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성신여자대학교 필름사진 중앙동아리 '찬빛'입니다. 찬빛은 "찬란하고 빛나는 순간을 감다"라는 의미입니다. 단 하나뿐인 빛나는 순간을 필름에 담고, 감아내는 필름 카메라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희의 찬란하고 빛나는 순간을 필름과 글로 전하고 싶어서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저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찬빛 부원들과 함께한 출사를 하나씩 기록해보려 합니다!
심도는 초점이 선명하게 포착되는 영역이며 깊은 정도를 의미합니다. 심도(SIMDO)라는 이름을 통해 깊이 있는 찬빛의 이야기를 담으며 그날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전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메일은 필름 사진을 시작한 계기부터 필름 사진을 사랑하는 다양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필름 카메라를 다루는 분들이라면 공감이 될만한, 아직 필름을 접해보시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 시작의 동기가 될 수도 있을 법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찬빛과 추억을 감는 여정을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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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첫 필름은 그랬다.
글과 필름 - 57
2020년에 첫 필름을 찍었다. 새로운 취미가 가지고 싶어서, 그렇지만 남들 다 하는 흔한 취미는 싫어서 필름 카메라를 선택했다. 인스타 마켓을 둘러보다가 캡션과 데이터백이 매력적인 캐논 오토보이A를 샀다. 카메라 사용법을 인터넷에 검색했지만 흔한 카메라가 아닌 만큼 정보는 많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없는 정보를 찾기 위해 매달리는 것보다 내가 찍어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집 앞에 나가서 고양이와 남의 집 옥상에 있는 식물을 찍었다. 그리고는… 첫 필름부터 강제 되감기 버튼을 눌러버리는 엄청난 실수를 했다. 2년 전에는 필름 값이 6,000원에서 7,000원 사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싼 가격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 가격이 비싸게 느껴졌고 36장 중 4~5장 찍고 감긴 필름을 다시 되살릴 방법을 찾다가 일단 집 앞 사진관으로 찾아갔다. 사진관 아저씨께서는 굉장한 필름 카메라 수집가이셨다. 능숙하게 도구를 활용해 필름을 다시 빼주셨고 전에 찍은 4~5장은 버린다고 생각하고 다시 처음부터 찍기 시작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 당시 나에게는 고양이와 옥상 식물이 담겨있는 4~5장도 소중했는데 물어보지도 않고 아저씨가 내 추억을 빼앗아버렸다고 생각했다. 버려야 했다면 다시 빼내지 않고 현상했을 테니까. (물론 필름 값이 금값인 지금은 고민 없이 그 4~5장을 버렸을 것이다.) 필름을 많이 찍어보신 아저씨는 당연하게도 몇 장 안 되는 사진보다 남은 필름으로 찍을 수 있는 사진을 우선시하셨고 그런 아저씨가 그때는 원망스러웠다. 침울한 마음으로 필름을 다 채웠다. 첫 필름부터 필름 카메라를 찍다가 일어날 수 있는 손에 꼽는 최악의 상황을 겪으니까 결과물도 기대하지 않았다. 현상소에 맡기고 기다리는 순간이 설레지 않았다. 그런데 결과물을 받고서... 필름을, 필름 카메라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디지털카메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색감과,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찍었지만 현상 전까지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모른다는 그 막연함이 좋았다. 막연함이라는 것은 확실함과 명확함을 쫓는 나에겐 부정적인 단어였는데 필름을 시작하고 막연함을 즐기게 되었다.
내 첫 필름은 그랬다.
Film
첫 번째 필름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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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은 우연들이 모이면
글과 필름 - 뮤시
시작하는데 오랜 결심이 필요한 일도 있지만, 무언가를 시작하는 계기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우연적 요소와 내가 그 요소들을 발견하고 스며드는 타이밍이 맞으면 된다. 필름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나에게 별다른 결심 없이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취미였다. 작년 봄날에 집을 청소하던 중, 아버지가 잘 보관해둔 카메라들을 발견한 우연성 1과 그 해 12월에 ‘필름을 사서 찍어볼까?’를 문득 떠올린 우연성 2의 시차가 맞춰져 필름 생활에 스며들었다.
아버지는 카메라 분야에서 얼리어답터였다. 지금은 카메라를 모으시지는 않지만, 나이가 나보다 많아서 함께한 기억이 없는 카메라부터 내게 어렴풋이 기억나는 카메라까지, 가지고 계신 카메라의 수가 내 두 손바닥으로 세기 어려운 정도로 많다. 그런 아버지를 닮아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필름 카메라를 처음 사용해 본 건 작년 봄이었는데, 아버지가 10년보다 더 전에 사용하고 남은 6-7컷을 사용해 본 거라 그의 추억을 완성하는 정도였다. 필름을 직접 사서 촬영해 보기로 결심한 것은 2021년 12월 연말이다. 필름을 구매하는 것까지 고민은 단 몇 시간이었고, 그 당일에 종로3가역 근처 우성상사를 방문해 코닥 골드 200을 구매했다. 회상해 보면 그 몇 시간의 알고리즘이 꽤 충동적이라고 느껴진다. 사람마다 고민에서 결심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다르다. 나의 경우 카메라를 발견한 것은 4월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사용해 보기로 결심한 12월에, 8개월 간의 간극이 채워졌다.
충동성에는 미숙함이 따를 때가 자주 있는데, 플래시는 언제 켜지는지와 초점은 어떻게 맞추는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찍었다. 고민들을 겹겹이 쌓아 두는 것보다 그 겹을 바로 벗겨버리는 것도 좋다고 본다. 그 때의 내가 고민을 한 겹 입기 전에 결심한 덕분에 애정하는 동아리에서 필름에 제대로 감겨버린 내가 존재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가끔은 여러겹의 고민보다 한 번의 결심을 해볼 수 있길 바란다. 아래는 ‘필름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 주제에 맞게 필름을 끼우고 ‘처음’ 찍은 사진들로 첨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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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첫 롤을 끼우고 찍은 사진들이다.
1. 가장 처음 찍은 사진
맑은 날씨가 내 첫 사진 촬영을 도와줬다. 볕이 창문 모양대로 짙게 들어와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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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크리스마스에 집에 설치한 미니 트리 두 개
매우 작은 크기라 내 시점을 트리의 키에 맞추기 위해 거의 엎드린 상태로 찍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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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찬빛에 들어간 후 첫 출사지였던 서울 식물원이다.
과다한 빛이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고 잘게 들어오는 햇빛을 정면으로 찍었다. 이때의 대담함은 현재 사라져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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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과 필름 - 김수인
첫 시작은 친구가 생일선물로 준 일회용 필름 카메라였습니다. 이 첫 시작이 저를 찬빛에 있 만들 줄은 상상도 못 했죠. 일회용 필름 카메라는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들에 비해 퀄리티가 많이 떨어지지만, 그 당시 필름의 ‘ㅍ’자도 모르던 저를 사로잡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당장 결과물을 볼 수 없어 어떻게 나왔을지 기다리며 느낀 설렘은 저의 여행을 더 즐겁게 만들어주었어요.
필름을 스캔하고 결과물을 보았을 때 느꼈던 뿌듯함, 아쉬움, 그리움 등의 복합적인 감정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휴대폰으로 찍어서 잘 나왔을 때와는 결이 다른 짜릿함이었어요. 더 섬세한 사진을 찍고자 새로운 카메라를 들여 지금까지 이 취미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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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그냥 지나칠 골목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풀 조차도 촬영할 때는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살펴보게 되죠. 어떻게 하면 이 피사체를 잘 담을 수 있을지, 어떤 구도가 적합할지 고심하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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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커다란 추억을 제 작은 카메라로 직접 담을 수 있고, 그 행복한 순간을 돌아볼 수 있는 기억을 선물해 주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것 같아요.
이번 대동제 부스에서 필름 사진 촬영자 역할을 했었는데 촬영이 끝나고 저에게 조심스럽게 오셔서 사진이 언제 나올지 궁금하고 결과가 너무 기다려진다고 하시던 분, 어떻게 찍어야 할지 몰라 멋쩍게 웃으시던 분들 모두와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든 것 같아서 저 또한 행복했어요.
하나의 결과물을 위해 조리개 조절과 포커싱에 온 신경을 끌어모아 찍은 사진들을 보내드리고 나서 학우분들로부터 “추억을 남겨주셔서, 행복한 순간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누군가의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을 담아 준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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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지나가는 열차를 찍은 사진인데 물체가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결과물을 장담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일 정도로 마음에 들었지만요. 바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은 필름카메라의 장점이면 장점,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오래 시간 이 지난 뒤 사진을 보며 그때 어떤 상황에서 찍었는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찍었는지 되돌아보며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저는 장점이라고 봅니다.
저는 지금도 대동제에서 찍은 사진조차 못 보고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요. 하하. 처음 뵌 학우분들, 학교 여사님들 사진도 담겨있는데 말이죠. 이 글을 쓰는 지금 얼른 현상해서 보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장점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쓰면 단점처럼 보이려나 ···.
아무튼 이 취미를 시작하고 이번 연도에 사진을 가장 많이 찍었는데, 한 해가 마무리되기까지 남은 시간도 다양한 피사체를 찍으면서 더 많은 추억을 남기고 싶네요. 다들 이번 해도 잘 마무리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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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음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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