을 하다가 각자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땡땡이를 노리는 순간들이 참 즐거웠습니다.
지금은 어떤가 돌아보니 정든 자취방, 아주 가까운 친구들의 집, 흥인지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낙산 성곽 초입이 생각나요. 그 사이에 변화가 있었는지 예전보다 사적인 공간이 되었네요😅
특히 여름에 접어들면서는 처음의 가설을 반증하려는 듯 밖으로 나도는 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느 날은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기도 하고요. 글을 마무리하려고 보니 저한테는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이 모이는’ 장소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면서! 지금 님께서도 편하게 발 뻗을 수 있는 자리를 떠올리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장마를 앞두고 마음 둘 곳을 미리 찾아두는 건 어떨까요? 기준이 있다면 그것도 궁금합니다. 저도 새 안식처를 찾을 때가 된 것 같아서요.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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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원한 울타리
글과 필름 - 57
얼마 전,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매일 당연하게 누리던 풍경과 편리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서울에 살면서도 다른 동네에서 통학했던 J 언니는 “성신여대입구역에만 내리면 마음이 편해져.”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대학교까지, 제 모든 삶의 순간이 촘촘히 박힌 성북구가 저에게는 의식조차 못 할 만큼 당연한 공간이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성북구를 이토록 당연한 안식처로 믿고 기댈 수 있었던 건, 그 한가운데에 늘 할머니 집 마당의 기억이 단단한 뿌리처럼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록 리모델링을 거치며 할머니네 집의 모습이 달라졌을지라도, 그곳은 여전히 마음이 복잡할 때 가장 먼저 달려가는 안식처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언제나 저를 반갑게 맞아주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늘 무조건적인 내 편이 되어주는 이모가 저를 기다리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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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리모델링을 거쳐 새 옷을 입은 집이지만, 그곳에 있으면 제 마음은 신기하게도, 어릴 적 직사각형 모양의 회색 시멘트 바닥이었던 그 마당으로 되돌아갑니다. 그 작은 마당에서 저는 매년 여름이면 욕조에 물을 받아두고 놀면서 꽃무늬 쟁반에 올려진 수박을 먹었고, 커다란 뽀로로 돗자리에 누워 낮잠을 청하곤 했습니다. 겨울에는 손이 빨갛게 얼 때까지 눈사람을 만들었고, 할아버지를 도와 마당의 눈을 쓸기도 했습니다. 가끔 혼이 나서 마당에 손을 들고 서 있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이 기억마저 그리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생각만 해도 코끝이 찡해지는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입니다. 몸은 자랐지만 제 마음은 여전히 그 작은 마당에서 느끼던 냄새, 맛, 소리를 기억하고, 온기를 찾아 마음을 기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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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성북구가 주는 안도감만큼은 늘 그대로일 것 같습니다. 울타리를 벗어나야만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셨지만, 저는 아직 이 동네의 다정한 품 안에 더 머물고 싶습니다. 설령 언젠가 이곳을 떠나게 되더라도, 성북구에서 보낸 시간은 제 마음속에 ‘영원한 울타리’로 남아 언제까지나 저를 단단히 지탱해 줄 것이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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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가 지면 우리 가족은 해파리가 된다
글과 필름 - 매실
여름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이 되면, 피서를 마치고 돌아가는 이들과는 반대로 우리 가족은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발바닥에 모래가 붙는 해수욕장 말고, 딱딱한 돌 너머의 깊은 바다로.
돌의 생김새가 용의 머리를 닮아 ‘용두암’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곳은 제주도의 명소이자 우리 가족의 첫 번째 아지트이다. 깜깜한 밤에 용두암 바닷가에서 수영하고 있는 수상한 어른과 아이를 본 적 있다면 아마도 우리였을 확률이 높다. 그 정도로 우리는 밤바다 수영을 밥 먹듯이 했다. 이곳이 관광지라서 찾아온 사람들은 전망대와 이어진 계단을 내려오다가 우리를 발견하면 흠칫 놀라거나 신기하게 쳐다봤다. 가끔 지켜보던 관광객이 ‘안 추우세요?’라고 말을 걸면 붙임성 좋은 엄마는 이때다 싶어 대화를 이어 나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수다를 엿듣다 보면 ‘제주도 사람들은 다 바다 수영을 한다’라는 말도 안 되는 고정관념이 생겨나는 과정을 알 수 있었다. 머리까지 흠뻑 젖은 아빠는 급기야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나도 슬며시 웃는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무서운 가족이 아닐 수 없다. 야밤에 거센 파도 위를 떠다니는 물귀신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웅장한 이름까지 갖고 있는 바닷가를 안방마냥 드나드는 일은 지루한 여름 방학 중 가장 유쾌한 일탈이었다.
용두암은 관광객이 많이 찾아와 아무래도 난감했다. 그래서 근처의 다른 장소를 물색해 보기로 했다. 마침 해안도로 중간에 바다 방향으로 길게 뻗은 돌길이 있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신기하게도 돌들이 둥그렇게 쌓여 있었는데 마치 물놀이를 하라고 준비해 놓은 것만 같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두 번째 아지트는 이곳이 되었다. 그런데 자리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하필 그 자리에 전망대가 들어서 버렸다! 자유롭게 놀 곳을 찾아왔는데 또 이런 시련이라니... 바다까지 가려면 나무 구조물 아래로 허리를 숙여서 드나들어야 했다. 참 웃기는 가족이다. 그 장소를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나 보다. 나름 비밀스럽고 재미있었다.
수영을 마치고 짜장면 배달 주문을 했던 날이 있었다. 음식을 가지고 온 기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도착했는데 어디에 계신 거죠?” 그러자 아빠가 말했다. “아래를 보세요.” 전망대 구조물에 로프와 카라비너를 걸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우리 가족이 신이 난 표정으로 기사님을 올려다봤다. 황당한 부탁이었지만 기사님은 감사하게도 배달 가방을 매달아주셨고, 줄을 잡아당기자 슬슬 가방이 내려오더니 무사히 돌바닥에 안착했다. 기숙사에서 몰래 시켜 먹는 기분이 나서 다들 킥킥 웃었다. 입가에 묻은 짭짤한 바닷물과 맑은 웃음으로 간을 더한 특별한 맛이었다.
집으로 돌아갈 땐 갈아입을 옷도 챙기지 않아서 수건으로 대충 몸을 감싸 아빠 차에 탄 다음, 추위에 덜덜 떨면서도 차에서 흘러나오는 옛날 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어느새 여름밤의 온기로 푹 익은 집이 맞이하고 있다. 그러면 그날 밤은 잠이 솔솔 온다.
지금도 바닷물엔 행복한 추억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하늘과 바다가 검게 뒤섞여 희미해진 수평선에 나란히 매달린 한치잡이 배의 불빛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리저리 손발을 뻗어도 가로막는 것이 없는 자유를 만끽한다. 시간과 공간의 좌표에서 잠시 벗어나 해파리처럼 흐물흐물해질 때쯤 고개를 들면 나와 비슷한 해파리 가족들이 함께 물속에서 웃고 있었다. 넓은 바다를 우리가 가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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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과 필름 - 푸른
안녕하세요? 어느새 4학년 1학기가 끝난 여름방학입니다. 입학할 때만 해도 졸업이라는 단어는 아주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시간표를 짜는 마음 한구석에 늘 마지막이라는 말이 따라붙습니다. 이 등굣길도 몇 번이나 더 걸을 수 있을까. 괜히 이런 생각을 하며 홀로 센치해지기도 하고요.
저에게 학교는 늘 바쁘고 치열한 공간이었습니다. 강의실을 옮겨 다니고, 과제를 제출하고, 발표를 준비하고, 시험 기간이면 잠을 줄여 가며 하루를 버티던 곳이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학교를 안식처라고 부르는 일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학기만을 남겨두고 바라본 성신여자대학교는 전보다 훨씬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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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관의 ‘성신여자대학교’라는 글자를 바라볼 때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곳에 처음 들어서던 저는 참 서툴고 겁이 많았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여기까지 걸어왔구나. 개강 첫날, 강의실을 찾지 못해 지나가던 선배를 붙잡고, 경상도 억양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강의실을 못 찾겠어요...” 했던 순간도 떠오르네요. 시험을 망치고 엉엉 울었던 구름다리 앞 벤치도, 방황하며 빙빙 돌기만 했던 밤의 잔디밭도요. 학교는 그런 저를 한 번도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잔디밭의 평화로운 풍경을 보고 있으면 학교가 단지 치열하게 공부를 하는 곳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날에는 도망치듯 찾아와 숨을 고르는 곳이었고, 어떤 날에는 행복을 온 피부로 깨닫는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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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그마한 잔디밭은 지금껏 얼마나 많은 여자아이들을 세상 밖으로 길러 내보냈을까요. 누군가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꿈을 말했을 테고, 누군가는 울음을 삼키며 다시 일어났을 테고, 누군가는 세상에 나아갈 용기를 천천히 배웠을 것입니다. 잔디밭 위로 스쳐 간 계절만큼이나 많은 마음들이 이곳에 잠시 기대었다가, 다시 자기만의 방향으로 걸어 나갔겠지요. 생각해 보면 저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잘되지 않는 날들이 뒤섞였던 그 모든 날을 지나 지금의 제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이곳은 제게 충분히 고마운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대학 생활은 한 학기뿐입니다. 아마 마지막 학기에도 저는 여전히 바쁠 것이고, 종종 불안해할 것이고, 졸업 이후의 삶을 생각하며 마음이 조급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조금 더 천천히 걸어 보려고 합니다. 이곳이 내준 다정한 순간들을 마음속에 잘 접어 두고 싶습니다.
언젠가 정말로 성신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되더라도, 저는 이곳을 종종 떠올릴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배웠고, 흔들렸고, 자랐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성신은 단순히 지나온 학교가 아니라, 나를 찾을 수 있었던 공간이었습니다. 언젠가 어디선가 다시 불안해지는 날이 온다면, 저는 이 자그마한 잔디밭의 평화로움을 떠올릴 겁니다. 무서울 게 없지요. 나는 내가 되는 법을 알았으니까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안식처가 부디 존재하기를 바라겠습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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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심도 깊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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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충만한 사랑이, 때론 공허한 슬픔도 머물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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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강준 김다빈 박유영 최윤서
교정 김민경 이서현 정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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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의 150번째 이야기,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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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 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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