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행을 하게 되면 필름 카메라를 꼭 챙깁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크고 작은 다툼이나 갈등이 있었더라도, 스캔 받은 사진들을 보면 '그래도 참 좋았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보여드릴 사진은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친구와 단둘이서 떠나는 첫 제주도 여행이었는데요. 사실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습니다. 오래전부터 간절히 바라던 프로그램 면접이 여행 날짜와 겹치게 되었거든요.. 이런 경우 여행을 취소하는 게 맞지만, 여행 시작 3일 전에 면접 날짜가 나와서 취소를 하기엔 친구에게 너무 미안한 상황이었습니다. 고맙게도 저의 친구는 여행을 다음에 가자고 말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여행과 면접 두 가지 다 잘 해낼 수 있다고 밀어붙여 결국 떠나게 된 제주도였어요. 결과부터 말씀드려 보자면 여행과 면접.. 둘 다 반 정도만 해냈습니다. 여행 첫날부터 면접이 있는 당일까지는 면접에 온 신경이 쏠려있어 예쁜 풍경을 봐도 크게 감흥이 없었고 맛집을 찾아가도 입맛이 없었습니다. 면접 역시 부족한 준비 기간으로 인해 돌발 질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좋은 평가를 얻어내지 못하였습니다. 면접에서 만족스러운 답변을 내지 못하였음에도 왜인지 저는 그저 홀가분하기만 했습니다. 면접에 신경 쓰느라 보지 못했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친구의 말에 더 집중할 수 있었어요. 그 덕에 면접일 이후에 있었던 여행 일정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있어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날들이 후회되기 시작할 즈음 스캔을 맡겼던 필름 사진들이 메일로 도착했습니다. 버스 시간에 맞추느라 정신없이 둘러봤던 장소들, 더위에 지쳐 사진만 찍고 돌아왔던 순간들이 필름 사진에는 눈부시게 찍혀있었습니다. 내리쬐는 태양으로 정신이 혼미해져 실수로 카메라 필름 뚜껑을 열어버리기도 했었는데 그것마저 '즐거운 여행이었으니 괜찮아'라는 말로 포장할 수 있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었습니다. 예전과 비교하면 필름의 값은 정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치솟았고,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지만 필름의 이런 매력을 놓지 못해 저는 그럼에도 여전히, 계속해서 필름 카메라와 함께 여행할 것입니다.
#2.
글과 필름 - 우디
작년 이맘때, 부산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 몇 장을 소개합니다.
부산에 도착해 첫 끼를 먹기 전, 가장 처음으로 찍은 사진이에요. 카레집 앞의 웃는 표정이 그려진 담벼락 앞에서 기분 좋게 웨이팅을 했던 기억이 나요. 부산에 아주 어릴 적에 오고 나서, 제대로 된 여행은 처음이라 정말 설렜습니다.
해변 열차를 타고 바다를 실컷 보며 왔는데, 해운대에 내려 가까이서 본 바다는 또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이렇게 반짝이는 바다는 처음이었어요. 유난히 추운 날씨였지만,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이 곳은 흰여울마을이에요. 큰 정보가 없이, 한 번 가보자는 마음으로 간 거라 정류장에 내릴 때까지도 큰 기대가 없었어요. 그러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는데 길 너머로 바다가 보이고, 탁 트인 바다를 봤을 때 기분이 잊히지 않아요. 이 사진은 창으로 보이는 일부의 모습만 보이지만, 부산에 가신다면 꼭 들러서 직접 광활한 바다를 마주해보시길 바랍니다.
#3.
강화도 여행에 대한 기억
글과 필름 - 57
누군가 어딘가로 떠나기 전, 가장 설레는 순간을 묻는다면 나는 여행 짐을 챙기는 순간이라고 답하겠다. 숙소를 찾아보고, 여행계획을 세우고, (비행기를 타야 한다면) 공항에서 비행기 타기 전.. 다양한 설레는 순간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짐을 챙기는 순간이다. 내방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는 물건들을 캐리어에 잘 정리해서 담으면 그제야 ‘아.. 나 여행을 가는구나!’ 생각이 든다. 같은 질문을 독자들에게 하겠다. 당신에게 여행을 떠나기 전 가장 설레는 순간은 언제인가?
22년 9월 말에 공강과 주말을 이용해서 1박 2일 강화도 여행을 다녀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봐온 I가 운전하는 광경이 어색했고 생각보다 능숙한 운전실력에 감탄했다. 밀물의 동막해변을 봐야겠다고 가기 전 야심 차게 물때 시간도 알아봤지만 결국 썰물의 동막해변을 봤다. 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갯벌과 그냥 다 같이 여행에 왔다는 사실에 좋았다. 1박 2일이라 많은 곳을 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숙소로 향하면서 유명한 카페도 가고 온수리 성당에 들러 사진도 찍었다. 우리가 머문 펜션에는 고양이 세 마리가 살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몰랐던 사실이라 고양이의 여부를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고양이를 사랑하는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친절한 사장님이 반겨주시는 펜션에서 BBQ 파티도 하고 마시멜로와 강화도의 특산물 ‘속 노란 고구마’도 구워 먹었다. 서울로 가는 길에 멋진 브런치 카페에서 밥을 먹고 소금빵을 사서 일상으로 돌아왔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잘 웃어주는 L 언니와 주크박스 J, 멋진 운전기사 I과 떠났던 강화도 여행은 또다시 떠나고 싶은 계기가 되었다.
여행을 떠나는 순간부터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매 순간이 소중해서 자주 카메라를 꺼냈고 내 필름 카메라에는 흑백필름을 들어있었다. 내 첫 흑백필름이었다. 색은 알 수 없지만 소중한 여행의 순간을 담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