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정동아리 찬빛입니다.
바라보고,
살펴보고,
들여다보고.
어쩐지 자꾸 보게 되는 대상이 있지 않나요?
눈길을 따라가면 새삼 알게 되는 존재가 나타나고
때로는 몰라도 괜찮았을 사실도 마주치게 되죠.
이 주의 관찰 일지를 읽어보면서
나만의 관찰 대상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
별생각 없는 동그라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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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과 필름 - 해류
‘관찰’ 하면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아마 다들 아실 거라고 생각해요.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라는 구절이 있는 그 시*요. 그런데 저는 조심스럽게 반박하고 싶습니다. 뭐든지 간에 너무 오래 보고 있으면 징그럽지 않나요?
*<풀꽃>, 나태주
관찰하다 보면 아름다운 것이 정말로 아름답구나, 소중한 것이 정말로 소중한 것이 맞았구나, 하는 순간보다는 오히려 감정의 역행을 겪게 되는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한테는요. 고개를 갸웃하게 되고 의문점들이 떠올라요. 그것이 정말로 아름다운 것이 맞는가? 하고요. 그러나 반대로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좋아할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도, 이 사진이 좋다고요.
그런 순간들을 겪는 게 좋아서 필름 사진을 찍는 것 같아요. 그럴듯하지 않은데도 필름 한 컷을 소모하게 되는 장면, 의도한 결과가 아니라서 더 마음에 드는 순간들. 분명 망했는데도, 필름이 조금 타 버렸는데도 마음에 드는 사진들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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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를 쉬이 누르는 편이 아니라 그런 우연의 선물을 자주 받지는 않지만, 이상한 장면들을 일상에서 포착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위 사진처럼요. 사실 왜 좋은지는 잘 설명하지 못하겠어요. 그런데 그냥, 쓰레기 무단 투기하지 말라는 경고문 밑에 의자가 엎어져 있는 모습이 좋았어요. 감시하든 말든 나는 그냥 엎어져 있을게, 하는 게 조금 웃기잖아요. 삐뚤어지고, 반항적이고, 요상하고. 파란색이 약간 섞인 회색, 분홍색, 초록색, 갈색이 조화롭게 전부 보이는 것도. 마치 세팅된 것만 같은 장면이라 그 주변을 서성거리며 구경하다가 셔터를 눌렀던 기억이 나요.
님도 뭐든 오래 바라보고, 집요하게 뜯어보는 시간을 한번 가져 보면 어떨까요?
님은 어떠신가요?
아름다운 것은 그대로 아름다운가요?
불유쾌한 것은 여전히 불쾌하기만 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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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상
글과 필름 - 후르츠 펀치
고등학생 시절,
운동장에 멍하니 앉은 친구에게
“뭐해?” 하고 물었다.
그 친구는
“그냥 있어. 나 사람 구경하는 거 좋아해서…”
답하고는
운동장을 거니는 사람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사람 구경? 그걸 무슨 재미로 한다는 걸까…’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에게도 좋아하는 구경거리가 있다.
“사진 한 장을 2시간 동안 관찰하는 집중력…”
어떻게 하나의 대상을 2시간이나 보고 있는다는 걸까? 사실 나는 할 수 있다. 그게 어떤 대상이든-마음에 들기만 하면! 예를 들어, 만화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장면이 나오면, 그 화면을 빤히 바라본다. 마음속으로 흡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그림의 선과 색을 뜯어보고 곱씹어 보면서. 그렇게 ‘바라보는’ 순간, 내 머릿속은 잠잠해진다. 그래서 난 이 시간을 꽤 좋아한다. 물론 이런 습관은 내가 생각해도 조금 특이해서…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사실 한 친구에게 말해 줬는데, 뭐 그럴 수 있지, 하는 반응이었다. 다행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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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관찰’이라 함은 그런 것이다. 거창한 의도는 없고, 그저 바라보는 행위. 맘에 드는 ‘무언가’를 관찰하는 습관은 언젠가 나타났고, 이렇게 나와 한평생을 함께 했다. 요즘엔 새가 좋다. 강가를 거니는 오리들. 너무너무 귀여워서 계속 쳐다보게 된다! 여행하다 마주친 참새들. 해변에서 장난스레 모래 목욕을 하는 모습이 깜찍하다! 하천에서 목격한 왜가리. 어딘가 신비롭다. 도시를 수호하는 영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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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집중력이 좋지 않아서, 한 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편이다. 게다가 생각도 무지하게 많다. 그야말로 예민하고 산만한 5살과 다름없다. 그러나 관찰할 때는 다르다. 마음만 먹으면 반나절도 가만히 있을 수 있다. 번잡한 생각으로 시끄러운 뇌를 잠재울 수 있다.
관찰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고요함,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는 내면의 시간.
나에게 관찰은 명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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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과 필름 - 칠셋
내가 살던 동네는 플라타너스를 가로수로 줄지어 심어둔 곳이었다. 그래서 비와 바람이 휩쓸고 가는 가을날이면 어디를 걸어야 할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바닥이 낙엽으로 흥건하기도 했다. 학원을 마친 후의 늦은 저녁, 반드시 그 길을 걸어야 했는데 발목을 붙잡아 오는 축축한 길을 걷기 싫어서 잔뜩 짜증을 낸 적이 있다.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가을은 언제나 잊히지도 않고 돌아오고, 이젠 짜증스러운 기억조차 그리워질 정도로 몸도 마음도 멀어진 서울에 내려앉아 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에도 가을이 찾아왔지만 나는 나들이에는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곧 있으면 있을 시 쓰기 수업에서 내가 작성한 시를 발표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시 쓰기는 처음이라 얼마나 잘 쓰고 싶었던지 많은 고민을 머금었는데, 그냥 수업에서 배운 ‘관찰’을 해 보기로 다짐했다.
이미 다 아는 사과 한 알도 새롭게 다가가 보자며 지루한 아르바이트 출퇴근길에서 평소와 달리 괜히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스치는 타인들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발끝에도 시선을 멈췄는데 내 발 앞에 툭, 하고 플라타너스 낙엽이 시선에 걸렸다.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잎자루는 환한 초록색이었고 잎몸 끝부터 조금씩 말라오는 일곱 가지의 빛깔이 보이는 낙엽이었다. 손으로 직접 들어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내 얼굴보다 훨씬 큰 크기였다.
흘러가는 가을을 잠시 멈추게 하는 마침표 같은 플라타너스 낙엽 앞에 웅크려 앉아 예전 동네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우리 엄마는 세상의 여러 가지 중 플라타너스를 특히 좋아했다. 가을에 플라타너스 잎이 떨어지면 슬퍼했지만 그건 사랑에서 오는 우울함이었다. 어린 나는 그때 그게 어디가, 어떻게, 왜 좋은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난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잎을 관찰하다가 문득, 나도 언젠가 엄마가 유독 사랑했던 플라타너스 잎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차올랐다. 소중한 누군가가 더 이상 곁에 없더라도 그가 사랑했던 것을 좇아 이해하고 결국 사랑한다면 내 안에 영원히 남아 주리라는 확신이었다.
그렇게 나는 플라타너스 낙엽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 엄마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의 흔적을 찾아 사랑해 봐야지. 세상 모든 것들 중에서도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나를 찾아 사랑해야지. 햇볕에 익어가는 낙엽에게 입술을 모아 중얼거렸다.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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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과 필름 - 영영
엄마를 관찰한다. 그 속에 비친 나를 본다. 엄마가 걸어온 길을 관찰한다. 바다 같은 엄마의 마음과 비교되는 비루하기 짝이 없는 나의 속을 들여다본다. 엄마는 알고 있을까, 나를 구성하는 모든 조각은 당신으로부터 뜯어져 나왔다는 사실을. 내 행복의 역치가 낮은 이유는 매번 같은 동네를 돌아다녀도 새로운 풍경을 발견하는 엄마를 관찰했기 때문이다. 자신은 우리 동네만 걸어도 행복하다고, 엄마는 항상 말했다. 특별함을 발견할 줄 모르는 나의 눈에는 늘 같은 풍경으로만 비쳤으므로 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엄마가 카메라로 담아온 영상에서는 평범한 것마저 특별해 보이더라.
필름 사진이라는 취미를 가지게 된 계기도 엄마를 관찰해서다. 20대 초반부터 야시카 클럽 사람들과 방방곡곡을 다니던 우리 엄마, 사진 찍는 게 좋아 필름 카메라를 사 모으던 우리 엄마, 내가 태어난 후로는 애 키우기 바빠 자연스럽게 카메라 클럽에 나가지 못한 우리 엄마. 지금도 엄마가 찍은 사진을 보며 생각한다. 나는 언제쯤 저런 시선을 가질 수 있을까?
사람과 사랑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는 것도 엄마를 관찰한 시간 덕분에 배웠다. 엄마는 사랑을 주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스스로가 끔찍하게 미워질 때마다 엄마에게 물었다. 이래도 내가 여전히 좋으냐고. 평소에는 화 한 번 내지 않던 엄마가 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땐 꼭 화를 내곤 했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마음을 삼키며 자랐다.
오늘도 나는 엄마를 관찰한다. 그 속에 비친 사랑을 닮아간다.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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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웃던 그 얼굴이 나에게만큼은 선명히 남아 있다. 반쯤 타 버린 필름 사진에 기대어 마음을 전하는 것밖에는 하지 못하는 딸이라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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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심도 깊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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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포착하는 소중한 시선은
남은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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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김민경 박유영 유수민 이지민
교정 김수경 전지영 최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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