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만남에는 정해진 때가 있기에,
억지로 이어보려 애를 써봐도
흘러갈 인연은 결국 흘러가 버린다.
너를 처음 만났던 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서로를 알아가기에는 짧았던 시간이었음에도 결이 맞다는 듯 빠르게 친해졌다.
우리는 웃음이 터지는 순간도, 별것 아닌 말에 대답하는 방식도 닮았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너의 호응이 뒤따랐고, 내가 어디에 앉든 옆자리는 항상 너였다.
나는 그런 순간들이 좋아서, 신기해서, 너에게 자꾸 더 많은 나를 내보이고 싶었다.
너와 함께 있으면 괜스레 마음이 편안했다.
나조차 몰랐던 감정을 꺼내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았을 말들을 너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건넸다.
우리는 어느새 너무나도 가까워졌고, 서로를 다 알고 있다는 오만 속에서 조심하는 법을 잊어 버렸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말 한마디, 시선 하나에도 쉽게 아파했다.
너는 나와 다른 속도로 자라고 있었고,
나는 너의 변화를 이해하기보다는 붙잡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네가 다른 사람들과 웃는 모습을 보면 마음속 어딘가가 콕콕 쑤시고,
나만 제자리에 남은 기분에 서운해지던 날들도 있었다.
‘너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나’라는 것이 영원했으면 했다.
그래서 너에게 자꾸 묻고, 기대고, 화냈다. 아마 너에게는 부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예전처럼 세상이 떠나가라 웃지 않게 되었고,
마주쳐도 예전만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지 못하게 되었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는 서로의 세계에서 멀어졌다.
네가 전학 간다는 말을 나에게 전했을 때,
나는 그 말이 우리의 마지막 인사라는 걸 어렴풋이 알았다.
하지만 그때는 차마 건네지 못했다.
너에게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얼른 지우려 했던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너는 내게 정말 소중해서,
손에 든 것을 뺏길까 봐
힘을 풀 줄 모르는 아이처럼
나는 너를 너무 꽉 붙들고 있었나 보다.
시간이 흘러서야
손에 들어간 힘을 조금 풀 수 있게 됐다.
우리의 관계는 비록 끝나 버렸지만,
한 시절을 온전히 너와 지낼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지금의 나는 너를 다시 만나도
그때처럼 웃을 수 없음을 알기에,
너와 다시 만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가끔 네가 떠오르면 미소 지을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저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기를.
이건 끝내 너에게 건네지 못한 마지막 작별 인사.
Fi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