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인터넷의 시작은 이메일이었다.
지금처럼 유튜브 알고리즘도, 인스타 스토리도 아닌
작은 모니터 속 초록색 로그인 창이었다.
핸드폰은 없었지만, 거실에 놓인 컴퓨터는 있었기에
그것이 시작이었다.
어릴 적 이메일 주소를 처음 만든 날이 기억난다.
그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단어가 ‘공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인 princess_0120@로 주저 없이 아이디를 만들었다.
숫자는 내 생일, 도메인은 네이버. 완벽했다.
생일까지 넣은 걸 보면 꽤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단순한 이메일 주소가 아니라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세상에 내미는 나만의 첫 명함이었다.
물론 이 이메일 주소로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지만,
‘공주’ 이메일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들뜨게 했던 것 같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생각하지 않고, 그냥 ‘나니까 이렇게 부를래’하는 마음이었다.
아마 나뿐만은 아닐 거다.
그 뒤로도 수많은 아이디를 만들었다. 게임용, 쇼핑용, 학교용 등...
(당연히 이메일 주소도 바꾸었다.)
이름은 점점 현실적으로 혹은 나의 존재를 덜 들키게, 깔끔하게 변했다.
이제 아이디는 내가 누구인지보다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보여 주는 수단이 된 것 같다.
어쩌면 그때의 솔직하던 그 자신감이 그리운 것 같다.
Fi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