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정동아리 찬빛입니다.
발음도 못 하는 동네를 걷고, 길을 잃어보고, 현지인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내가 사는 익숙한 곳을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기꺼이 우리를 이방인이 되게 합니다.
바다 건너 떠나는 여행에는 두려움과 설렘이 동반하지요.
가벼운 실수로 서러워졌다가도 전대미문의 대사건은
무용담 삼아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 낯선 곳으로 향하는 묘미 아닐까요?
네 명의 여행가가 세계를 누비며 담아온
탐험의 조각들 속으로 같이 떠나보아요!
별생각 없는 동그라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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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과 필름 - 시끄러운 먼지
여행은 떠나고 싶어 하는 자들의 보험이다. 여행이라는 보장된 미래가 생긴다면, 무료한 일상은 얼마든지 참아줄 수 있다.
내가 살던 동네만 떠나도 낯선데, 하물며 처음 가보는 나라는 어떨까. 나를 제외한 모두가 같은 언어를 말하는 이곳에서 나는 이방인이다. 그리고 그런 이방인이 된 나의 모습은 어쩐지 썩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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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모든 과정 중 떠나기 전 계획을 세우며 여행지에 대해 추측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가 보지 않은 동네의 사진을 구경하며 숙소를 고르고, 예상되지 않는 그곳에서의 경험을 위해 미리 돈을 지불한다. 그리고 사진으로만 보던 곳에서 내가 그리던 풍경이 맞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즐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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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오토바이의 눈치를 보며 길을 건넜던 하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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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수십 번은 넘게 해외로 떠났고, 여행 중에도 다음 여행의 항공권을 찾아보는 나에게 사람들은 묻곤 한다. ‘그래서 여행이 주는 게 뭐야?’ 남겨주는 게 없어도 여행은 여행이다. 사실 여행은 거창한 걸 기대하면 안 된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살아가는 모양은 달라도 결국 인간이 살아가는 곳이기에. 그렇지만 여행은 어떤 힘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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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절대 가는 게 아니랬는데, 더운 만큼 행복했던 7월의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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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계산을 잘못해 5만 원이 넘는 햄버거를 먹고, 길을 잃어 1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도 웃음이 나던 순간. 맛없는 음식을 먹어도 고개를 들면 보이는 풍경에 평생 이런 걸 먹어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만 먹을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고 느끼던 순간. 발음하기도 어려운 강에서 유유자적 떠다니며 하늘을 구경하던 순간.
이런 소소한 순간들이 모이면 하나의 거대한 흔적이 되어 나의 삶에 지워지지 않는 자국을 남긴다.
사람들에게 지칠 때마다 나에게 통하지 않는 언어로 어떻게든 나를 도와주려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고마워 미치겠는 나에게 “Enjoy!” 를 외치며 쿨하게 떠나던 이들을 되새긴다. 나는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이토록 친절할 수 있을까. 약간의 자기반성을 통해 다정한 사람이 되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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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의 나라로 돌아와 일상을 살다가도 이런 자국들을 떠올리면 미소가 나는 것.
여행이 남겨주는 것은 이거면 된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떠날 그 순간을 위해 오늘도 살아간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어떤 흔적을 남길까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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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네덜란드의 여러 도시
글과 필름 - 칠셋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네덜란드였다. 파리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넘어왔던 지라 몹시 피곤한 상태로 네덜란드 스히폴 공항에 도착했다. 얼른 숙소에서 몸을 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고, 가장 빠른 교통편이었던 NS 기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제때 도착하는 법이 없는 유럽의 대중교통에 질려있던 나는 암스테르담의 교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구글 맵 표시되는 초록색의 ‘정시 도착’. 에이, 거짓말이겠지. 그러나 여행 내내 트램은 언제나 ‘정시 도착’이었다. 이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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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서 맞이한 둘째 날은 암스테르담의 근교 ‘잔세스칸스’를 방문하는 날이었다. 구글에 잔세스칸스의 이미지를 검색하면 플란다스의 개가 자동으로 떠오르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소위 ‘풍차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잔세스칸스는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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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야 우리는 풍차를 에펠탑과 같은 랜드마크처럼 생각하지만, 과거에는 농기구에 불과하였다. 과거 18세기 잔세스칸스에는 700개가 넘는 풍차가 있었는데 지금은 관광을 위한 몇 개의 풍차만이 존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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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은 붐비지만, 빌딩과 건물에 가려지지 않은 전경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치즈, 나막신 공장, 기념품 가게, 미술관은 대부분 무료 개방이었고 잘 꾸려져 있다. 특히 치즈 공장에서는 자유롭게 수십 가지의 치즈를 맛볼 수 있었다. 네덜란드니까 치즈 하나쯤은- 하며 가볍게 집어들곤 했다. 아, 물론 가장 중요한 풍차도 5유로를 내면 올라가 볼 수도 있다.
다음으로 찾아간 지역은 ‘히트 호른’이었다. 히트 호른은 암스테르담에서 차로 약 2시간을 이동하면 나오는 도시이다. 해외에서 차를 빌리기는 여의치 않아 다인원 투어를 예약했다.
가이드가 만나자마자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라고 투어를 우리 포함 10명도 신청하지 않았다고 알려주었다. 이동하는 내내 조금 피곤했던 터라 반가운 소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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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 호른은 풍경이 아름답고 운하로 유명한 곳이다. 물론 건물과 건물의 이동은 대부분 운하를 타고 이동한다. 먼저 투어 프로그램 중 하나로 가이드의 유머를 곁들인 설명과 함께 배를 타고 운하를 한 바퀴 크게 돌았다. 그러나 나와 동행인은 직접 보트를 몰아서 운하를 돌아보는 것만을 기대했기에 큰 배에서 내리자마자 보트를 안내해 주는 상인에게 뛰어가 2인, 2시간, A 코스의 보트 가격을 물어보았다. 20유로. 이 정도면 훌륭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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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에 서툰 우리는 방향 감각을 잘 익히지 못해 여기저기 다른 배들에 부딪혔다. 상인은 13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였는데 아무래도 아빠의 일을 도와주는 것 같았다. 13살 아이도 하는 걸 자꾸만 버벅대는 우리에게 그는 불안한 눈빛을 안고 댓츠 파인? 을 여러 번 외쳤다. 뭐, 대충 감을 익힌 나는 일단 출발해 보기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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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부딪히기도 했지만 직접 운전하는 보트를 타니 전보다 더욱 좋았다. 물이 더욱 가깝고 시야가 탁 트여 보였다. 괜히 손을 물에 담가 보고 지나가는 타인들에게 미소를 건네보고 햇볕은 따스하고 운하 위에서 우리는 광활하고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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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늘은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제 전공을 밝혀 보려 합니다. 저는 일본어문·문화학과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뒤이어 이야기할 여행에서의 추억이 전공 선택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학 원서 접수를 앞두고 여러모로 진로를 고민하던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일본 오사카의 한 고등학교로 국제 교류를 하러 갔습니다. 당시에는 해외여행 경험도 적었고, 심지어 일본은 처음이라 마냥 설레기만 하였는데, 그러던 제게 너무도 막중한 임무가 내려졌습니다.
제게 주어진 임무는 바로 ‘전교생 앞에서 학생 대표로 인사하기’였습니다. 심지어 일본어로 말이에요! 한국에서도 전교생 앞에서 발표해 본 적이 없는데 일본인 800명 앞에서 일본어로 이야기하라니, 정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래도 일본어 선생님이 저를 믿고 맡겨 주셨기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대본을 적고 발음을 교정하며 열심히 인사를 연습했습니다.
바야흐로 국제 교류 당일, 환영회를 위해 단상 위에 선 저는 팔다리가 달달 떨릴 정도로 긴장해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떨렸던 순간을 뽑으라면 저는 이때를 고를 거예요...) 교장 선생님의 축사 후, 마침내 제가 인사할 차례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시작 전부터 너무 긴장한 탓인지, 열심히 연습한 것이 무색하게 실전에서 실수를 해 버렸습니다.
일본 학생들의 격려를 받으며 발표를 간신히 마무리하고, 이어진 교류회에서 일본 친구들과 서툰 일본어로 대화하며 든 생각은, 아주 단순하게도 ‘일본어를 더 잘하고 싶다!’였습니다. 그런 제 생각을 읽기라도 하신 건지, 공항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 일본어 선생님께서 제게 일문과 진학을 권유해 주셨습니다. 그때 제 대답은 완전히 YES! 그 길로 저는 일문과에 오게 되었습니다. 인생 첫 일본 여행의 경험과 선생님의 제안이 제 인생을 바꿔 놓은 셈이지요.
대학교에 진학하고 몇 차례 더 일본에 방문했지만 저에겐 여전히 고등학교 3학년 오사카에서의 추억이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시점, 또 한 번의 오사카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제가 사랑하는 도시에서의 추억을 부디 당신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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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떠도는 마음이 길을 만들 때
글과 필름 - 못
다섯 개의 대륙
스물한 개의 나라
서른여섯여 개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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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게도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가족들의 이런저런 일로 세상 곳곳을 누벼왔어요. 그 덕분일까요? 늘 현상 유지를 택하는 소심한 성격임에도 바다를 건너 머나먼 곳으로 떠나는 일만큼은 덜 주저해요. 남들보다 조금 더 쉽게 가방을 챙기고, 마음을 먹고, 당장 떠나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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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도쿄행 비행기 안
하지만 때로는 저 자신이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하는 붕 뜬 존재 같았어요. 어디 하나, 무엇 하나에 진득하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맴도는 저의 마음도 발걸음도 한심해 보였습니다. ‘왜 나는 늘 이곳이 아닌 저곳을 꿈꾸는 걸까?’하는 의문이 늘 마음속에서 맴돌았어요. 그러나 이제는 조금은 알 것만 같아요. 시드니, 파리, 카이로, 도쿄…에서 보낸 수많은 날, 그날을 그리며 고대한 더 많은 시간들. 그 시간들이 있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까지는 이야기하기 어렵겠지만, 분명 저의 아주 중요한 구석을 이루었다는 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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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호찌민, 카페 창문에 비친 시장의 풍경
요즘에는 어떤 매체를 틀어도 여행기가 흘러나오고, 여행을 찬양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모순적으로 저는 여행이 모든 고통과 괴로운 일상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유토피아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모든 이들에게 여행이 가장 잘 맞는 행복의 수단도 아닐 테고요. 그렇지만 제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일상에 기다림을 심어두고, 무료하고 조금은 괴로운 날들도 건너갈 힘과 기대감을 주어서예요. 걸어서는 가닿을 수 없는 먼 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갑니다. 도착한 낯선 도시에서 이곳에 있는 게 당연한 사람인 것처럼 그들의 일상에 섞여 있는 생경함을 느낍니다. 붕 뜬 마음이 제가 딛고 있는 지금 이 순간으로 데려다 놓고, 생생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럴 때면, 앞으로 이런 날을 또 보낼 수 있다면 아무렴 뭐든 조금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앞으로 저는 또 어떤 곳으로 떠나게 될까요? 또 어떤 도시와 무슨 장면으로 더 많은 날들을 사랑하고 싶어질까요? 언젠가 다시 돌아오고 싶은 도시들과 그 장면들을 전하며 이만 마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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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마테호른 산
+필름으로 담지 못한 순간들
니스 숙소의 인종차별주의자 호스트와의 싸움으로 몸도 마음도 지친 채로 떠나온 파리 숙소에서의 첫날 밤, 직접 구운 마들렌을 내어준 메이의 미소. 시위의 화염병과 불길을 피해 모여 서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주며 지새운 밤. 무작정 공원에 앉아 혼자 일기를 쓰던 시간. 나를 지나치고 있는 풍경들에 미련이 남아 더 오래 셔터를 누르다 어그러진 계획.
저는 또 다른 기다림을 심어두고 여기에서 님을 기다려보겠습니다. 그럼, 그날까지 안녕히 ⸝⸝ ᷇࿀ ᷆⸝⸝
못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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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심도 깊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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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확한 미래도 잊을 수 있는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
생경한 장소에 대한 두근거림이 여정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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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김민경 박유영 유수민 이지민
교정 김수경 전지영 최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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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의 132번째 이야기,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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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 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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