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노출 필름 같은 소리의 파장들 속에서 박하, 온, 매실이 건져 올린 소리들을 님께 전합니다.
해류 드림.
p.s. 메일 제목에 적힌 모스 부호를 변환해 보세요! 어떤 단어일까요? 🕵️
#1.
글 - 박하
필름 - 홍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끝없이 하천을 걸어본 적이 있나요? 저의 취미이자 루틴인 ‘강 따라 끝없이 걷기’를 소개합니다. 저는 머리가 복잡하거나 자연 속에서 힐링이 필요할 때면 물소리를 들으며 혼자 걷곤 합니다. 떠나는 길을 음악과 함께해도 좋지만, 가끔은 핸드폰을 끄고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스쳐 지나가던 소리를 포착할지도 몰라요!
저는 유난히 강을 좋아합니다. 사주에 물이 없어서 물을 찾아다니는 걸까요? 흙의 기운을 타고난 저는 강과 궁합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이끌리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흐르는 물과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고 있으면, 복잡했던 생각들이 서서히 가라앉고 사념들이 흘러가듯 사라지는 기분이 듭니다. 동동 떠내려가는 생각들을 뒤로하고 저는 한 걸음을 더 내딛는 거예요!
하천의 소리는 참 신기합니다. 어떤 순간에는 규칙적인 모스부호처럼 들리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잔잔한 음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같은 물소리인데도 매번 다르게 들린다는 점이 정말 흥미롭습니다. 그런 말을 들어보셨나요? 사람이 지치고 힘들 때는 가사가 없는 음악을 찾는다고 합니다. 저에게는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가 언제나 위로가 되어줍니다.
오늘 여러분께 이야기를 건네며, 조금은 당돌하게 저의 취미를 소개해 보았습니다. 저와 함께 걸으며 복잡한 생각을 천천히 흘려보내 보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소리를 알려주세요!
Film.
#2.
글과 필름 - 온
톡-. 톡-. 톡-.
길을 걷다 간지러운 소리가 들립니다. 지붕에 고여있는 어제의 빗물이 물웅덩이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집니다. 일정한 속도로 떨어지는 물방울의 소리에 나의 발걸음을 맞춰 걸어봅니다. 1g도 채 되지 않는 물방울이 몇 만 배 더 무거운 내 몸을 멈춰 세우고 날 그 시간 속에 가둡니다. 하나의 진동이 전기신호가 되어 우리가 인지할 수 있게 되는 고작 0.05초 사이 우리는 무수한 세계를 꿈꾸며 꿈을 펼치곤 합니다.
사랑에도 소리가 있을까요? 아마도 전 존재한다고 믿는 편인 것 같습니다. 때로는 믿는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의미가 커지는 일이 많습니다. 사랑은 가끔 조용합니다. 조용하기에 더 간절해지고, 간절하기에 더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굳이 소리가 나지 않아도 공기를 매질 삼아 설렘을 주고받기도 하고, 한편으론 소리가 나지 않아 조용히 식어가기도 합니다. 사랑은 종종 요상한 소리도 납니다. 원체 틀과 조각이 맞지 않는 퍼즐을 애써 맞춰보지만 우리는 끝없이 부서지고 그 부서진 조각을 틈새에 끼워 넣으며 그들만의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우연히 사랑의 소리를 발견하게 될 때면, 저는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서서 오랫동안 귀에 담아두곤 합니다. 사랑의 소리는 각자 다르기에, 하나씩 모아둔 소리들을 조합하여 참된 사랑의 소리를 찾습니다. 그러나 매번 다른 소리를 찾아냅니다. 참된 사랑의 소리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우리는 각자만의 방식으로 사랑의 소리를 만들어 낼 때 가장 거짓되지 않은 사랑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긴 유럽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아침에 같은 방을 쓰는 친구와 생긴 어떤 일 때문에 속상했었다. 한숨을 삼키다 뒤엉킨 마음을 덮어버리기 위해 볼륨을 크게 올린 록 음악을 귀에 꽂아 넣었다. 시끄러운 악기 소리 덕분에 조금은 해소가 되었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그 애에게 나는 더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내 자신마저도 속이고 싶었다. 미술관은 각자 구경했다. 화려하고 웅장한 천장화는 잠시 현실을 잊게 해주었다. 고개를 뻣뻣이 들고 다른 미술관에서도 지겹도록 봤던 천사와 악마, 신과 인간들을 열심히 눈에 담았다.
작품을 다 보고 시간이 남아 미술관 밖 공원으로 향했다.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아름다운 색을 비추는 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곤 이끌리듯 방향을 틀었다. 잔디밭 속으로 걷고 또 걸었다. 사박사박 발아래 풀들의 소리가 들린다. 하얀 바지 밑단은 흙투성이가 됐지만, 은근한 웃음이 났다. 자연은 이렇게 제멋대로인 나도 받아줄 수 있구나. 심술이 난 나에게, 삐뚤빼뚤하게 길을 걷는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아. 식물들의 고요한 위로를 받아들이며, 내 마음은 천천히 누그러졌다.
저 멀리서 색소폰을 부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초록으로 가득한 공원의 한가운데에서 악기를 연주한다니! 낭만적인 분이시다. 한참 동안 가만히 서서 그분의 음악 연주를 감상했다. 때마침 내가 좋아하는 곡의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할아버지의 느릿한 호흡으로 나아가는 재즈 선율,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외국어 대화, 그들의 편안한 발자국 소리, 미세한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의 바스락거림, 나무와 나무 사이를 누비며 재잘거리는 새들의 울음소리... 일상의 평화로운 소리가 만나 이루어낸 순간은 어떤 음악보다도 내 귀를 사로잡았다. 하루 종일 이곳에 머물러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렇게 공원을 누비다가 친구를 다시 만났는데, 신기하게도 속상했던 마음이 말끔히 사라졌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평소처럼 말을 건네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공원에 잠시 머무르기만 했는데도 치유가 되었던 걸까? 싱그러운 정오의 소리들은 내가 어떤 심정이든 상관없다는 듯 유유히 스쳐 갔지만, 이 세상 속에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