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 사진 정동아리 찬빛입니다.
나답지 않은 일과 마주하기 위해,
먼저 나에 대해 알아가 봅시다.
나는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에 울고 웃는지.
만약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걸 하는 나는 내가 아닌 걸까요?
해오던 것들을 계속해야만 나인 걸까요.
어쩌다 튀어나온 낯선 행동에서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저질러버린 순간, 님이 후회보다는 나에 대한 이해를 느끼길 바라며
시끄러운 먼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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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과 필름 - 못
나답지 않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우선 나다운 게 무엇일지 알아야겠지.
나는 신중하다. 다르게 말하자면 자주 망설이고 미련하다.
나는 현상 유지를 선호한다.
나는 자조적이다.
나는 잘 살펴본다.
나는 확정적인 상태를 선호한다.
나는 대상에 대해 단정 짓기를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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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모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기피한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기를 두려워하는 거 같다. 막상 시작하게 되면 열심히, 이왕이면 잘 해내겠지만 스스로를 끝없이 의심한다. 결심과 실행 사이에 무수히 많은 온점을 달아둔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다른 이 앞에 꺼내 보이는 건 더욱이 두려워한다. 모나고 유약한 모습으로 단정될까 싶어서.
‘나답지 않은 일’을 골라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지금,
어떤 이들이 있을지 모를 새로운 집단에 들어가는 것,
발 걷는 대로 떠나는 여정도.
내 마음을 따라나선 모든 순간이 나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평소라면 굳이 하지 않았을 선택들 같았다. 그러나, 내 마음만을 따라나섰을 때, 결국에는 가장 해보고 싶었던, 진짜 나다운 모습들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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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다’는 ‘성질이나 특성이 있음’의 뜻을 더하고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로,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꽃답다/정답다/참답다’와 같은 말을 만들어냅니다. ‘-답다’가 붙어 만들어진 단어들을 보면, 그 뜻이 결과적으로 어근의 긍정적 속성을 내포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조금 무모한 도전을 시작하는 것도 나다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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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과 필름 - 고심에 빠진 동그라미
글을 쓰기에 앞서 ‘나다운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다운 것 중에서도 남들보다 더 두드러지는 어떤 점을 찾아보려고 했다. 아주 어려운 일이었지만 어쨌든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남들보다 비관적인 사람이다.
이따위 것이 무슨 한 사람을 대변해 주는 특징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물론 이런 의견이 있으리라는 것도 나의 비관적인 상상에서 비롯된다.) 나는 생각이 많고 그 생각의 반절은 우중충한 사람이라는 게 사실일 뿐이다. 이에 대한 나의 견해는 차고 넘치지만, 이 글에는 필요치 않으니 생략하겠다.
비관적인 사람에게 또 많은 것은 무엇일까? 모든 상황을 우울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걱정’이 남들보다 배로 들어간다. 걱정이 많은 사람은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 새로운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모든 것을 아우를 단어가 있다. ‘도전.’
2023년, 저질러 버렸다.
매사에 안 좋은 전망을 보는 사람은 안정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할까 말까 할 때 꼭 해 보는 습관이 있다. 어차피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역설적으로 대부분의 도전을 가볍게 만들어 주니까. 그해 1월에 나는 총학생회에 합격했다.
한 해는 아주 빠르고 거세게 흘러갔다. 축제, 행사, 시위, 선거. 나는 이렇게 많은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에는 현장 스태프를, 자료 보관을, 예·결산안 작성을, 아주 많은 회의를... 앞으로의 인생에서는 10시간이 넘는 회의를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 1년이었다. 많은 날을 울었고, 가끔 싸웠고, 자주 위로했으나 후회는 하지 않는다.
2024년, 또 저질러 버렸다.
지난해의 도전이 2024년의 나에게 많은 경험과 소속감에 대한 갈망을 심어 주었다. 이번 해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고 떠들었던 순간들이 무색하게 나는 새로운 공간을 찾고 있었다. 내가 존재할 곳. 운이 좋게도(이런 표현을 흔히 쓰지는 않는다.) 그때 나의 최고 관심사는 필름 사진이었고, 당연하게도 찬빛에 닿았다.
찬빛에 와서 나답지 않은 일을 꽤 많이 하고 있다. 착하게 말하기(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한국 문학에 관심 두기, 독립영화 보기, 상황을 조금은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이렇게 내 생각을 글로 쓰기. 곰곰이 생각해 보자, 위선도 죽을 때까지 떨면 선이라는데 답지 않게 긍정적으로 살다 보면 그것도 결국 ‘나’ 아닐까?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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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한 컷이다. 축제를 구경해 보고, 운영해 보고, 부스도 열어 보고... 사실 말하지 않은 한 가지가 더 있다면 ‘공연’이다. 이것도 참 나답지 않은 일이지만 나의 학번 신비주의를 위해 언급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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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과 필름 - Raven
저를 요즘 가장 나답지 않게 만드는 것은 ‘사랑’입니다. 이렇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여러분들이 불편해 하시지는 않을까 고민되지만, ‘나답지 않은 일’이라는 키워드와 너무도 잘 맞는 이야기라 한번 적어보려 합니다. 사랑을 시작한 지는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서로를 향한 기대는 더 커지고 소위 콩깍지라고 하는 렌즈를 벗어 버린 날것의 사랑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큰 증거는 ‘싸움’일 거예요. 초반에는 서로의 전부를 예쁘게만 보고 맞춰주기에 어긋날 일도 없었지만, 이제는 동화보다 다큐에 가까운 모습을 띠고 있으니까요. 마치 <인간극장> 같달까요. 단순히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첫걸음마처럼 커다란 인생의 전환점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처음 느끼는 감정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는 저의 모습을 공유하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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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나답지 않은 일’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분노를 온전히 표출한 것입니다. 저는 부정적인 감정을 남에게 표출하기를 늘 두려워했습니다. 은연중에 저의 분위기와 맞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타인의 반응이 두려워 회피한 것인지 혹은 둘 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하면서 처음으로 회피할 수 없을 만큼 가까운 관계성이 생겼습니다. 내가 감정을 숨기고 도망치면, 끝까지 쫓아와 나에게 물어보고 궁금해할 존재가 생긴 것이죠. 가족이나 친구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말을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더듬더듬 감정 상태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이. 그게 첫걸음이었죠.
최근에는 스스로도 낯설게 느껴지는, 운석 충돌처럼 커다란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화를 내는 게 만사형통은 아니지만 한 번쯤은 필요했나 봅니다. 21년 인생 동안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그렇게 큰 기대를 걸고 실망한 적도, 그렇게나 큰소리를 내서 분노를 표출한 적도 처음이었습니다. 분노가 걷힌 후 저에게 찾아온 감정은 미안함과 동시에 후련함이었습니다.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에서 빠져나와 제 갈 길을 가는 듯했습니다. 그렇게 좋은지 나쁜지 모를 또 하나의 감정 표현을 어른이 되어서 배웠습니다.
지금의 관계가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십 대 초반의 이 만남이 ‘나답지 않은 일’을 하게 만들고, 변화를 가져왔다는 사실만큼은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방식을 보면서 서투르게나마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만날 땐 ‘사랑’만큼이나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바뀌어가는 나의 모습’도 사랑하게 됩니다.
몇 년이 지나 이 글을 다시 볼 때, 그 사람이 곁에 있다면 신기하다며 함께 웃을 추억으로, 곁에 없더라도 고마웠던 인연을 행복하게 회상할 수 있는 추억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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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심도 깊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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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의 모든 현상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생경함일지도 모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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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김민경 박유영 유수민 이지민
교정 김수경 전지영 최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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