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정동아리 찬빛입니다.
익숙한 이불의 냄새와, 오래된 창밖의 풍경은
어지러운 세상으로부터 나를 감싸줍니다.
참았던 숨을 비로소 고르고, 온전한 내가 되어 쉴 수 있는 공간, 집.
그곳에는 충만한 사랑이, 때론 공허한 슬픔도 머물고 있지요.
숨과 쉼, 사랑과 슬픔의 말들이 오가는 나의 안식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놓이곤 합니다.
여기, 네 개의 이야기와 네 곳의 집이 있습니다.
각자가 품고 있는 집을 꺼내어, 나란히 놓아 보내드립니다.
님의 ‘집’은 어떤 모습인가요? 🏠
진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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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戻り
글과 필름 - 나비
‘집 나가서 고생’이라는 오래된 말이 있다. 집에 머물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지만, 집을 떠나 타지로 가 여러 일을 겪게 되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집을 그리워하게 된다는 의미다. 보금자리를 떠나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귀중한 경험과 추억들이 있다지만, 누군들 집을 그리워하지 않았던 적이 있겠는가.
2023년 7월, 처음으로 해외여행에 나섰다. 목적지는 일본, 규슈의 후쿠오카. 사람은 2명인데 짐 가방은 3개라는 어딘가 나사 빠진 조합은 시작부터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새벽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일본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웠고, 해가 뜨기 전부터 부리나케 걸어 다닌 양발은 해가 지기도 전에 부어오르기 시작했으며, 기어코 첫날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10시간 넘게 숙면을 취하고 나서야 진정한 의미의 ‘일본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우니 눈꺼풀이 절로 감기기 시작했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단 한 문장이었다. ‘집 나가서 고생이다.’
물론 달갑지 않은 순간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3박 4일의 여행은 대체로 순조롭게 흘러갔고, 사진 속에서나 겨우 보던 것들을 실제로 마주할 때는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몸만 뉘일 생각으로 저렴하게 잡은 숙소는 편안하고 쾌적했으며, 4일 내내 마주한 숙소 인근의 거리는 이제 집 앞처럼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렇다 한들 잠시 머무르는 이국의 도시가 떠나온 나라와 나의 아늑한 보금자리를 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짧은 여행에 마침표를 찍는 마지막 날,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공항에서 홀린 듯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일본에서의 모든 순간을 담은 필름의 마지막 한 장, 3박 4일간의 여행의 막을 내릴 마지막 장면은 ‘집으로 향하는 길’이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고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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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정의 끝은 처음 떠나왔던 곳으로 관성처럼 돌아가는 것이다. 즐거운 나날을 잔뜩 만끽한 뒤, 보석 같은 순간들만을 모아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우리의 집으로 돌아와 가져온 추억들을 늘어놓고, 언제까지라도 소중히 꺼내볼 수 있어야 하니까.
집이라는 것은 결국 그런 존재이다. 모든 여정의 끝, 아주 오래된 삶의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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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낙원
글과 필름 - 시끄러운 먼지
매일매일 타인과 부딪히고 소통하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내가 진짜 ‘나’일 수 있는 곳은 찾기 힘들다. 나에게 내가 나일 수 있는 곳은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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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같이 나타나 늘 저 자리에 앉아 있는 아파트 상주 고양이들. 요즘은 볕이 좋아 거의 하루 종일 저 자리에 앉아 있는 듯하다.
현재 살고 있는 나의 동네는 인생에서 3분의 2.5 정도를 보낸 곳이고, 지금의 집은 10년을 넘게 살고 있는 집이다. 이 집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 또 다른 졸업을 앞두고 있다.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길들을 지나 현관문을 열면 또 다른 세상이 등장한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기에 집 속에서도 진정한 나만의 집은 방이다. 오직 ‘나’로만 가득 채워져 있는 이 공간은 나의 벙커, 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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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옷을 담아두었던 트롤리가 이제는 작은 책장이 되었다.
나는 꽤 자주 방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진다. 작은 방에 수십 년간 차곡차곡 모인 취향들과 취향이었던 것들을 살피면 어쩐지 이 공간이 낯설어지면서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만 같다.
10년 전 부모님께 선물 받아 내가 가장 애지중지하던 것 중 하나였던 오래된 원목 피아노 뚜껑에 쌓인 먼지를 바라볼 때마다 먼지란 정말 빨리 쌓이는 것이구나, 생각한다. 다시 생각하니 먼지가 빨리 쌓인 것이 아니라 내가 그만큼 오랜 기간 동안 피아노에 관심을 주지 않아서였구나 생각한다.
벽에 붙여놨던 최애(였던) 영화 포스터를 떼고 새로운 영화를 붙일 때, 지금은 거의 만나지 않는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을 작은 상자에 정리할 때, 방에 있는 책들을 보며 읽지 않는 책을 골라낼 때마다 생각한다. 집이 이렇게 수십 번 바뀌고 대체될 동안 나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울고 웃고 춤추고 노래하고 생각하고 잠들고 깨고 누워 있고 글을 쓰고… 그렇게 성장하는 동안 조용히 존재해 온 나의 집.
가장 슬픈 기억과 가장 행복한 기억을 곱씹을 수 있는 곳, 나의 집.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곳, 이곳은 나의 최종 목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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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저에게 있어 메일링 서비스는 님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았기에 거의 모든 메일링을 편지 형식으로 쓰고 있었는데요, 오늘은 처음으로 글을 산문 형식으로 써보았습니다.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어요.
님께 질문하고 싶은 게 있어 이렇게 추신을 덧붙입니다. 님에게 집이란 무슨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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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어느덧 두 번째 글로 돌아온 별난 은도끼입니다.
제 첫 번째 글은 어떠셨나요? 며칠, 몇 주 동안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진심을 전달하려 노력했어요. 그랬더니 의외로 저도 제 글이 기다려지더라고요. 반복되는 삶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은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제 글들이 여러분에게 잘 전달되어, 함께 울고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두 번째 글도 시작해 볼게요.
시작하기에 앞서 여러분에게 집은 어떤 공간인가요?
집이라는 게 사실 같은 아파트, 주택, 그야말로 콘크리트 덩어리일 뿐인데, 누가 살고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확 달라지잖아요.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그 모든 집에서 ‘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거예요. 저는 이게 바로 집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그곳에서 우리는 추억을 쌓고, 감정을 나누고, 때론 속삭이기도 하죠. 집에서 나는 그 독특한 냄새, 편안한 느낌, 그리고 사람들의 소리가 함께할 때 ‘여기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따뜻한 감정이 스며듭니다. 비록 작은 공간일지라도 그 안에서 나만의 이야기 혹은 가족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주제인 ‘집’을 생각하면서 내가 살던 집은 어떤 공간이었는지, 어떤 감정을 주는지 떠올려보게 되었어요. 앞서 말했듯 집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니까요. 집 안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소소한 평화로움이 결국 우리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잖아요. 여러분의 집도 그런 공간인가요?
저는 집을 떠올리면 예전 집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같아요. 우선 그 집은 제가 태어날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살았던 집이에요. 그래서 제 기억의 대부분이 그리고 제 어린 시절이자 청춘이 다 그곳에서 시작돼요.
왜냐하면 그 집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기도 했고, 조금만 올라가면 고모, 고모부, 사촌오빠가 살았어요. 또 바로 위층에는 친한 친구가, 그 옆집은 부모님과 친하신 분들이, 아래층은 아빠의 후배가 살기도 했어요. 정말 복잡하게 들리겠지만 그 집에선 유독 정이 넘쳤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꼭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종종 이웃들을 집에 초대해서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것도 나누어 먹으며 함께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여름이면 아파트 놀이터 정자에서 함께 고기를 구워 먹기도 했어요. 그날의 웃음과 향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라요.
집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엮어 만들어가는 공간인 것 같아요. 그곳에서 나누는 작은 순간들이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죠. 그때그때의 웃음, 대화, 함께 나눈 음식 하나하나가 결국 집을 특별하게 만드니까요. 그래서 ‘집’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우리가 머무는 곳이 아니라, 그 속에서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깨닫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곳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만의 특별한 집을 만들어가고 있나요? 아직 이런 추억이 없다면 이웃들에게 밝게 인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보면 어떨까요? 그 작은 인사에서부터, 마음을 나누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이번 주도 너무 수고하셨고, ‘집’에서 좋은 주말 보내세요!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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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번 필름은 제 동생들로 선택해 보았습니다. 이 사진이 가장 ‘우리 집’ 같아요!
밝고…, 귀여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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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심도 구독자 여러분. 메론빵입니다.
이번 주의 주제가 ‘집’인 만큼 이번 글에서는 저와 함께 살고 있는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는 아주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조부모님의 손에서 자랐어요. 오랫동안 키워주신 만큼 저를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조부모님, 그중에서도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눈 오는 날을 좋아하는 것도, 매년 여름이면 콩국수를 꼭 먹는 것도, 아침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챙겨 먹는 것도 모두 저희 할아버지한테서 온 것들이랍니다.
함께한 세월만큼 할아버지와는 다양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건 고등학생 때 있었던 일이에요. 저는 조금 멀리 있는 고등학교에 다녀서 통학 시간이 1시간 정도 되었어요. 보통 밤 10시에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에 오면 11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그날은 비가 무척 많이 오던 날이었어요. 저녁 늦게부터 갑작스레 온 비라 우산이 없어, 교실에 남아있던 아무 우산이나 들고 하교를 했던 그날, 친구들은 차로 데리러 온 부모님과 함께 돌아가거나 택시를 타고 돌아가고, 저는 항상 타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당시에는 버스 정류장에 버스 시간이 뜨지 않아서 휴대폰으로 직접 찾아봐야 했는데 하필 또 휴대폰 배터리가 일찍 닳아버려 시간을 확인할 수 없었고 와중에 길이 밀리는 바람에 평소보다 10분 늦게 버스가 온 상황이었어요. 집으로 돌아가면서 창밖을 보는데, 갑자기 온 비 때문인지 정류장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참 많았어요. 다들 버스에서 내리면서 우산을 들고 있던 누군가와 함께 돌아가더군요. 평소 같았으면 별 생각 안 했을 텐데 그날은 유독, 부럽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늦게 차를 탄 만큼, 평소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내렸는데 그곳엔 익숙한 하늘색 우산을 들고 있는 사람이 서 있었어요. 할아버지께서 제가 아침에 우산을 안 들고 간 게 걱정이 돼서 절 마중 나와 계셨던 거예요. 휴대폰도 꺼져 있어서 연락이 닿지 않아,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그 늦은 시간까지 저를 계속 서서 기다리고 계셨어요. 그날, 집에 돌아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정말 행복하고 기뻤던 기억이 나요. 마중 나온 사람과 함께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부럽단 생각을 했는데 저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게 참 좋았어요.
요즘, 할아버지가 저에게 주신 사랑만큼 저도 돌려드리고 싶단 생각을 특히 더 자주 해요. 이번 심도 글을 쓰며 지금까지의 필름 사진을 쭉 보는데 아직 한 번도 할아버지를 필름 카메라로 찍어 본 적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가까운 시일 내에 할아버지의 모습을 꼭 한 번 필름에 담고 싶어요. 여러분도 이번 봄에 소중한 사람의 모습을 꼭 한 번 사진으로 남겨보시길 바라며 이번 글은 여기서 이만 마칩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다음에 또 다른 이야기로 뵐 수 있길 바라요.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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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심도 깊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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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각자의 평화에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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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김수경 박유영 조현진 홍희서
교정 이지민 정유민 홍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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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의 101번째 이야기,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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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 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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