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정동아리 찬빛입니다.
동물들은 가을 동안
먹이를 차곡차곡 모아두고
추운 겨울을 맞이합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수집하며
메마른 날이면 하나씩 꺼내볼 수 있는
꾸러미를 만들죠.
님만의 꾸러미 속 취향이
겨울의 추위를 건너는 힘이 되어주길 바라요.
못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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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과 필름 - 별생각 없는 동그라미
나는 물건을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장르는 다양하다. 그때그때 꽂히는 것을 사 모으는 편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잡동사니 혹은 평범한 장난감 같아 보여도 나에게는 하나하나가 타임캡슐 같은 역할을 한다. 소중한 기억을 모으는 중인 셈이다. 가장 최근에는 연극과 뮤지컬에 미쳐 있었다. 말 그대로 미쳐 있던 날들이었다. 한 달에 2n 번의 공연을 보고, MD를 사고.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공연과 관련된 책을 모으는 것이었다. 소장하고 있는 책 중 마음에 드는 3가지를 소개해 볼까 한다.
첫 번째는 뮤지컬 <검은 사제들> 프로그램 북이다.
작품은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내용이며, 이 프로그램 북을 좋아하는 이유는 재질에 있다. 코팅지가 아닌 까끌까끌한 맨 종이인 데다가 검은 배경의 프레스 인쇄가 멋지다. 책의 내용 자체도 깔끔하게 연출진의 인터뷰와 무대, 의상 디자인 설명이 포함되어 기본에 충실하다. 같은 재질의 대본집, OST 앨범, 가사집, DVD 모두 가지고 있는데 붉은 박으로 인쇄되어 화려하고 예쁘다.
두 번째는 뮤지컬 <팬레터> 대본집이다.
같은 작품의 대본집을 3개나 가지고 있는데, 각각 2018년, 2020년, 2022년에 만들어졌다. 특히, 2018년의 대본과 그 이후의 대본은 디자인부터 각본의 내용까지 달라진 부분이 많아서 비교하며 읽는 맛이 있다. 뮤지컬은 한 시즌이 끝나면 DVD를 가지고 있어도 어디까지가 배우의 애드리브인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OST 앨범으로 듣더라도 사이의 대사가 떠오르지 않아 답답해질 때도 있는 특이한 장르이다. 이 모든 질문의 답을 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대본집이라서 작품을 오래 기억하고 싶거나 깊게 이해하고 싶을 때는 대본집을 손꼽아 기다리곤 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것은 뮤지컬 <아가사>의 책들이다.
이 작품의 프로그램 북은 2021년과 2024년 두 시즌의 버전을 가지고 있다. 21년에는 무대 디자인과 의상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고 24년에는 새롭게 영상 장치를 사용하며 영상 디자인을 다룬다. 공통적으로는 각 시즌 배역들의 짧은 인터뷰가 있는데 두 시즌의 배우가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오히려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또, 실제 사건과 인물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그에 대한 설명이 상세해서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책들은 자연광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 보관하고 있어 필름으로 찍을 시도조차 해 본 적이 없다. 대신에 내가 빈 책장을 꾸미려고 조금씩 샀던 피규어들을 소개하며 길었던 글을 마친다.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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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음이 머무는 것들을 모으는 일
글과 필름 - 전지영
안녕하세요 님. 이렇게 또 글로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이번 심도에서는 제가 소중하게 모아 온 수집품들을 소개해 드리려 해요.
저는 ‘이런저런 지식’을 수집하는 즐거움을 좋아해요. 일상 속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 제가 모르던 내용이나 인상적인 말을 들으면, 곧바로 휴대전화 메모장을 켜서 꼭 적어 두는 습관이 있어요. 현실에 당장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그런 조각들이 모여 제 생각과 감정을 조금 더 다채롭게 만들어 주거든요. 제 정보 보따리에는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그중에서도 흥미로웠던 지식을 하나 나눠 드릴게요.
님은 사람이 언제부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보통 네 살 무렵부터 마음의 작동 방식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갖기 시작한다고 해요. 자기중심적으로만 사고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이 다를 수 있음을 깨닫는 거죠. 그때부터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돼요. 이걸 바로 공감이라고 하죠.
공감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아주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며 아픔을 보듬어 줄 수 있고, 협력할 수 있으며, 때로는 이타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가끔 “당연히 네가 알 줄 알았지.” 같은 말을 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이 조금 괴로워져요. 어른이 되면서 공감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아서요.
그래서인지 저는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이야기가 스며든 음악을 찾아 듣게 돼요. 누군가의 마음을 안다는 건 결국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일과 같으니까요. 그런 이유로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듣는 노래를 수집하는 것도 좋아해요. 누군가가 자주 듣는 노래를 들어 보면 그 사람의 취향과 감성, 그리고 말로는 다 전해지지 않는 마음결이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얼마 전에는 첫눈에 ‘이 사람 참 좋다.’라고 느꼈던 친구가 있었어요. 볼수록 좋은 사람이에요. 문을 잡아 주고, 먼저 배려해 주고, 말보다 행동이 따뜻한 그런 사람이죠. 그 친구가 제게 ‘신인류’라는 밴드의 <그런 하늘>과 <꽃말>을 추천해 줬어요. 이름만 알고 있던 밴드였는데, 그 친구 덕분에 신인류의 노래들을 찬찬히 들어 보게 되었죠. 보컬의 목소리가 정말 좋더라고요. 맑고 단단하면서도 마음을 흔드는 그런 음색이었어요.
이 밴드의 노래를 들을수록, 저는 데뷔곡 <너의 한마디>에 가장 마음이 갔어요. ‘그 한마디’가 어떤 말이었을까- 노래가 끝난 뒤에도 자꾸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그 노래를 들으면, 드럼과 기타 소리가 심장을 조용히 두드려요.
아마 제가 수집하는 건 지식과 노래가 맞겠지만, 사실은 그 안에 있는 ‘마음이 머물렀던 순간들’을 모으는 것 같아요. 깨달음이 담긴 지식, 누군가가 건네준 노래와 그 안에서 만난 감정들. 그 모든 걸 고스란히 제 안에 모으는 일. 그게 바로, 제가 좋아하는 ‘수집’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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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캐치볼을 하는 아이. 현상하고 보니 초점이 안 맞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마음에 드는 사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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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과 필름 - 흰동가리
초등학생 시절 친구들이 붙여 준 제 별명은 ‘다람쥐’였습니다. 단순히 본명의 글자를 따서 지은 별명이라 당시에는 그다지 저와 닮은 점을 찾지 못하였는데, 이것저것 물건을 수집하는 제 습성을 보면, 아이들이 작명에 꽤 재주가 있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이름값을 하는지 물건을 쉽사리 버리지 못하는 성정을 지닌 탓에 저는 지금껏 꽤 다양한 것들을 모아 왔습니다만,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애정이 깊은 것은 역시 편지와 편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 친구와 교환 일기처럼 펜팔을 할 정도로 편지 쓰기를 좋아했고, 당연한 수순으로 편지지를 모으는 것 또한 취미로 삼았습니다. 예쁜 편지지를 사냥하러 부러 외출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요.
그런데 문득, 제가 편지지를 모으는 것이 일반적인 ‘수집’과는 그 결이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대개 무언가를 수집한다고 하면 한정판 피규어나 오래된 LP처럼 남 주기 아까운 물건을 모으게 마련인데, 저는 아무리 예쁜 편지지라도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써 버리고 마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가의 제 방 책장 한 칸은 어릴 적부터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아직 사용하지 않은 편지지, 그리고 써 두고는 여즉 전하지 못한 편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친구와 편지를 나누는 게 취미였던 저에게 편지지는 늘 모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쓰기 위한 것이었는데도, 책장 한 칸을 가득 채울 만큼 수북이 쌓인 것이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편지를 써도 써도 편지지가 모이고야 마는 이유는, 진심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편지를 쓰는 속도를 뛰어넘어 버린 탓일까요? 어쩌면 제가 편지지를 모으는 의미는 애장품 수집이 아니라 마음의 축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취를 시작하고부터는 편지지를 둘 곳이 마땅치 않아 편지지 수집은 휴식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아쉽지만 이제는 책장 속 편지지들이 모두 제 주인을 찾아가기를 기다릴 때인 것 같습니다. 제가 쌓아 둔 마음이 님께도 가닿길 바라며 오늘의 편지는 이만 줄입니다. 안녕. :)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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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편지를 넣어 두고 다른 사람이 쓴 편지를 가져가는 참여형 전시장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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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심도 깊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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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직하고 살아가는 기억들은 마치 작은 보석 상자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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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김민경 박유영 유수민 이지민
교정 김수경 전지영 최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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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의 125번째 이야기,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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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 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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