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정동아리 찬빛입니다.
찰나의 순간 속 희비를 다투는 운동 경기에서 우리는 다양한 감정을 느낍니다.
때론 희열을, 때론 아쉬움을.
스포츠 경기를 보며 결과를 알 수 없음에도 모든 힘을 쏟아내는 모습이 우리의 삶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 과정 속에서 터져 나오는 숨과 눈물인지 모를 땀방울은 승패를 떠나 찬란히 빛납니다.
오늘은 실패 속에서 성장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무화과, 못, 매실이 보고 겪어온 스포츠를 읽으며 여러분도 그 묘미를 느껴보세요.
시끄러운 먼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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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과 필름 - 못
안녕하세요, 못입니다.
님은 스포츠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줄곧 제가 스포츠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보는 건 더더욱이요. 그래도 그토록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늘 궁금했어요. 그러다 작년 봄쯤 친구를 따라 야구장에 처음 가보았어요. 그렇게 시작한 마음이 점차 부풀어 님께 스포츠를 주제로 심도를 적는 지금까지 오게 되었네요! 저는 야구를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대구를 연고지로 하는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해요! 그 덕에 연고도 없는 대구에 올해만 10번은 가보았네요. 이제는 대구 도심을 지도 없이 척척 다닐 수도 있고, 갈 때마다 들르는 장소들도 생겼어요. 좋아하는 게 생기면 저의 세계도 넓어지는 게 참 값지고 기뻐요.
님은 야구를 보신 적이 있나요? 저는 ‘공 치던 사람이 왜 갑자기 저기에서 공을 잡고 있어?’, ‘포수는 공 맞을 수도 있는데 위험하게 왜 저기에 앉아 있어?’라는 황당한 질문을 쏟아내어 친구를 당황하게 할 정도로 야구에 대해 아는 게 전무했었어요. 저는 좋아하는 게 생기면 그것에 대해 열심히 공부한답니다. 필름에 빠지고 나서는 필름 서적을 뒤적거렸듯, 야구에 빠진 후에는 규칙부터 역사까지 샅샅이 훑어보았어요. 잘 알고 싶어 찾아보고, 찾다 보니 더 좋아하게 됐네요.
저는 기억이 닿는 첫 시점부터 내내 무언가를 열렬히 좇는 반짝임을 동경해 왔어요. 그토록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무엇일지, 기필코 꿈과 현실을 맞닿게 해내는 원동력은 무엇일지 궁금했어요. 공만 보고 거침없이 그라운드로 뛰어드는 마음, 어떤 상황에도 관중을 마주하고 일단 던져야 하는 막막함도, 더 잘하고 싶어 우는 것도 어떤 마음일지 저는 아마 가늠하지 못하겠죠. 그래도 이제는 모두가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마음은 알게 되었어요. 어르신도, 아이도 퇴근하고 온 직장인도 그리고 저도 야구장에서는 하나 되어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열렬히 좇는 반짝임이 되죠. 저의 동경에 조금은 더 가까워진 거겠죠? 제가 좋아하는 책의 구절과 함께 이만 마칠게요. 삼성을 응원하는 만큼 님의 매일도 응원합니다!
못 드림.
“그래? 이상하지, 스포츠 선수는 나이를 안 먹는 것 같아. 멈춰 있어, 거기서.”
“거기가 어딘데?”
“내가 환호했던 데서.”
- 김민정, 『읽을, 거리』 시의적절 1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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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과 필름 - 매실
똑, 딱, 똑, 딱,
지루한 시곗바늘 같은 탁구장의 소리.
어린 시절의 나는 탁구를 싫어했다.
부모님께서 즐겨 찾으시는 지하 탁구장으로 내려가면 퀴퀴한 고무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한다. 미간이 찌푸려진다. 나는 그저 따라갔을 뿐 열심히 치는 편은 아니었다. 한창 시합에 열중인 동호회 분들께 멋쩍은 인사를 드리고 익숙한 듯 구석 의자에 풀썩 앉았다. 엄마, 아빠는 실력이 좋으셨지만 나는 키가 작고 느려서 자꾸만 공을 떨어뜨리기 일쑤였다. 상대해 주는 사람도 없고, 어차피 잘 치지도 못하기에 금방 흥미를 잃었던 나는 떨어진 탁구공을 모으거나,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에 낙서를 하는 등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시합이 얼른 끝나기를 바라면서.
삑- 삑- 소리를 내며 분주히 움직이는 발소리와 가벼운 공들이 이리저리 튕기는 소리, 격려와 응원을 외치는 목소리가 시끄러웠다. 쳐다만 볼 수밖에 없는 나를 약 올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 심술이 났다. 그래도 체육 시간을 좋아하는 아이였는데, 탁구는 그리 달갑지 않은 운동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본 애니메이션 <핑퐁>은 탁구에 대한 미운 감정을 완전히 돌려놓았다. 화려한 재능을 뽐내며 으스대는 소년 ‘페코’, 잠재력이 있지만 열심히 하지 않는 소년 ‘스마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두 주인공이 새로운 자극을 받아 진심으로 탁구에 임한다는 이야기이다. 특히 스마일의 무미건조한 모습이 나와 비슷하게 보였는데, 끝내 두려움을 극복하고 웃는 얼굴로 탁구를 치는 장면에서 용기가 생겼다. 사실은 나도 이들처럼 멋지게 공을 주고받고 싶었다.
맘대로 다뤄지지 않는 공은 여전히 얄미웠다. 번번이 실수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그래도 라켓을 쥐었다. 공이 떨어져도 곧바로 주워서 서브를 했다. 점점 떨어지는 횟수가 줄어들고 리듬을 찾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공도 이제 두렵지 않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새 랠리를 시작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공에 맞는 강도로 받아치며 랠리를 이어 나갈 수 있는 정도까지 성장했다. 물론 자세나 실력은 완벽하지 않다. 그래도 탁구가 즐거운 이유는 공이 다가오는 순간에 집중하며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고, 눈에서 빛이 나는 감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떨어진 공을 다시 내보내며 지난 실수를 털어버리고, ‘이번엔 더 잘해 보자!’라며 의지를 다지는 순간이다. 이젠 탁구를 치며 웃을 수 있다.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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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과 필름 - 무화과
제자리에…
어린 시절의 저를 늘 긴장하게 만들던 순간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님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해 봤을 것 같은데요. 바로 운동회 날 달리기 시합의 출발 신호를 기다리던 몇 초예요. 저는 그 찰나의 시간을 아주 좋아하는 한편, 조금은 싫어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체력이 넘치던 그 시절의 저는 달리기 시합에서 1등을 놓쳐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양가적인 감정의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동안 져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좋아했고, 혹여나 이번 시합에서 누군가에게 지게 될까 봐 싫어했던 거죠.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고 난 뒤로는 그때만큼 승부욕을 불태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기세의 문제라기보다는 체력의 문제겠지요…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 계기가 생겼어요. 살면서 처음으로 운동을 배우기 시작했거든요.
저는 지금 수영을 배우고 있는데요. 또 한 번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 보자면, 저는 아주 어렸을 때 계곡에 빠졌던 경험이 있습니다. 4살의 기억이 선명하면 얼마나 선명하겠냐마는, 그 기억만큼은 아주 정확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이후로 저는 물을 극도로 무서워하게 되었어요. 물속에 들어가기만 해도 심장이 쿵쾅쿵쾅 뛸 정도였습니다.
킥판을 붙잡고 느릿느릿 앞으로 나아가는 지금의 저는, 달리기 시합의 출발선 앞에 선 언젠가의 저와 비슷한 심정입니다. 달라진 점을 꼽아 보자면 승부욕을 불태우는 대상이 타인에서 저 자신으로 바뀌었다는 정도일까요? 수영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물을 무서워하는 스스로와 싸워야 했거든요. 시작부터 지고 싶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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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넘어가자 물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뛰던 심장이 잠잠해졌고, 코와 입에 물이 들어가는 것을 겁내지 않고 헤엄칠 수 있게 되었어요. 길었던 시합의 승자는 물을 무서워하는 제가 아닌,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하는 제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또 다른 시합을 시작했어요. 물속에서 호흡하며 발차기를 하는 동시에 팔을 돌리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저에게만큼은 아주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거든요…
‘스포츠’라는 단어를 들으면 흔히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합니다. 저 또한 옆 레일에서 달리는 누군가보다 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했으니까요. 그러나 이제는 누군가를 앞지르고 싶다는 마음 대신, 어제의 나를 앞지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마치 스스로를 이기기 위한 또 다른 출발선 앞에 서 있는 듯합니다. 님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뛰어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상대는 누구인가요? 어떻게 보면 그 누구도 아닌 어제의 내가, 무엇보다 확실한 동기 부여를 해 주는 경쟁 상대이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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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심도 깊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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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이란 건, 그 순간만큼은 스스로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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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김민경 박유영 유수민 이지민
교정 김수경 전지영 최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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