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정동아리 찬빛입니다.

온몸이 끈적끈적-  

무더위에 입맛을 잃기 딱 좋은 요즘입니다. 

모래사장에 두고 온 모래삽과 어린 시절의 기억.

왜 우리는 늘 잃고 나서야 알아차리게 되는 걸까요?

지나간 시간, 멀어진 친구, 놓쳐버린 나 자신.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일은 쉽지 않지만, 떠올리는 일은 가능하겠지요.

시끄러운 먼지, 고심에 빠진 동그라미, 익명의 부원, 진담의

분실함을 슬쩍 열어볼까요? 

냐홍 드림.

‘잊어버리다’와 ‘잃어버리다’에는 꽤 큰 차이가 있다. 옛날의 나는 무심코 두 동사를 혼용했는데, 어느 순간 깨달은 뒤로 섞어서 쓰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잊어버리는 것은 지우다, 에 가깝고 잃어버리는 것은 놓치다, 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내 인생에서, 라고 말하니 조금 비장해 보이지만 어쨌든 나의 짧고도 긴 삶 속에서 가장 많이 ‘잃어버린 것’은 사람이다. 초등학교 친구들, 중학교 친구들, 고등학교 친구들,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 나는 사랑해 마지않던 친구들을 죄다 놓쳐버린 것이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우리를 묶어 놓았던 공통점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손 틈새에 모래알들이 스쳐 간다. 인연은 모래알과 같다. 바스라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미 잃어버린 친구들을 잊어버리지는 못했다. 초등학교 때, 늘 내가 억지를 부리며 붙어 다녀도 싫은 소리 한번 못하던 소심하고 착하던 긴 생머리, 뿔테 안경의 그 아이. 중학교 때, 노래를 잘하던 보조개가 귀여운 중단발의 그 아이. 고등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던 나를 기꺼이 받아준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그 아이까지.

놓친 인연의 끈이라고 해도 마치 꽃다발의 꽃잎을 책장 사이에 고이 말려두듯이 기억으로나마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꽃다발은 형체가 없어지지만, 흔적은 길이길이 남는 그런 것.

이전에 썼던 글들처럼 ‘지금의 인연은 잃어버리지 않게 잘 챙겨야지’하는 뭉뚝한 마무리를 지을까 했지만, 여러분께 솔직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나는 건망증에 걸린 것처럼 계속 누군가를 또 무언가를 잃어버릴 팔자인 것 같은데, 유한한 인연이라고 여기는 만큼 현재를 있는 힘껏 아껴주려고 한다. 손 틈으로 스치는 모래알도 꾹 쥐고 있자면 서너 알은 남지 않겠는가?

Film.

그 아이의 손

아무것도 잃어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가 무언가를 잃어보았을 것이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잃어버린 우산은 부주의함을 탓하는 마음으로 남고, 가까워져도 선을 긋는 습관을 잃어버린 것은 좋은 인연을 깊어지게 한다. 작년에 찍은 필름 한 롤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은 불쑥 방을 뒤적이게 하고, 애초부터 몰랐던 삶의 방향은 여전히 찾을 수 없어 들썩이는 조바심만 일으킨다. 그 외에도 입맛을, 길을, 균형을, 초심을 잃어버렸을지 모른다. 잃은 만큼 무언가를 반드시 얻는다 하더라도 선뜻 잃기는 쉽지 않다. 흑과 백 사이에는 회색이 무수히 많으므로.

미래를 담보로 과거를 잃어야 한다면, 망설임이 꼬리를 물고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고민해 보기도 전에 이미 잃어버렸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낮은 건물, 낡고 촌스러운 간판,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공중전화, 뺑뺑이가 있는 놀이터를. 높기만 한 건물에 밀려 지긋한 풍경을 잃어버렸으니 여유에서 비롯되는 다정함을 잃은 것도 당연할지 모른다. 어떤 것들은 툭툭 털고 나아가기보다 시간의 흔적을 품은 채 이어지길 바란다.

무언가를 잃어본 경험은 그것이 항상 슬프지는 않음을 알려준다. 모든 빈자리가 다 채워지는 건 아니라는 점도. 타인의 상실에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음은 잃어보았기 때문에 얻은 것일지도 모른다.

Film.

방의 주인을 잃어버린 후 넘어가지 않는 달력

♬ The Volunteers - New Plant (음악 제목을 눌러 글과 함께 들으면 좋아요.) 

안녕하세요, 진담입니다. 칠월 여름에 님을 만나니 새로이 기뻐요. 헉! 님, 혹시 뭐 잃어버린 것 같지 않아요? 두고 온 게 있지 않아요? 오래전에 사랑했던 인형이라던가… 무언가가 소중했지만, 이제는 아니게 됐다던가…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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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오늘은 제가 잃어버린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그 개수가 많으려나~ 했는데… 저는 정말로 많았어요. 수십 가지가 생각났지만 조금 추려볼게요. 우선, 둘도 없을 만큼 친했는데 이제는 소식도 모르는 친구가 생각나요. 또, 평생 한 곡만 들을 수 있다면 주저 없이 선택해야겠다고 말했던 그 노래에 대한 무감흥도요. 분명 ‘대문자 T’였는데 이제는 툭 치면 울 수도 있게 된 성격도요. 님의 잃어버린 것은 뭔가요? 제 것과 닮았으려나요? 새삼 이렇게 나열해 보니까 공허한 마음이 커요. ‘잃었다’라는 말이 주는 ‘상실의 슬픔’의 뉘앙스가 마음에 깊게 다가와 그런가 봐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라지만, ‘그것’과 함께했을 때의 내가 진정한 나였던 것 같은데- 하며, 자신을 잃은 느낌에 불안하기도 하고요. 언젠가 있었을 그때를 되찾기 위해 과거의 그 사람을 찾아가도 보고, 그 음악을 눈감고 들어도 봤는데 번번이 실패했던 기억도 나요. (지금의 상실감 때문에 그걸 다시 시도하는 건 미련하다는 거, 님도 공감하시려나요?)

음… 하지만 님. 제가 지금 상실감을 잠시 거두고, 조금 생각해 봤거든요? 잃어서 비게 된 자리 말이에요. 내 공허의 원인이 그것인 줄 알았는데, 그 자리는 이미 채워져 있었다는 거 아셨나요? 마음속 공터에 새로운 무언가가 들어차 있는 것 같지 않나요? 나도 모르게 날 새로이 구성하는 ‘New Plant’가 분명히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님도 느끼시지 않나요?

몇 달 전 처음 만난 친구와 금세 영혼의 단짝이 되었어요. 어제 그 음악이 절 무릎 꿇게 만들기도 했어요. 그리고 저는 눈물이 많아진 덕에 진심을 더 꺼내 보여줄 수 있게 되었어요. 와! 님, 이렇게 생각하니 어떠세요? 저는 지금 그것으로 인한 기쁨이 느껴지고 있는데요? 안개처럼 자욱하던 슬픔과 공허가 아주 사라졌어요. 비가 와서 고인 물웅덩이에 새 햇빛이 비쳐 반짝거리는 것 같아요. 님도 저와 같나요?

저는 님이 상실의 슬픔에 조금만 슬퍼하길 바라요. 공터라고 느껴지는 자리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언제나 새로운 싹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요. 지금도 분명 님의 한구석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을 새싹이 있을 거예요. 우리 물을 주는 건 어때요? 나를 구성할 반가운 존재를 환영하고 잘 길러보는 거예요. 들꽃인 줄 알았지만 단단한 나무가 되어 님을 오래도록 지탱할지도 몰라요.

Fil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