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정동아리 찬빛입니다.

한 주의 피로가 쌓여 기진맥진한 금요일 저녁.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제치고 반짝이는 간판 아래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잔 채우는 소리, 웃음 섞인 대화, 근사한 음악. 모든 게 어우러져 마음이 녹아 기분 좋은 밤입니다. 때론 말보다 진솔한 한 잔이 모든 걸 설명해 주는 고마운 순간도 있고요.

이번 주의 레터에는 술과 함께한 이야기들을 담았습니다. 각자의 취향과 추억이 담긴 글을 안주 삼아 오늘, 한 잔 어떠세요? 🍻

진담 드림.

가족 대대로 술을 즐기지 않는 탓인지,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며, 금세 머리가 무거워집니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카페인이 맞지 않아 그나마 아샷추를 고르듯, 술도 체질에 맞지 않는 듯싶어 기껏해야 500ml 맥주 한 잔을 주문합니다. 그마저도 늘 마지막 한두 모금을 남기게 되지만요. 취기가 올라오면, 그 순간부터는 마시기보다 정신을 붙잡고 버티는 시간에 가까워지곤 해요. 

이렇게 알콜 쓰레기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술에 약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맥주 한 잔으로도 취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사람이라 웃어넘기곤 합니다. 그래서일까, 술에 대한 로망이 남들보다 더 큰 것 같기도 해요. 

막차가 끊기고 첫차가 다니기 전까지 밤을 새우면서 마시는 소맥,
동기들과 MT에 가서 술 게임을 하며 마시는 벌칙 소주,

축구 경기가 있는 날 치킨집에 모여 한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며 마시는 맥주,
로맨틱한 칵테일 바에서 심심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마시는 칵테일,
비 오는 날에 파전집에 모여 친구들과 옛 추억을 꺼내며 마시는 막걸리,
안국역 헌법재판소 건너편 위스키바 ‘법원’에 가서 마시는 버번 위스키까지. 

술은 마실수록 는다고들 하지만, 제게 술은 여전히 쓰기만 해서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언젠가, 라멘에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며 식사를 즐기고, 여름밤 야장에서 시원한 맥주와 함께하는 시간을 누려보고 싶습니다.

술과 함께하고 싶은 님만의 작은 로망이 있으신가요?

Film.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셔본 적은 없지만,
필름이 끊길 때까지 사진을 찍어본 적은 있어요. 

저는 왜 술 사진을 찍을 때마다 초점이 맞지 않는 걸까요... 취한 채로 찍은 것도 아닌데!

🍸 ほろよい 梅酒ソーダ, 白いサワー (호로요이 매실주 소다, 시로이 사와)

저는 달달한 술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탄산도 좋아하고요! 그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술은 일본의 호로요이인데요. 맛이 다양해서 일본 여행을 갔을 때 고르는 재미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매실주 소다가 맛있었어요! 매실 특유의 단 맛과 탄산이 합쳐져, 더운 여름 낮을 이겨내고 숙소에 돌아와 마시는 한잔은 정말 좋았습니다. (맛있는 라면과 함께!) 아쉬운 점은 매실주 소다는 일본에서만 마실 수 있기 때문에, 두 번째로 좋아하는 시로이 사와를 함께 추천합니다. 밀키스 맛이 나요! 

매년 12월 31일, 한 해가 넘어가는 시점의 편의점들은 대개 분주하다. 오전 0시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의기양양하게 술을 사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새해 첫 목표로 삼은 스무 살 청년들이 편의점 앞에 진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술은 적당히 마시고, 사고는 치지 말 것’이라는 담임 선생님의 진심 어린 충고에도, 아직 어려 잔뜩 들뜬 마음에 세월 모르고 잔을 기울이다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하는 청년들도 제법 있을 테다.

안타깝게도 필자는 당시 12월 말에 수술을 받은 후, 담당 의사로부터 ‘한 달간 절대 금주’ 처분이 내려졌다. 덕분에 고등학교 동기들이 전부 달콤한 첫 음주를 즐기고 있을 때 제법 독한 약을 먹으며 메신저 채팅창 너머로 혼자 부러워했던 기억이 여즉 인생의 한으로 남아 있다.

필자에게 술은 인생의 낙 중 하나다. 술과 함께하는 고즈넉한 대화도 물론 좋지만, 술 그 자체의 맛과 향을 즐기거나 안주와의 풍미를 음미하는 것이야말로 ‘술’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한정된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내 몸은 술을 거부하는 체질이 아니고, 고량주를 느긋하게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주량을 타고 난 덕에 매번 즐거운 음주 생활을 즐기고 있다.

특히 좋아하고 애정하는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더욱 즐겁다. 술을 핑계로 ‘얼굴이나 한 번 보자’며 약속을 잡는 설렘, 약속 장소에서 모두가 모이기를 초까지 세어 가며 기다리는 두근거림, 첫 잔을 함께 부딪히며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술자리는 더욱 풍족해진다. 누구 하나 술을 강요하지도 않고, 서로의 안색을 살피며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을 한 입이라도 더 권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굳이 안주가 없어도 즐겁게 술이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렇게 술자리의 고양된 분위기에 몸을 맡기고 몇 잔 째일지 모를 술을 비우고 나면  시계침은 어느새 다음 날에 가까워져 있고, 아쉬운 마음을 안은 채 모두와 헤어져 집으로 가는 여로에 오른다. 집으로 돌아와 눈을 감는 순간, 함께한 술자리는 즐거운 어떤 기억으로 남아 그제서야 머릿속 어딘가에 고이 저장되는 것이다.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1년을 같이 보낸 동기들과는 매년 정기적으로 술자리를 갖는다. 대학교도, 생활 반경도 다른 우리 다섯을 한 자리에 이끌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술’이다.

‘술은 행복한 자에게만 달콤하다.’ 영국 태생의 낭만주의 시인인 존 키츠가 남긴 말이다. 돌이켜 보면, 필자가 지금까지 마신 모든 술은 다행스럽게도 평화롭고 행복했다. 앞으로의 모든 순간에 마실 술 한 잔이 달콤하고 즐거우려면 얼마나 더 오래 행복해야 할까? 그때가 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기울이는 술잔은 언제나 달콤할 것이고, 그 기억은 아주 오랫동안 나를 쓰고 차가운 현실로부터 구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